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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3.17 서울의 부드러운 동쪽 지붕, 아차산 봄나들이 <서울둘레길2코스, 아차산4보루, 3보루, 2보루, 1보루>

서울의 부드러운 동쪽 지붕, 아차산 봄나들이 <서울둘레길2코스, 아차산4보루, 3보루, 2보루, 1보루>

아차산 보루 나들이 (4보루, 3보루, 6보루, 2보루, 1보루)



' 아차산 봄나들이 (아차산 보루 식구들) '

아차산 정상(아차산3보루)

▲  아차산 정상부 (아차산3보루)

아차산4보루 아차산2보루

▲  아차산4보루

▲  아차산2보루

 



 

아차산(峨嵯山, 295.7m)은 수도권 고구려(高句麗) 유적의 대표 성지(聖地)이자 서울의 부
드러운 동쪽 지붕이다. 내 즐겨찾기 뫼의 일원으로 아침과 낮, 그리고 일몰 이후(야간 등
산)까지 고루고루 찾아와 변치 않은 마음을 비추고 있는데, 이미 200번 넘게 찾은 아차산
이지만 갈 때마다 늘 마음이 설레고 새롭다.

기나긴 겨울 제국이 드디어 저물고 봄의 해방군이 천하를 해방시키자 아차산의 봄 풍경이
문득 그리워 간만에 그의 품을 찾았다. 이번 나들이는 구의동(九宜洞) 기원정사에서 시작
을 했는데, 분량상 본글에서는 아차산4보루 이후 구간만 다루도록 하겠다.
(이전 내용은 별도의 글에서)



 

♠  고구려 보루의 정석, 아차산4보루(堡壘) - 사적 455호

▲  아차산4보루 남쪽 2중치와 동남쪽 성곽

아차산4보루는 용마산(龍馬山)과 망우산(忘憂山)을 제외한 아차산 식구 보루 중 가장 북쪽에
자리해 있다. 잃어버린 땅을 제외한 우리나라(남한)의 고구려 성곽 유적 중 건물터와 성벽의
구조가 제대로 밝혀진 최초의 현장으로 의미가 아주 남다른 곳인데, 아차산~용마산~망우산 보
루 중 거의 유일하게 성벽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다.
복원 이전 성벽의 최대 잔존 높이는 1.8m로 남벽과 동벽은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한 탓에 그
런데로 남아있었으나 북벽과 서벽은 훼손이 심해 남아있던 높이가 0.8m를 넘지 못했으며, 부
정형의 석재를 사용해 조잡하게 축조되었다.


▲  들여쌓기의 정석을 보여주는 4보루 남쪽 2중치

구리시가 4보루에 숨겨진 옛날 이야기를 풀고자 1997년부터 문화재청과 경기도의 도움을 받아
1998년까지 발굴조사를 벌였다. 하여 온돌과 배수로, 저수조 등을 갖춘 건물터를 확인했으며,
'後部○兄'이라 쓰인 토기가 나와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완전히 장악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중반에 닦여진 보루임이 명백해졌다. 여기서 후부(後部)는 고구려 5부의 하나이며, '○兄'은
고구려 관등의 하나로 여겨진다. 고구려에는 '형(兄)'자가 들어가는 관직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후 2007년에 다시 조사를 벌여 숨겨진 치성을 발견했고, 보루 형태와 성벽 축성 방식을 확
인하면서 복원 가능성이 높아졌다. 4보루 사이로 서울시와 구리시의 경계선이 무심히 지나가
절반은 서울시, 나머지 절반은 구리시 영역인데, 구리시가 2008년부터 복원을 적극 추진하여
2년의 공사 끝에 2010년 12월 24일 복원 준공식을 가졌다. 아차산일대 보루 중 처음으로 복원
된 행운의 보루인 것이다. (나중에 시루봉 보루도 복원되었음)

보루 복원을 위해 보루터에서 나온 늙은 성돌을 주로 사용했으나 수량이 적어서 부득이 새 성
돌로 모자란 부분을 때웠다. 그러다보니 고색이 짙은 옛 돌과 하얀 피부의 새 돌이 어색하게
조화를 이룬다. 허나 이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발굴조사를 토대로 고구려 축성 양식에 맞춰
왕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했고, 건물터와 온돌 유구 등은 보존을 위해 모두 흙속에 묻었다.
그리고 보루 중앙 쪽에 탐방로를 내고 건물터 쪽에는 금줄을 쳤으며, 보루 북쪽과 남쪽에 보
루로 오르는 계단을 냈다.

보루의 둘레는 약 249m, 성벽 높이는 최소 4m 이상이다. 허나 탐방객의 안전을 고려하여 2.5~
3.1m 높이로 크게 축소 재현하여 마치 역사 왜곡의 현장 같은 아쉬움을 준다. 지형의 경사면
을 이용해 바깥 쪽에 성벽을 쌓고, 안쪽 경사면에는 뒷채움돌과 흙으로 다졌는데, 방어력을
높이고자 동/서/남/북에 5개의 치성(雉城, 치)을 두었다.
치성(치)은 성곽 방어를 위해 앞쪽으로 다소 튀어나온 성벽으로 고구려표 축성 양식의 하나이
다. 그 양식은 백제와 신라, 고려, 조선은 물론 왜열도와 서토(중원대륙)까지 전해져 절찬리
에 쓰였다.


▲  4보루로 올라가는 남쪽 계단

▲  아차산4보루의 독특한 구조물, 남쪽 2중치

4보루 남쪽에는 2중 구조를 지닌 독특한 치가 남쪽으로 길게 나와있다. 그는 전체 길이 13.2m
로 중간에 목책(木柵)이 둘러진 2.5m 정도 들어간 공간이 있는데, 그것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치로 구분된다.
뚫린 공간에는 치의 성벽에 잇대어 4개의 후대 석축단이 축조되었고, 그 좌우로 목책을 세웠
는데, 보루의 출입구로 여겨진다. 이런 구조는 용마산2보루와 개발의 칼질로 허무하게 사라진
구의동보루에서도 일부 확인되고 있으나 사실상 아차산4보루가 유일하며, 고구려 보루의 독특
한 구조를 보여줌과 동시에 보루의 끝이 들여쌓기로 차곡차곡 닦여져 안정감을 준다.


▲  4보루 서남쪽 치

보루 내부에서는 건물터 7곳, 온돌 유구 2기, 배수로, 저수조 흔적, 치성 5곳이 발견되었다.
여기서는 항아리와 글씨가 새겨진 토기, 시루, 투구, 찰갑(가벼운 갑옷), 창, 도끼, 화살촉,
낫, 쇠스랑, 말에 물리는 재갈 등 다양한 유물이 쏟아져 나와 아차산3보루와 함께 아차산의
병참기지로 추정된다.


▲  한강을 향해 약간 튀어나온 4보루 동쪽 치

4보루로 올라서니 그런데로 너른 보루 내부가 펼쳐진다. 이곳에는 군사들이 머물던 숙소와 창
고, 방어시설 등이 있었는데,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과 대자연 형님의 꾸준한 괴롭힘 앞에
모두 휩쓸려 사라지고 터만 아련히 남아 사람들의 상상력을 살찌워준다.
이곳을 재현한 모형이 서울대박물관에 있으나 이 역시 100% 정답은 아니니 고구려 건축 양식
에 맞춰서 적당하게 4보루의 모습을 상상해보기 바란다. 이것이 4보루가 우리에게 주는 숙제
이다.


▲  4보루 1호 건물터

4보루의 7개 건물터 중 남쪽에 있는 1호 건물터가 가장 높다. 여기서는 온돌 유구 2기와 주춧
돌이 나왔는데, 온돌 아궁이 주변에서는 글씨가 새겨진 토기, 철제투구 등이 나와 4보루를 관
리하던 높은 장수나 지휘관의 숙소로 여겨진다.
1호 건물터 주변에는 6호 건물터와 7호 건물터, 2호 건물터 등이 있으며, 3호 건물터 밑에서
는 'ㅡ'자형 온돌유구 2기가 나왔다. 층위(層位)로 보아 건물터보다 먼저 조성되었음이 밝혀
져 4보루 내부 구조물이 같은 시기에 지어진 것이 결코 아님을 보여준다. 보루를 먼저 쌓고
나중에 온돌과 내부 시설을 얹혔던 것이다.


▲  4보루 내부 (북쪽 방향)

▲  4보루 내부 (남쪽 방향)

탐방로 좌우로 잔디와 흙이 두툼히 덮여진 건물터와 저수시설 유적이 있고, 키가 작은 금줄을
둘러놓아 고구려의 거룩한 흔적을 지키고 있다. 금줄의 의미처럼 줄 안으로 들어가면 안 되나
지키는 사람이 딱히 없다 보니 안에 버젓이 들어가 자리를 펴고 쉬거나 음식을 처묵처묵하는
골 빈 작자들이 적지 않아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4보루 저수시설터

4보루에서는 물을 저장하는 2개의 저수조(貯水槽) 흔적이 나왔다. 이들은 깊이 3.5m 정도 수
직으로 암반 흙을 파내고 바닥과 벽에 입자가 고운 회색 뻘흙을 발라 물이 새지 못하도록 방
수처리를 한 것으로 규모는 '430x300x깊이230cm','350x310x깊이240cm'이다.


▲  한강을 향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4보루 동북쪽 치
치 너머로 한강과 구리, 남양주, 하남, 강동구 지역이 시야에 들어온다.


4보루는 북쪽을 제외하고 동/서/남이 확 트여있어 조망이 아주 일품이다. 여기서는 광진구와
성동구, 동대문구, 종로구, 중구, 송파구, 강동구, 한강은 물론 하남시와 구리시, 남양주시
지역이 훤히 시야에 들어오며, 해돋이와 일몰을 모두 맞이할 수 있어 해돋이 수요와 일몰 수
요, 야간 등산 수요가 많다. (1월 1일에는 새해 해돋이를 보려는 사람들로 정말 미어터짐)
게다가 아차산과 용마~망우산을 이어주는 매우 중요한 위치라 아차산 주능선의 목구멍 같은
곳이다. 그러니 고구려가 이곳에 큰 보루를 쌓아 무척 애지중지했던 것이다.


▲  4보루 동북쪽 치에서 바라본 천하
한강과 강동구, 하남시 지역

▲  4보루 북쪽 치

▲  4보루 서쪽 성곽

▲  4보루 북쪽 치

4보루 바깥에는 우회 산길이 있다. 4보루 속으로 들어가기 싫다면 그 우회길을 이용하면 되나
아차산에 왔다면 4보루는 무조건 찍고 가는 것이 이곳의 관례처럼 되어있다. 그러다보니 여기
서 휴식을 취하거나 간식을 먹는 이들도 적지 않다. (특히 저녁에는 이곳에 자리를 잡고 단체
로 먹거리를 섭취하는 등산 동호회 사람들이 많음) 휴식과 음식 섭취는 좋으나 쓰레기를 버리
거나 금줄을 넘어가는 행위는 하지 말자.

아차산4보루를 비롯한 아차산 보루 6곳과 용마산 보루 7곳, 망우산1보루, 시루봉 보루, 홍련
봉 보루 2곳은 한 덩어리로 '아차산일대 보루군'이란 이름으로 사적 455호로 지정되었다.

고구려(고구리)는 경기도와 강원도, 평안도, 함경도, 요동반도, 만주(길림성, 흑룡강성) 일대
, 연해주, 하북성, 산서성(山西省), 내몽고(內蒙古) 일대를 차지한 북쪽의 크나큰 나라였고,
백제(百濟)는 경기도와 충청도, 전라도, 제주도, 왜열도(倭列島), 산동반도, 강남과 오월(吳
越) 등 중원대륙의 무수한 해안 지역, 월남 일대까지 장악한 남쪽의 크나큰 나라였다.
그 두 나라가 크게 충돌한 곳의 하나가 바로 한강 유역이며, 한강 남쪽의 송파/강동구 지역에
는 백제의 국도(國都)였던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 또는 그에 버금가는 주요 도시가 있었다.
그래서 고구려는 강력한 라이벌인 백제를 견제하며 한강 유역을 지키고 필요에 따라 백제 본
토로 바로 넘어갈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인 아차산~용마산~망우산 일대에 보루 등의 군사시설
을 주렁주렁 달아 애지중지했던 것이다.

이들 보루는 6세기 중반 이후 신라가 차지하여 고구려 견제용으로 활용하다가 8세기 이후 전
략적인 가치가 상실되면서 모두 버려지게 된다. 그 시절 신라는 북쪽으로 최소 요동반도까지
차지했으며, 산동반도와 강남, 오월 지역에도 적지 않은 지분을 가지고 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 아차산4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4동,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52-2



 

♠  아차산 정상과 3보루

▲  소나무가 무성한 아차산 주능선길 (4보루에서 정상 방향)

아차산4보루에서 낙타고개(아차산성 북쪽)까지는 완만한 능선길의 연속이다. 오르막 길도 일
부 있으나 거의 내리막 일색이라 천하에서 가장 부드러운 능선길을 보여주고 있으며, 고구려
가 심어놓은 보루(4보루, 3보루, 5보루, 6보루, 1보루)들이 주렁주렁 깃들여져 멀게만 느껴지
던 고구려를 직접 체험하게 해준다. 또한 좌우로 시야가 확 트여 조망이 아주 예술이며 여기
서 바라보는 야경 맛과 일출, 일몰 풍경이 참 진국이다.

이처럼 길이 좋고 조망 또한 일품이니 새해 해돋이와 아침, 낮, 일몰 직후 야간 등산까지 상
당한 팬들을 확보하고 있다. 하여 너무 깊은 밤(23시 이후)이 아닌 이상은 늘 사람들이 있으
며 서울에서 남산(南山), 인왕산(仁王山) 다음으로 저녁 수요가 많은 뫼가 아차산~용마산일
것이다. (나도 아차산 야간 등산을 100번 넘게 했음)
또한 천하 둘레길의 대표 성지로 격하게 추앙받는 서울둘레길2코스(화랑대역↔광나루역, 12.3
km)도 이곳을 흠모하며 아차산 주능선을 타고 남북으로 흘러간다.

▲  아차산3보루 북쪽 오르막길

▲  아차산 정상을 알리는 나무 기둥


▲  아차산의 지붕, 아차산3보루 - 사적 455호

아차산 정상(295.7m)에 깃든 아차산3보루는 성벽 둘레 약 450m, 내부면적 약 6,500㎡로 정상
부에 남북으로 길게 누워있어 아차산 보루 중 가장 규모가 크다. 2005년에 보루 일부를 들추
면서 배수로와 건물터, 기단, 성벽 일부가 발견되었는데, 디딜방아의 불씨로 여겨지는 존재가
나와 이곳이 아차산의 식량 창고로 추정된다.
허나 겨우 보루터의 일부만 꺼낸 상태라 나머지를 모두 들춰야만 이곳에 정확한 기능과 숨겨
진 이야기를 캐낼 수 있을 것이다.


▲  대머리처럼 허전한 아차산3보루

3보루 외곽은 나무가 무성하나 3보루 안쪽은 땅에 바짝 붙은 잡초와 탈모된 흔적처럼 풀이 벗
겨진 흙길, 그리고 잘려진 나무 밑둥이 대부분을 이루어 말끔하면서도 뭔가 허전한 기분이다.
이는 보루터 보존을 위해 그렇게 밀어버린 것이다.
보루터 한복판으로 탐방로를 내었고, 그 좌우로 난쟁이 반바지 접은 것보다 낮은 금줄을 설치
했는데, 지키는 이가 없다 보니 금줄을 넘는 이가 종종 눈에 띈다. 이곳은 아차산 정상이긴
하지만 완만한 능선이라 정상 같은 느낌은 별로 나지 않으며, 3보루 동쪽에 우회길이 있다.
 
* 아차산3보루 소재지 :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산49-1,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  아차산3보루에서 바라본 천하 ①

아차산4보루 못지않은 일품 조망을 보여주는 3보루, 한강(아리수)을 중심으로 왼쪽에 구리시
와 남양주시(도농, 다산, 덕소) 지역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에는 강동구와 하남시가 무성한
아파트숲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누가 아파트의 농도가 진한지 경쟁하듯이 말이다.


▲  아차산3보루에서 바라본 천하 ②
한강과 강동구, 하남시, 그리고 남한산과 검단산 등

▲  아차산3보루에서 수습된 보루터 성돌들
이곳에 있었을 3보루의 생전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 상상의 나래를 한번
살찌워보자. 그것이 아차산이 우리에게 건네는 영원한 숙제이다.

▲  바위들이 울퉁불퉁 펼쳐진 아차산 주능선길
(아차산3보루에서 아차산5보루 방향)

▲  아차산 주능선길(3보루~5보루 구간)에서 바라본 천하 ①
광진구와 성동구, 한강, 송파구, 강남구 등 (멀리 보이는 산은 관악산)

▲  아차산 주능선길(3보루~5보루 구간)에서 바라본 천하 ②
용마산 너머로 멀리 남산서울타워를 지닌 남산과 인왕산(仁王山),
북악산(백악산) 등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  아차산 주능선길(3보루~5보루 구간)에서 바라본 천하 ③
가운데 움푹 들어간 부분이 아차산의 일품 계곡으로 꼽히는 긴고랑계곡이다.
그 오른쪽 뫼는 용마산, 왼쪽은 아차산이며, 그들 너머로 광진구와
성동구, 동대문구 지역이 흐릿하게 두 망막에 박힌다.



 

♠  아차산 마무리 (6보루, 2보루, 1보루)

▲  아차산6보루 - 사적 455호

아차산3보루에서 주능선길을 따라 남쪽으로 가다보면 '범굴사'를 알리는 이정표가 살짝 손짓
한다. 여기서 주능선을 버리고 그 손짓을 따라가면 바로 봉긋 솟은 언덕이 나타나는데, 그는
아차산 주능선 바로 동쪽으로 그 언덕에 아차산 보루의 막내인 6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6보루는 2005년에 3보루 발굴조사에 참여했던 사람이 우연히 발견했다. 생김새가 마치 옛 무
덤이나 보루터처럼 생겨서 눈썰미가 좀 있다면 정말 의심을 가져볼만한 존재로 아차산 보루의
발견 순서대로(남쪽을 기준으로 함) 아차산6보루란 간판을 달게 되었다.
추정 둘레는 약 80m 정도로 아직 발굴조사는 벌이지 않았으며, 여기서 발견된 옛 불씨는 흙을
덮어서 보존하고 있다. 그가 보루인지 다른 존재인지는 아차산 산신도 모르는 실정이나 생김
새가 자연산 같지 않아서 속히 조사를 벌여 이곳의 정체를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6보루를 처
음 본 것이 2013년인데 아직까지도 조사를 받지 못했으니 아차산 보루 유적과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크게 떨어진 것 같아 실로 우려스럽다.


▲  아차산2보루 - 사적 455호

아차산6보루에서 범굴사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소나무가 우거진 북쪽 봉우리(해발 276.2m)가
있다. 봉우리 주변에는 금줄이 둘러져 있고, 안내문 1개가 나그네들의 관심을 호소하고 있는
데, 금줄 너머 봉우리에 고구려가 심어놓은 아차산2보루가 깃들여져 있다.

이곳은 아차산 주능선에서 동쪽으로 갈라져 나온 산줄기로 봉우리를 활용해 보루를 다졌는데,
둘레 50m 정도의 조그만 보루이다. 그 보루는 영원한 분해자인 자연과 세월에 의해 모두 와해
되고 돌탑 남쪽에 치로 여겨지는 성벽 3단이 바깥에 노출되어 분해자의 압박을 견디다가 보존
을 위해 흙으로 덮어 묻었으며, 그 주위로 금줄을 둘러 사람들의 통행을 막는다.

보루터 주변에서는 고구려 토기인 몸통긴항아리의 조각들이 발견되었고, 보루터 복판에 돌탑
이 있는데, 지나가는 이들이 하나씩 얹힌 돌이 모이고 모여 어엿한 돌탑으로 성장했다. 돌탑
을 이루고 있는 돌 상당수는 2보루터 성돌로 보루를 이루던 돌이 돌탑의 일원으로 새로 거듭
난 것이다.

2보루터는 인근 6보루터와 비슷하게 숲이 자리해 있다. 2보루터에 깃든 고구려의 장대한 기상
과 이곳의 유구한 역사를 무럭무럭 먹고 자란 탓일까? 소나무가 숲을 이루며 대머리처럼 허전
한 2보루터의 새로운 녹색 머리칼로 그 공간을 보듬는다.


▲  아차산2보루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①
한강과 구리, 남양주, 강동구, 하남 지역


아차산2보루 옆에는 동쪽을 향해 고개를 내민 조망 좋은 곳이 있다. 이곳은 범굴사(대성암)로
인도하는 너럭바위 윗쪽으로 여기서는 한강을 비롯해 구리시, 남양주, 하남, 강동구, 송파구,
성남 지역과 아차산성(阿且山城) 등이 훤히 두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조망 범위는 앞서 4보루, 3보루와 많이 비슷하여 감흥은 그리 크지 않다. 비슷한 조망
이 4보루부터 계속 따라왔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서쪽과 북쪽이 빠지고 남쪽으로 아
차산성과 송파구, 성남 지역이 조망권에 추가된 정도..


▲  아차산2보루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②
워커힐 뒷통수(골프장)가 바로 앞에 보이고 푸르른 한강 너머로 강동구와
하남시, 남한산(南漢山), 검단산, 예봉산~운길산 산줄기가
거침없이 시야에 들어온다.

▲  아차산2보루 주변에서 바라본 천하 ③
정면에 솟은 산에 아차산성이 안겨져 있다. 그 너머로 강동구와 송파구,
멀리 성남 지역까지 두 눈에 들어온다.

▲  서울 속의 작은 민통선, 아차산성 - 사적 234호 (확대해서 바라본 모습)

아차산은 200번이 넘게 인연을 지었으나 정작 아차산성 내부는 아직까지 발을 들이지 못했다.
아차산성은 아직까지도 금지된 구역으로 몇 년 전부터 광진구청에서 저곳을 해방시킬 계획을
세웠고, 꾸준히 개방 떡밥이 나오고는 있으나 아직까지도 희망고문에 머물러 있다. 아차산성
의 적지 않은 땅을 가진 워커힐이 소국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아차산성이 휴전선 등 예민한 곳에 있거나 군부대에 있다면 금지된 구역이 이해가 가나 저곳
은 그런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다. 누가 들으면 아차산성이 휴전선 부근에 있는 걸로 알겠다.
속히 속세에 개방되어 자유롭게 발자국을 찍었으면 좋겠다.


▲  아차산1보루 - 사적 455호

아차산2보루에서 다시 주능선으로 나와 남쪽으로 하염없이 내려가면 두툼히 살이 오른 봉우리
가 나타난다. 그가 아차산1보루이다. (중간에 아차산5보루가 있으나 여기서는 통과함)
1보루가 넘버원 1보루가 된 것은 아차산 보루 식구 중 가장 잘나서가 아니다. 남쪽을 기준으
로 발견된 순서대로 정리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

해발 250m에 자리한 1보루는 봉우리를 활용해 닦은 것으로 1994년 발굴조사 때 고구려 토기가
여럿 나왔다. 동쪽과 남쪽에서 보루 성벽이 확인되었는데, 보루의 정체가 알려지기 훨씬 이전
부터 보루의 남쪽 성벽 흔적을 밀어버리고 산길을 냈으나, 정체가 밝혀진 이후에는 보루 주변
에 목책을 둘러 접근을 통제하고 그 옆구리에 우회길을 내었다. 그러다가 2015년 이후로 다시
보루를 개방했다.

아차산 보루 중 가장 남쪽으로(홍련봉 보루 제외) 5보루와 함께 아차산성과 아차산 정상(3보
루)을 이어주었으며, 동쪽과 남쪽, 서쪽이 확 트여있어 자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다.


▲  작은 봉우리 같은 아차산1보루

이곳에 들어앉아 천하를 굽어봤을 1보루는 장대한 세월의 매서운 흐름과 대자연의 오랜 괴롭
힘 앞에 완전히 녹아내리고 그 터만 겨우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알려줄 따름이다.
보루의 구체적인 생김새는 아직 파악되지 못했으나 고구려의 축성 양식과 복원된 4보루를 참
고해 보루의 모습과 거기서 머물던 고구려 군사의 모습을 머리 속에 한번 그려보는 것도 의미
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폐허의 현장이고, 그들의 모습을 남긴 뚜렷한 사진이나 기록도 없으
니까 말이다.

* 아차산1보루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중곡동 143-127


▲  아차산1보루의 남쪽 끝

아차산1보루를 둘러보고 낙타고개와 영화사(永華寺)를 거쳐 속세로 내려왔다. 사진에 담는 것
은 1보루에서 완전히 마무리를 지어 더 이상 다룰 것은 없다.
이렇게 하여 간만에 복습한 아차산 나들이는 기분 좋게 마무리가 되었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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