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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10.23 서울 도심의 상큼한 서쪽 뒷동산, 안산 1바퀴 <무악산 동봉수대, 안산자락길, 안산 메타세콰이어숲길, 흔들바위>
  2. 2017.02.08 서울 도심의 포근한 뒷산을 거닐다. 안산 나들이 ~~~ (영천시장, 안산자락길, 무악산 동봉수대)

서울 도심의 상큼한 서쪽 뒷동산, 안산 1바퀴 <무악산 동봉수대, 안산자락길, 안산 메타세콰이어숲길, 흔들바위>

서울 안산 (안산자락길, 무악동봉수대)



' 서울 도심의 서쪽 뒷동산, 안산 '
(무악산 동봉수대, 안산자락길)

무악산 동봉수대에서 바라본 안산 남쪽 자락

▲  무악산 동봉수대에서 바라본 안산 남쪽 자락

안산 잣나무숲길 안산 북쪽 메타세콰이어 숲길

▲  안산 잣나무숲길

▲  안산 북쪽 메타세콰이어 숲길

 



 

봄을 몰아낸 여름 제국(帝國)이 서서히 이빨을 드러내던 6월의 끝 무렵, 서울 도심의 서
쪽 뒷동산인 안산(鞍山)을 찾았다.

안산 서남쪽 자락에 깃든 봉원사(奉元寺, ☞ 관련글 보기)에서 길을 시작하여 15분 정도
숲길을 오르니 무악정이란 2층 정자가 마중을 나온다. 무악정은 근래에 지어진 8각형 정
자로 여기서 길은 크게 2갈래로 갈리는데, 북쪽으로 내려가면 홍제1동과 연희동(延禧洞)
으로 이어지며, 동쪽 길을 10여 분 오르면 안산 정상과 무악산 동봉수대이다. 그럼 여기
서 잠시 안산에 대해 간단히 짚어보도록 하자.


▲  녹음에 잠긴 안산 숲길 (봉원사에서 무악정으로 오르는 길)



 

♠  안산의 지붕, 무악산 동봉수대(毋岳山 東烽燧臺)

▲  정상 입구에 자리한 무악정(毋岳亭)

서울 도심 서쪽에 누워있는 안산은 해발 295.9m의 조촐한 산이다. 대륙을 향해 뻗어가는 의주
로(義州路)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서울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仁王山, 338m)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홍제천(弘濟川)을 사이에 두고 백련산(白蓮山)과 이어진다.
산의 영역은 남쪽으로 천연동(天然洞)과 북아현동(北阿峴洞), 북쪽은 홍제동과 연희동, 동쪽
은 의주로, 서쪽은 서대문구청 뒷쪽과 연세대에 이르며, 남북으로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3km
내외이다.

안산이란 이름은 산의 모습이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고자 걸치는 길마처럼 생겼다고 해서
유래된 것으로 길마재라고도 부른다. <안(鞍)은 안장을 뜻함> 모래내, 추모련, 무악산이란 이
름도 지니고 있으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서 봉우재라 불리기도 했다. 그만큼 안산에 대한
속세의 관심이 지대했다는 뜻이다.
서울의 남주작(南朱雀)인 남산(南山, 목멱산)보다는 조금 높으나 인왕산과 서울의 북현무(北
玄武)인 북악산(北岳山, 백악산)보다는 조금 낮으며, 이들 산과 비슷하게 덩치도 고만고만해
아무리 산행을 길게 잡아도 2시간 내외면 충분하다. 또한 바위와 벼랑이 많은 동쪽 정상부를
제외하면 산세가 완만하고 산길이 잘 닦여져 있어 누구든 부담 없이 안길 수 있으며, 조망도
일품이고 수맥도 풍부하여 20여 개의 약수터가 나그네의 목마름을 어루만진다.

지리적인 위치를 보면 인왕산과 함께 서울 도심을 서북쪽으로 둘러싼 형태로 예나 지금이나
서울을 지키는 주요 요충지이다. 하여 산을 둘러싼 다툼도 여럿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1623년에 일어났던 이괄(李适)의 난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년)의 주역이던 이괄은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
으켜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했으며, 서인(西人) 패거리에 의해 왕위에 오른 얼떨떨한 인조(仁
祖)는 서인 일당을 데리고 충청도 공주(公州)로 급하게 줄행랑을 쳤다.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은 인조의 어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을 토벌하고자 안산에
진을 쳤는데, 도성을 점령하여 잔뜩 자만감에 빠진 이괄은 도성 사람들에게
'내가 저것들을 단숨에 때려잡을 것이니 나와서 싸움이나 구경하도록!' 자신감을 강하게 내비
췄다.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인왕산 서쪽으로 나가 장만의 군사와 대치했다. 도성 백성들은
그 싸움을 구경하고자 인왕산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는데, 사람들이 대체로 하얀 옷을 즐겨입다
보니 산을 가득 메운 그들로 인해 산이 마치 하얀 백로처럼 보였다고 한다.
 
관군을 맞은 이괄은 처음에는 여유롭게 전쟁을 진행했으나 난데없이 불어닥친 강풍에 기가 꺾
여 장만에게 몰리고 말았다. 그래서 서둘러 도성으로 도망쳤으나 백성들이 성문을 죄다 걸어
잠구면서 도성을 포기하고 한강을 건너 이천, 여주까지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내부 갈등으로
결국 부하에게 살해되어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만다.
이때 살아남은 이괄의 부하들은 목을 붙잡고 후금(後金)으로 도망쳤는데, 그들은 청태종(淸太
宗)에게 광해군(光海君)의 복수를 구실로 조선을 치라고 들쑤셨다. 그래서 그 푸닥거리로 일
어난 것이 바로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년)이다.
1636년 12월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청나라군이 안산과 무악재의 눈치를 보며 서울로 진격
했고, 1950년 9월에는 인천(仁川)에 상륙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되찾고자 북한군과 격전
을 벌였다.

안산의 품으로 들어서려면 서대문구청이나 홍제천 인공폭포(연희숲속쉼터). 봉원사, 천연동,
독립문파크빌, 무악재역, 홍제1동, 한성과학고 등지에서 접근하면 된다. 또한 서대문구청에서
안산자락길이라 불리는 둘레길(7km)을 야심차게 닦아놓았는데, '쉽게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여
행길 10선'에 꼽혀 국민적인 둘레길로 격하게 칭송을 받고 있다.

안산 서남쪽 자락에는 서울 지역의 주요 고찰(古刹)이자 영산재(靈山齋)의 성지(聖地)인 봉원
사가 있고, 산 동쪽 정상에는 무악산 동봉수대가 있으며, 연희숲속쉼터와 안산자락길, 메타세
콰이어숲길, 잣나무숲길 등의 명소가 준비되어 있어 지루할 틈이 거의 없다.


▲  안산 동쪽 정상 밑에 자리한 헬기장
(서쪽 정상과 동쪽 정상 사이)

▲  안산 동쪽 정상에 씌워진 무악산 동봉수대 - 서울 지방기념물 13호

하늘과 맞닿은 안산의 지붕에는 2개의 봉우리가 봉긋 솟아있다. 이중 서쪽 봉우리가 안산 정
상으로 안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나 그곳에는 군사시설이 있어 출입이 100% 통제되어 있다. 하
여 자유로운 공간인 동쪽 봉우리(동쪽 정상)가 실질적인 정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서쪽 봉우
리보다 약간 낮을 뿐, 높이는 거의 비슷하며 바로 그 봉우리에 무악산 동봉수대(문화재청 지
정 명칭은 '무악산 동봉수대터')가 천하를 굽어보며 요새처럼 자리해 있다.

봉수대는 불을 피워 연기와 불빛을 이용해 변방의 소식을 서울로 빠르게 전달하던 것으로 주
로 산 정상에 자리를 닦았다. 지금처럼 전화나 인터넷이 있던 시절이 아니니 봉수대의 역할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고 그 봉수대를 이용한 봉수체제가 그나마 제일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비와 눈이 내려 연기가 여의치 못할 때는 봉수지기가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조선시대 봉수제(烽燧制)는 1438년에 확립되었는데, 그때 무악산(안산) 정상에 봉수대가 만들
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악산은 안산의 다른 이름으로 안산과 인왕산 경계에 자리한 무악재에
서 비롯됨)
지금은 동봉수대 1개 밖에 없지만 원래는 2개로 동,서로 구분되어 있었다. 동봉수대는 조선의
제3봉수로(烽燧路)의 경유지로 평안도 강계(江界)에서 시작하여 황해도(黃海道)와 파주, 고양
해포나루, 무악산 동봉수대를 거쳐 남산 훈도방(남산 목멱산 봉수대)에서 그 끝을 맺는다. 이
노선은 직봉 78곳, 간봉 22처를 경유한다. 그리고 서봉수대는 제4봉수로의 경유지로 황해도에
서 시작하여 경기도 해안을 따라 고양시 고봉, 무악산 서봉수대를 거쳐 남산 명래방으로 연결
되며, 직봉 71처, 간봉 22처를 경유한다.

이들 봉수대는 1894년 이후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귀신도 모르게 녹아 없어졌으며, 그 터만 아
련히 남아 전하던 것을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동쪽 정상에 있던
동봉수대만 복원되었다. 허나 서쪽 정상에 있던 서봉수대터는 군부대가 있는 관계로 복원되지
못했다.

비록 동봉수대가 복원되긴 했으나 주위가 문화유산과 어울리지 않고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다
는 문제점이 2008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하여 그때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 문화재위원들
이 현장실사와 고증을 통해 화강석 성곽으로 재현하기로 결정하고 기존의 봉수대를 부시고 2
단의 석축을 다진 다음 그 위에 봉수대를 얹혔다.
허나 이번에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의 맛이 떨어진다고 민원이 들어와 지금의 모습으로 어
색하게 재현되었다. 그러니까 원래의 모습이 아닌 그저 사람들 입맛에 맞게 이리저리 변질을
시킨 꼴이다. 굳이 좋게 포장한다면 융통성이 있고 시대에 맞게 재현된 것이 되겠지.
그러다보니 봉수대를 받치고 있는 석축과 불을 피우던 봉수대, 봉수대 주변 테두리의 돌 피부
가 확연히 차이가 나서 어색하기 그지 없다. 봉수대 석축을 이루는 돌은 고색의 기운이 약간
돌지만 봉수대와 테두리에 쓰인 돌은 하얀 피부로 파리가 능히 미끄러질 정도로 맨질맨질하다.


▲  천하를 굽어보며 왕년의 향수를 달래는 봉수대
연기를 모락모락 풍기며 불빛을 날리던 왕년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안산 정상을 수식하는 장식용이자 전망대 그 이상도 아니게 되었다.

    ◀  때깔이 고운 하얀 피부의 봉수대
봉수대 가운데에 있는 네모난 창을 통해 불과
연기를 피웠는데, 그 연기는 봉수대 꼭대기를
통해 하늘로 솟구쳤다.

▲  남쪽에서 바라본 동봉수대

▲  새롭게 둘러진 봉수대 테두리

봉수대를 모자처럼 눌러쓴 안산 동쪽 정상, 그 동쪽은 바위로 이루어진 낭떠러지이고, 북쪽과
남쪽은 경사가 다소 각박해 봉수대 복원 이후 추락사고의 위험이 늘 제기되었다. 하여 2011년
이후 봉수대를 새로 갈면서 주변에 하얀 피부의 테두리를 성곽처럼 두른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존의 봉수대 모습을 다소 잃게 되었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인왕산과 무악재
그날따라 안개가 말썽이라 시야는 다소 흐릿했다. 이렇게 보면 인왕산이
좀 낮아보일 수 있지만 저곳이 이곳보다 무려 40m 이상 높다.
그래도 서울을 지키는 당당한 우백호가 아니던가~~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①
홍제동과 홍은동, 녹번동, 평창동, 북한산(삼각산) 서남부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②
바로 밑으로 옛 서대문형무소를 간직한 서대문독립공원과 독립문 주변을
비롯하여 서울 도심부와 남산이 바라보인다. 안개만 아니었다면
시야가 더욱 나래를 펼쳤을 것인데 하늘의 심술이
그저 아쉽기만 하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③
안산 남쪽 자락과 서울 도심부, 아현동 지역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흐릿한 천하 ④
안산 남쪽 자락과 봉원사, 신촌, 서대문구 지역


안산 정상은 높이에 비해 조망이 아주 휼륭하다.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높은 서울 장
안을 발 아래 두며 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뫼에 오르는 이유의 큰 하나는 바로 이런 조망
맛을 누리고자 함으로 이때만큼은 제왕도, 옥황상제도, 청와대 주인도 부럽지가 않다.
정상에서 보이는 범위는 가까이로 인왕산과 무악재, 독립문, 서울 도심부, 홍제동, 신촌, 북
한산(삼각산), 북악산(백악산)을 비롯해 멀리 서울 동부, 불암산, 아차산, 여의도, 서울 서남
부, 동작구, 강남구, 관악산과 호암산 등이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와 속세에서 오염되고 상처
받은 두 눈이 제대로 호강을 누린다. 그래서 왜 이곳에 봉수대를 세우고 이괄의 난(1623년)과
6.25전쟁, 그리고 지금까지 군사적인 요충지로 절찬리에 쓰이고 있는지 십분 이해가 간다.

* 무악산 동봉수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산1



 

♠  안산에 녹아들다 (잣나무숲, 메타세콰이어숲길)

▲  가파른 벼랑을 이루고 있는 안산 북쪽 자락

안산 동쪽 정상에서 시원스러운 산바람과 조망을 누리며 20분 정도 머물렀다. 비록 하늘의 비
협조로 시야는 썩 좋지 못했으나 마치 학의 등에 올라탄 개미처럼 흐릿한 천하를 굽어보니 기
분은 즐겁다.
이곳은 예전에도 가끔씩 찾았던 곳이고 땅꺼미가 자욱한 저녁에도 침침한 두 망막을 무릅쓰고
올라가 도심 야경을 즐기며 일행들과 곡차(穀茶) 1잔 걸치기도 하였다. 지금도 1년에 서너 번
정도 찾으며 안산에 대한 나의 변치 않는 마음을 비춘다.

동쪽 정상에서 다시 무악정 방면으로 내려가면 헬기장이 있다. 여기서 길은 3갈래로 갈리는데
, 서쪽은 무악정으로, 남쪽은 안산 남쪽 능선, 그리고 북쪽은 홍제동으로 이어진다. 그중 북
쪽 길은 아직 미답(未踏)의 상태라 미답지를 하나라도 더 지우고자 북쪽 길을 선택했다. 그
길은 각박한 경사로 가늘게 이어져 있으며 바로 동쪽이 무악재와 접한 벼랑이라 각별한 주의
가 필요하다. (길 중간중간에 바위들이 있음)


▲  안산 정상 북쪽 밑에 자리한 안천약수터 주변

정상 헬기장에서 북쪽 길을 6~7분 정도 내려 가면 안천약수터가 모습을 비춘다. 안산에서 가
장 높은 곳에 자리한 약수터로 하늘과 가까운 곳에 있으니 물맛도 좀 특별할 것이라 여겨지
나 내가 갔을 때는 여름 가뭄으로 물은 완전히 말라버렸고, 여러 바람직하지 않은 것들이 검
출되어 '음용 부적합' 빨간 딱지를 받은 상태였다.
하긴 이곳만의 일이랴. 안산을 비롯해 남산과 인왕산, 북악산(백악산)의 많은 약수터도 비슷
한 곤란을 겪고 있어 서울 도심에서 깨끗한 자연산 물을 섭취할 수 있는 공간이 줄고 있다.
그만큼 서울의 건강이 나쁘게 변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샘터 주변에는 간단한 운동시설과 쉼터 등이 닦여져 있으며, 동쪽에는 주름진 바위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다.

▲  깔끔하게 정비된 보람도 없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안천약수터

▲  샘터 동쪽에는 주름진 바위와 간단한
운동시설이 모여있다.


▲  안천약수터에서 바라본 무악재와 인왕산

▲  안산 북쪽 자락 숲길
인적도 없는 호젓한 산길을 혼자 거닐으니 마치 아비규환의 속세를
벗어난 기분이다. 이런 것이 바로 해탈감이라고나 할까?
비록 잠시뿐이지만..


▲  안산 메타세콰이어 북쪽 숲 직전 숲길

안천약수터에서 북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서 직진하면 안산자락길과 홍
제동으로 바로 이어지고, 왼쪽(서쪽)으로 가면 메타세콰이어숲이 싱그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안산에는 북쪽 자락과 서쪽 자락(숲속무대 주변)에 메타세콰이어숲을 닦았는데, 이들은 안산
을 꾸미면서 조성된 안산의 아름다운 얼굴이다. 북쪽 숲은 서쪽 숲에 비해 덩치가 매우 작아
정말 순식간에 숲길이 끝나 조금은 섭섭하다. 허나 늘씬하게 솟아나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 시
원시원하니 그것이 발음도 어려운 외래종 메타세콰이어의 매력이라 하겠다. 안산자락길은 북
쪽 숲 밑을 지나가며 서쪽 숲 한복판을 가로질러 안산을 1바퀴 휘감는다.


▲  안산 북쪽 메타세콰이어숲길
군살 없이 쭉쭉 솟은 메타세콰이어가 하늘을 가리며 우수한 그늘을 베푼다.


▲  한낮에도 거의 어두운 메타세콰이어숲의 위엄
해가 긴 여름을 우걱우걱 씹어먹으며 낮의 길이를 감소시킨다.

▲  북쪽 메타세콰이어숲에서 잣나무숲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숲길

▲  드디어 이른 안산자락길 (잣나무숲길)

북쪽 메타세콰이어 숲에서 서쪽 산길을 고집하면 무장애길로 이루어진 안산자락길이 마중을
한다.
안산 허리를 따라 이어진 안산자락길은 이 땅에 흔한 둘레길의 하나로 '둘레길' 대신 '자락
길'을 칭하고 있는 점이 이채로운데, 총 길이는 7km로 2010년 10월부터 3단계 과정을 거쳐
2013년 12월 완성을 보았다.
총 사업비는 48억(서울시 지원 33억, 서대문구 15억)으로 노약자와 장애인, 휠체어나 유모차
의 편의를 위하여 전 구간을 무장애자락길(나무데크길, 마사토 포장길)로 싹 닦았다. 그래서
2016년 4월 한국관광공사에서 선정한 '쉽게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여행길 10선'의 하나로 꼽
혀 국민적인 둘레길로 널리 칭송을 받기도 했다.
허나 너무 편리를 강조하다 보니 산길의 진미인 흙길이 거의 없는 것이 단점이다. 하여 흙길
을 원한다면 다른 산길을 이용하거나 자락길 안쪽에 닦여진 초록숲길을 이용해야 되며, 자락
길이 산자락에 있기 때문에 시내에서 접근하려면 어느 정도 오르막길과 산길을 겪어야 만날
수 있다.

안산자락길은 연희숲속쉼터 윗쪽, 자락길전망대, 천연마당쉼터, 안산천약수터, 숲속무대, 메
타세콰이어숲, 잣나무숲을 두루 거쳐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순환형으로 봉원사나 천연동
뜨란채아파트, 독립문파크빌아파트, 무악재역, 기원정사, 연희숲속쉼터, 서대문구청에서 접근
하면 된다.


▲  잣내음으로 그윽한 잣나무숲길

안산자락길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잣나무숲이 진한 잣내음을 들이밀며 나타난다. 이곳은 연희
숲속쉼터와 메타세콰이어 서쪽 숲 사이에 자리해 있는데, 숲 한복판에 안산자락길이 흘러가
그림 같은 잣나무숲길을 빚어내고 있으며, 숲길의 길이는 0.3km로 메타세콰이어숲과 함께 안
산을 꾸미면서 조성된 안산의 또 다른 얼굴이다.
잣내음이 가득해 상쾌한 느낌을 안겨주며, 잣나무가 베푼 산바람이 비록 약하긴 하지만 속세
의 기운과 여름의 기세를 꾸준히 털어간다. 이 숲을 지나면 바로 메타세콰이어 서쪽 숲길이
펼쳐지나 그곳은 이미 여러 번 인연을 지은 터라 길을 접고 아직 발자국을 남기지 못한 안산
자락길 북쪽 구간으로 방향을 돌렸다.


▲  저 자락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원스럽게 뻗어가는 잣나무숲길의 위엄

▲  잣나무숲길 남쪽 구간

서울에 대표적인 잣나무숲으로는 이곳 외에도 동작충효길 고구동산 잣나무숲과 호암산(虎巖山
) 잣나무숲이 있다. 이들이 시골에 있었다면 감흥이 덜했겠지만 번잡함이 연상되는 서울 한복
판에 고스란히 박혀 있으니 그 감흥은 클 수 밖에 없다. 그만큼 자연은 인간에게 소중하다.



 

♠  안산자락길 마무리

▲  안산자락길 북쪽 전망대

잣나무숲에서 잠시 자락길을 버리고 서쪽으로 내려가면 넓게 잘 닦여진 안산 산책로(연희로32
길)가 나온다. 그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올라온 길로 안산자락길이 이 길의 신세를 잠시
지며 동북쪽으로 흘러가는데 그 길의 끝에서 폭이 확 줄어들면서 북쪽 전망대가 고개를 내민
다.

북쪽 전망대는 안산의 가장 북쪽 끝(모래내로 이북은 제외)으로 비록 조망의 질은 정상보다
엷어도 홍제동과 홍은동, 무악재, 탕춘대능선, 북한산(삼각산) 등이 흔쾌히 시야에 들어온다.
앞서 잣나무숲에서 내려온 자락길과 연희로32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북쪽 전망대까지 1890년대
부터 고약했던 왜정(倭政) 시절까지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100여 인의 정보가 담긴 안내문이
차례대로 걸려 있어 잠시 옷깃을 여미게 한다. (자락길 전망대에도 일부가 있음)
이들의 안내문을 설치한 것은 안산 동남쪽 밑에 서대문독립공원이 있어서 그런 것인데, 자락
길을 거닐면서 이 땅의 광명을 위해 숭고하고 거룩한 삶을 살다간 그들을 생각하고 기려보자.
그것이 안산이 우리에게 준 의무이자 숙제이다.

북쪽 전망대에서 무악재를 거쳐 독립문파크빌까지 나무로 다진 무장애데크길이 펼쳐지며, 홍
제동과 무악재에서 안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만 있었을 뿐, 무악재 옆을 가로질러 남북으
로 이어지는 산길은 원래 없었다. 그러다가 자락길이 닦이면서 발길이 어려웠던 안산 무악재
구간 접근이 가능해졌다.


▲  안산자락길 북쪽 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바로 앞에 홍제동과 홍은동을 위시하여 인왕산과 북한산(삼각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  안산자락길 북쪽 구간과 무악재 구간이 만나는 곳
길 경계에 계수기(計數機)를 설치하여 안산자락길을 이용하는
사람 수를 조용히 체크한다.

▲  안산자락길 무악재 구간 (북쪽 전망대에서 무악재 방면)

▲  서울에도 흔들바위가?? 귀엽게도 들어앉은 안산 흔들바위

안산자락길 북쪽 전망대에서 자락길을 따라 남쪽으로 조금 가면 흔들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마
중을 한다.
커다란 암반에 바짝 붙어있는 돌덩어리가 흔들바위로 흔들바위의 대명사인 설악산 흔들바위보
다는 볼품과 위엄이 많이 떨어진다. 허나 손으로 밀면 아주 조금은 흔들거려 흔들바위의 자격
은 그런데로 갖추고 있다. 허나 대부분 사람들이 지나칠 뿐, 그를 밀어 흔들바위의 이름값을
해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 속세의 관심이 시급하다.

이 바위는 안산자락길 조성으로 발견된 것으로 암반 위에 철썩 붙은 것이 충주 미륵리절터의
공기돌바위와 비슷한 폼이다.
안산은 돌이 많은 산이라 동쪽 정상 주변과 동쪽 자락을 중심으로 바위와 벼랑이 즐비하니 이
바위 역시 그중의 하나로 대자연이 안산에 살포시 얹혀놓은 소소한 작품이다. 그 동쪽에도 잘
생긴 바위 하나가 이름도 없이 자리해 있는데, 동쪽에서 보면 거북이가 바위에 웅크리고 앉아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모습이다.

▲  흔들바위 동쪽에 있는 이름 없는 바위

▲  너와집쉼터 입구

흔들바위를 지나 무악재 쪽으로 움직이면 너와집쉼터 이정표가 마중한다. 그 이정표의 안내를
받으며 서쪽 산길을 오르면 숲속에 묻힌 너와집이 진하게 모습을 비춘다. 서울 도심에서 너와
집이라니? 흔들바위만큼이나 신선하기 그지 없는데 그는 서대문구청에서 안산자락길을 다지면
서 조촐한 여흥거리로 마련한 것으로 경상북도 산골의 너와집을 현대식으로 조금 손질하여 지
은 것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살림집은 아니라고 하며, 관리하는 사람이 매주 여러 번 찾아와 관리를 하거
나 잠깐씩 머문다. 서울에 거의 유일한 너와집으로 너와집 체험 겸 전통찻집으로 활용하는 것
이 좋을 듯 싶은데, 그냥 눈요깃감으로만 두고 있는 것이 조금 아쉽다.

집 옆에는 하얀 피부의 위성방송 안테나가 귀를 열고 있어 이런 산골까지 TV가 들어오나 놀라
울 따름이다. 허나 생각해보니 여긴 엄연한 서울 한복판이다. 지리산이나 태백산맥, 개마고원
산골이 아니다.
집 앞에는 안산이 베푼 조그만 개울이 속세를 향해 흘러가는데, 그 개울에는 나무다리가 있으
며, 집 주변에는 장독대와 너와집쉼터가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다.


▲  안산 산골에 숨겨진 너와집
이렇게 보면 강원도나 경북의 첩첩한 산골처럼 보이지만 현실은 엄연한
서울 한복판이다. (서울 4대문이 바로 지척임)

▲  너와집 옆에 자리한 너와집쉼터

▲  너와집 샘터

▲  시원스럽게 뻗은 안산자락길
무악재 구간

▲  무악재 서쪽 벼랑에 닦여진
자락길전망대


자락길전망대는 무악재 서쪽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닦여져 있다. 이곳은 자락길을 닦으면서 달
아놓은 공간으로 필체가 돋보이는 '자락길전망대' 현판이 인상적인데, 이 글씨는 2012년 10월
에 작성된 것으로 글씨 좌우에 도장 무늬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투구처럼 생긴 바위와 두 다리를 쉴 수 있는 의자가 여럿 설치되어 있고, 바로 밑에
자리한 홍제동을 비롯해 홍은동과 무악재, 인왕산, 북한산(삼각산) 등이 시야에 잡히나 보이
는 범위는 좁다.


▲  자락길전망대에서 바라본 천하
회색빛으로 물든 홍제동과 홍은동 지역을 비롯해 북한산(삼각산) 서남쪽 자락과
인왕산 일부가 두 망막에 들어온다.

▲  자락길전망대 바위 (투구바위)
바위 이름은 아직 없으나 일부가 투구처럼 생겨서 투구바위라 불러도 손색은
없어 보인다. 자락길전망대 개설로 바위 아랫도리가 가려져서 그렇지
저 바위 자체가 장대한 바위 벼랑이다.

▲  남쪽에서 바라본 자락길전망대

▲  잠깐 포장길로 안면을 바꾼 안산자락길 무악재 구간 (무악재 남쪽)

▲  숲속에 자리한 조그만 야외 독서실, 자락길 북까페(Book cafe)

자락길 전망대에서 무악재 구간을 넘으면 조그만 책장을 지닌 북까페가 마중한다. 이곳은 책
장과 기와 정자, 그리고 동그란 탁자와 의자 세트가 여럿 놓여져 있는데, 책은 대부분 기증받
은 것으로 누구든 기증과 독서가 가능하다. 허나 그렇다고 책을 소장용으로 가져가지는 말자.
이곳이 공용 북까페의 성격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말이다.


▲  북까페에서 바라본 안산 정상 (가운데 보이는 봉우리가 정상)

나는 1시간 전까지만 해도 저 봉우리 정상(무악산 동봉수대)에 서 있었다. 허나 눈을 떠보니
나는 그 한참 밑 북까페에서 서성이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정상에 있던 것은 혹여 꿈속은 아닐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축지법이나 순간이동을 쓴
것일까? 산과 자락길은 그대로인데 나란 존재는 계속 바뀌니 말이다. 이렇게 보니 정말 안산
을 휘감듯 돌아다녔다.


▲  한성과학고 뒷쪽 안산자락길

▲  한성과학고 뒷쪽 안산자락길에서 바라본 서대문독립공원과 독립문 주변

▲  안산자락길 현저동 구간

무악재를 넘은 안산자락길은 현저동(峴底洞) 구간으로 들어서면서 한성과학고와 독립문파크빌
아파트의 뒤쪽을 지나간다. 이 구간은 벼랑 일색이라 잔도(棧道)처럼 나무데크길을 길게 내었
으며, 벼랑길을 지나면 포장길이 펼쳐진다.


▲  벼랑 밑을 지나는 안산자락길 현저동 구간

안산자락길이 너무 안(安)스럽게 닦여진 탓에 움직이는 길이 정말 순식간이다. 북까페에서 한
성과학고 뒷쪽을 지나 어느덧 독립문파크빌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부터 나무데크길은 끝나고
포장길이 펼쳐져 안산 남부까지 이어지는데, 제아무리 여름이라고 해도 19시가 넘어간 상태라
햇님은 꼴딱꼴딱 지평선 너머로 꽁무니를 뺀다. 그 사이를 비집고 어두운 땅꺼미가 자리를 피
며 천하에 어두운 물감을 물들인다.

독립문파크빌에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 독립문삼호아파트 뒷쪽에서 안산자락길과 인연을 정리
하고 시내로 내려왔다. 이렇게 하여 안산 여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안산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 신촌동, 연희동, 홍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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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3년 10월 9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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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의 포근한 뒷산을 거닐다. 안산 나들이 ~~~ (영천시장, 안산자락길, 무악산 동봉수대)

 


' 서울 도심의 포근한 뒷산, 안산 (무악산 동봉수대) '

▲  무악산 동봉수대(안산 동쪽 정상)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천하만물의 마지막 희망, 늦가을이 세월의 저편으로 뉘엿뉘엿 저물고 혹독한 겨울 제국(帝
國)이 한참 기세를 올리던 11월 끝 무렵, 떠나가는 늦가을 누님의 뒷자락이라도 잡아볼 생
각에 친한 후배와 서울 도심의 포근한 뒷동산, 안산을 찾았다.

오후 3시 서대문역(5호선)에서 그를 만나 독립문 남쪽에 있는 영천시장에서 떡복이와 오뎅,
튀김 등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였다. 원래 시장은 일정에 없었으나 안산에 가다보니 자연히
지나치게 되었고,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쿨하게 못지나치듯 시장 먹거리를 온전히 뿌리치기
가 어려웠다.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란 아름다운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지! 그래서
잠시 안산을 잊고 먹거리 섭취에 임했다.
그렇게 요기를 마치고 포만감의 행복을 누리며 독립문 삼호아파트 뒷쪽으로 흘러가는 안산
자락길로 들어섰다. 그 길을 따라 안산의 남쪽 기점인 천연뜨란채아파트로 이동, 거기서부
터 안산의 품으로 들어섰다.


 

  안산(鞍山)의 품으로 들어서다.

▲  안산 남쪽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
멀리 관악산과 호암산도 덩달아 시야에 들어온다.


서울 도심 북서쪽에 누워있는 안산은 해발 295.9m의 조촐한 산이다. 대륙을 향해 뻗어가는 의
주로(義州路)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서울의 영원한 우백호(右白虎)인 인왕산(仁王山, 338m)
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북쪽으로는 홍제천(弘濟川)을 사이에 두고 백련산(白蓮山)과 이어진다.
산의 영역은 남쪽으로 천연동(天然洞)과 북아현동(北阿峴洞), 북쪽은 홍제1동과 연희동. 동쪽
은 의주로, 서쪽은 서대문구청 뒷쪽과 연세대에 이르며, 남북으로 아무리 길게 잡아봐야 3km
남짓이다.

안산이란 이름은 산의 모습이 마치 말과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하는 길마처럼 생겼다
하여 유래된 것으로 <안(鞍)은 안장을 뜻함> 길마재라고도 하며, 모래내, 추모련, 무악산이란
이름도 지니고 있다. 또한 산 꼭대기에 봉수대가 있어 봉우재라 불리기도 했다. 서울의 남주작
(南朱雀)인 남산(南山, 목멱산)보다는 조금 높지만 인왕산과 북악산(北岳山, 백악산)보다는 조
금 낮으며, 이들 산과 비슷하게 덩치도 고만고만하여 아무리 산행을 길게 잡아도 2~3시간 내외
면 충분하다.
또한 바위와 벼랑이 많은 정상부(동쪽 정상)를 제외하면 산세가 완만하고 산길이 잘 닦여져 있
어 누구든 부담없이 안길 수 있으며, 편한 둘레길의 정석으로 추앙받는 안산자락길이 산 허리
에 둘러져 있다. 게다가 조망도 일품이고 수맥도 풍부하여 20여 개가 넘는 약수터가 나그네의
목마름을 어루만진다.

지리적인 위치를 보면 인왕산과 함께 서울 도심을 서북쪽으로 둘러싼 형태로 예나 지금이나 서
울을 지키는 주요 요충지이다. (지금도 안산 정상에 군사시설이 있음) 하여 산을 둘러싼 다툼
도 여럿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것이 1623년에 일어났던 이괄(李适)의 난이다.
인조반정(仁祖反正, 1623년)의 주역이던 이괄은 논공행상(論功行賞)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
으켜 순식간에 서울을 점령했다. 서인(西人) 패거리에 의해 왕위에 오른 얼떨떨한 인조(仁祖)
는 서인 일당을 데리고 충청도 공주(公州)로 급하게 줄행랑을 쳤다.

도원수(都元帥) 장만(張晩)은 어명을 받아 군사를 이끌고 반란군을 토벌하고자 안산에 진을 치
니 도성을 점령하여 잔뜩 자만감에 빠진 이괄은 도성 사람들에게
'내가 저것들을 단숨에 때려잡을 것이니 나와서 싸움이나 구경하도록~~!' 자신감을 강하게 내
비췄다. 그리고 군사<군사 중에 임진왜란 때 투항한 항왜(降倭)들이 많았음>를 이끌고 인왕산
서쪽으로 나가 장만의 군사와 대치했다. 도성 백성들은 그 싸움을 구경하고자 인왕산에 잔뜩
모여들었는데, 조선 사람들은 대체로 흰 옷을 즐겨입다보니 산을 가득 메운 그들로 인해 산이
마치 하얀 백로처럼 보였다고 한다.

관군을 맞은 이괄은 처음에는 여유롭게 전쟁을 진행했으나 난데없이 불어닥친 강풍에 기가 꺾
여 장만에게 몰리고 말았다. 그래서 서둘러 도성으로 도망쳤으나, 백성들이 성문을 죄다 걸어
잠구면서 도성을 포기하고 한강을 건너 이천, 여주까지 줄행랑을 쳤다. 하지만 내부 갈등으로
결국 부하에게 살해되어 목 없는 귀신이 되고 만다.
이때 살아남은 이괄의 부하들은 목을 붙잡고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후금(後金)으로 도망쳤는
데, 그들은 청태종(淸太宗)에게 광해군(光海君)의 복수를 구실로 조선을 치라고 들쑤셨다. 그
래서 일어난 것이 바로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년)이 되겠다.
1636년 병자호란(丙子胡亂) 때는 청나라군이 안산과 인왕산 사이의 무악재를 눈치를 보며 넘었
으며, 1950년 9월에는 인천(仁川)에 상륙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되찾고자 북한군과 격전을
벌였던 현장이기도 하다.

안산의 포근한 품으로 들어서려면 서대문구청이나 홍제천인공폭포(연희숲속쉼터). 봉원사, 천
연동, 홍제1동, 무악재역, 한성과학고 등지에서 접근하면 된다. 근래에는 서대문구청에서 안산
자락길이라 불리는 둘레길(7km)을 야심차게 닦았는데, '쉽게 걸을 수 있는 편안한 여행길 10선
'에 꼽혀 국민적인 둘레길로 칭송을 받고 있다.
안산 서남쪽 자락에는 서울 지역의 주요 고찰(古刹)이자 영산재(靈山齋)의 성지(聖地)인 봉원
사가 있고, 산 동쪽 정상에는 무악산 동봉수대가 있으며, 연희숲속쉼터와 안산허브공원, 흔들
바위, 안산자락길, 메타세콰이어숲, 잣나무숲 등의 명소가 즐비해 지루할 틈이 거의 없다.
이렇게 착한 산임에도 오랫동안 인왕산과 북악산, 북한산, 남산에게 제대로 가려져 고통(?)의
시간을 보내다가 안산자락길을 계기로 동네 명소에서 벗어나 서울 굴지의 꿀단지로 훨훨 나래
를 펼치고 있다.

※ 안산 찾아가기 (2017년 1월 기준)
① 봉원사
*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6번 출구), 지하철 2호선 신촌역(3,4번 출구), 서울역버스환승센터에
  서 7024번 시내버스 이용
*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1번 출구)에서 272, 606번 시내버스를 타고 이대부고에서 하차, 동쪽
  (오른쪽) GS25시(봉원동4거리) 앞에서 7024번 시내버스로 환승 또는 도보 10분
② 천연동
* 지하철 2,5호선 충정로역(7,8번 출구)에서 서대문구 마을버스 02번(대) 천연뜨란채아파트 방
  면 차량을 타고 뜨란채아파트 101동 종점에서 하차
③ 독립문역
* 지하철 3호선 무악재역 3번 출구에서 1분 정도 가면 통일로23길 골목길이 나온다. 그 가파른
  골목길을 5~6분 정도 오르면 안산자락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 신촌동, 연희동, 홍제동


▲  안산 숲 너머로 바라보이는 서울 시내 (남산과 N서울타워도 덤으로)

▲  안산 산책로에서 만난 조촐한 쉼터

천연동에서 안산 정상까지는 능선길을 따라 30~40분 정도 걸리는데, 경사가 거의 느긋하고 길
도 잘 닦여져 있다. 능선길이라 오로지 직진을 고수하면 무난하게 봉수대가 있는 정상으로 갈
수 있으며, 서울 도심과 독립문, 서대문구/마포구 지역만 보이던 시야도 하늘과 가까워질수록
정비례로 늘어나 조망의 품질도 높아진다.

늦가을의 향연을 누린 나무들은 무심히 다가온 겨울 제국의 눈치를 보며 거추장스러운 잎을 떨
구고 초라한 몰골로 내년 봄을 기다린다. 몇몇 나무들은 나뭇잎을 단단히 붙들며 가을을 끝까
지 고수하지만 이미 하늘마저 겨울로 가득차 버렸다. 바닥에 떨어진 낙엽들은 귀를 접으며 인
생의 마지막을 노래하고, 산꾼들은 낙엽의 사각사각 소리가 듣고자 그들을 밟고 지나간다. 낙
엽의 처절한 말로를 보면서 '올해도 완전 저물었구나, 이제 곧 1살이 강제로 누적되겠지~!' 싶
은 우울감이 나를 감싼다.


▲  안산 능선길 동쪽으로 보이는 독립문 주변과 인왕산
인왕산 너머로 북악산(백악산)과 북한산(삼각산)까지 두 눈에 들어온다.

▲  안산 능선길에서 바라본 천연동, 서대문 주변과 서울 도심

▲  정상과 가까운 곳에 자리한 안산천약수터

안산 정상을 10여 분 정도 앞둔 곳에서 길은 능선길과 서북쪽 길로 갈린다. 정상으로 빨리 가
고 싶다면 능선길을 이용하면 되나 거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고 경사가 좀 각박하여 각별한 주
의가 필요하다. 하여 잠시 여유를 갖고 서북쪽 길로 우회하니 안산에 별처럼 널린 안산천약수
터가 살짝 모습을 비춘다.
이곳은 정상에서 가장 가까운 샘터로 가뭄에도 물이 마를 날이 없다고 하는데, 여기서 안산이
베푼 약수를 몇 바가지나 들이키니 목구멍과 몸 속의 불이 싹 진화되는 것 같다.

약수터 주변에는 운동시설과 산악회에서 만든 조그만 건물이 여럿 있으며, 여기서 북쪽으로 가
면 무악정이란 2층 정자가 모습을 비춘다. 무악정은 근래에 지어진 8각형 2층 정자(亭子)로 여
기서 길은 크게 3갈래로 갈리는데, 북쪽은 홍제1동과 연희동, 동쪽은 안산 정상이다.


▲  겨울에 잠긴 안산 오솔길 (안산천약수터에서 무악정 방향)
발자국 소리, 낙엽 밟는 소리가 미안할 정도로 고요하기 그지 없다.

▲  정상 입구에 자리한 무악정(毋岳亭)
안산의 구수한 명물로 나그네들의 포근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동쪽으로 10분 정도 오르면 안산 정상과 무악산 동봉수대에 이른다.

▲  무악정 부근에서 바라본 천하
서대문구와 마포구, 한강 너머로 강남, 동작, 관악, 영등포구 지역과
관악산까지 시야에 잡힌다.

▲  안산 동쪽 정상 밑에 자리한 'H' 마크의 헬기장
(서쪽 정상과 동쪽 정상 사이)


 

  안산 정상과 무악산 동봉수대(毋岳山 東烽燧臺)

▲  안산 동쪽 정상에 자리한 무악산 동봉수대 - 서울 지방기념물 13호

하늘과 맞닿은 안산의 지붕에는 2개의 봉우리가 봉긋 솟아있다. 이중 서쪽 봉우리가 안산의 정
상으로 안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나 그곳에는 군사시설이 들어서 있어 출입이 100% 통제되어 있
다. 하여 자유로운 땅인 동쪽 봉우리(동쪽 정상, 이하 '안산 정상')가 실질적인 정상의 역할을
맡고 있다. 서쪽 봉우리보다 약간 낮을 뿐, 거의 비슷하며 바로 그 봉우리에 무악산 동봉수대(
문화재청 지정 명칭은 '무악산 동봉수대터')가 천하를 굽어보며 요새처럼 버티고 있다.

봉수대는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불을 피워 연기와 불빛을 이용해 변방의 소식을 중앙으로 빠
르게 전달하던 것으로 주로 산 정상에 자리를 닦았다. 지금처럼 전화나 인터넷이 있던 시절이
아니니 봉수대의 역할은 더욱 클 수 밖에 없었고 그 봉수대를 이용한 봉수체제가 그나마 제일
빠른 통신 수단이었다. 비와 눈이 내려 연기가 여의치 못할 때는 봉수지기가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 소식을 전했다.

조선시대 봉수제(烽燧制)는 1438년(세종 20년)에 확립되었는데, 그때 무악산(안산) 정상에 봉
수대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무악산은 안산의 다른 이름으로 안산과 인왕산 경계에 자리
한 무악재에서 비롯됨)
지금은 동봉수대 1개 밖에 없지만 원래는 2개로 동,서로 구분되어 있었다. 동봉수대는 조선의
제3봉수로(烽燧路)의 경유지로 평안도 강계(江界)에서 시작하여 황해도(黃海道)와 파주, 고양
해포나루, 무악산 동봉수대를 거쳐 남산 훈도방(남산 목멱산 봉수대)에서 그 끝을 맺는다. 이
노선은 직봉 78곳, 간봉 22처를 경유한다. 그리고 서봉수대는 제4봉수로의 경유지로 황해도에
서 시작하여 경기도 해안을 따라 고양시 고봉, 무악산 서봉수대를 거쳐 남산 명래방으로 연결
되며, 직봉 71처, 간봉 22처를 경유한다.
이들 봉수대는 구한말(舊韓末)에 봉수제가 폐지되면서 귀신도 모르게 녹아 없어졌으며, 그 터
만 아련히 남아 전하던 것을 1994년 서울 정도(定都) 600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동쪽 정상에
있던 동봉수대만 대충 복원되었다. 허나 서쪽 정상에 있던 서봉수대터는 군부대가 들어앉은 관
계로 재현되지 못했다.

비록 동봉수대가 복원되긴 하였으나 주위가 문화재와 어울리지 않고 추락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문제점이 2008년부터 꾸준히 제기되었다. 하여 그때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 문화재위원들이 현
장실사와 고증을 통해 화강석 성곽으로 재현하기로 결정하고 기존의 봉수대를 부시고 2단의 석
축을 다진 다음 그 위에 봉수대를 얹혔다.
허나 이번에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의 맛이 떨어진다고 민원이 들어와 지금의 모습으로 어
색하게 재현되었다. 그러니까 원래의 모습이 아닌 사람들 입맛에 맞게 이리저리 변질된 것이다.
굳이 좋게 포장한다면 융통성 있고 시대에 맞게 재현된 것이 되겠지.
그러다보니 봉수대를 받치고 있는 석축과 불을 피우던 봉수대, 봉수대 주변 테두리의 돌 피부
가 확연히 차이가 나 어색하기 그지 없다. 봉수대 석축을 이루는 돌은 고색의 기운이 약간이나
마 피어있는데 반해 봉수대와 테두리에 쓰인 돌은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맨들맨들한 하얀 피
부이다.


▲  천하를 굽어보며 왕년의 향수를 달래는 봉수대
연기를 모락모락 풍기며 불빛을 날리던 왕년의 시절이 있었건만 이제는
안산 정상을 수식하는 장식용이자 전망대 그 이상도 아니게 되었다.

▲  때깔이 고운 하얀 피부의 봉수대
봉수대 중앙에 있는 네모난 창을 통해 불과 연기를 피웠다. 그 연기는
봉수대 꼭대기를 통해 하늘을 찔렀다.

▲  새롭게 두룬 봉수대 테두리

봉수대를 모자처럼 눌러쓴 안산 동쪽 정상, 그 동쪽은 바위로 이루어진 낭떠러지이고, 북쪽과
남쪽은 경사가 다소 각박하여 봉수대 복원 이후 추락사고의 위험이 늘 제기되었다. 하여 2011
년 이후 봉수대를 새로 갈면서 주변에 하얀 피부의 테두리를 성곽처럼 두른 것이다. 그러다보
니 기존의 봉수대 모습을 좀 잃게 되었다.
아무리 호랑이 담배 빨던 시절에 없어진 것을 복원한 거라고 해도 철저하게 고증하여 재현했으
면 좋겠다. 입맛대로 변형을 가하면 그건 더 이상 문화유산이 아니다.


▲  안산 정상(무악산 동봉수대)에서 바라본 인왕산(仁王山)의 위엄
이렇게 보면 인왕산이 좀 낮아보이겠지만 저곳이 이곳보다 40m 이상 더 높다.
그래도 서울의 우백호(右白虎)가 아니던가~~


안산 정상은 높이에 비해 조망이 제법 일품이다. 천하 제일의 대도시로 콧대가 이만저만이 아
닌 서울을 두 발 아래 두며 제대로 굽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뫼에 오르는 이유는 바로 이런
맛이 아닐까? 이때만큼은 천제(天帝)도 황제도, 청와대 주인도 부럽지가 않다.

정상에서 보이는 범위는 바로 밑에 무악재를 비롯하여 인왕산, 독립문, 홍제동, 홍은동, 신촌,
서울 도심부, 북한산(삼각산), 북악산을 비롯해 멀리로는 서울 동부, 불암산, 아차산, 여의도,
서울 서남부, 동작구, 강남구, 관악산과 호암산(虎巖山) 등이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와 속세에
오염되고 상처받은 두 눈이 제대로 호강을 누린다. 그래서 이곳에 왜 봉수대를 씌우고 이괄의
난(1623년)과 6.25전쟁, 그리고 지금까지 군사적인 요충지로 절찬리에 쓰이고 있는지 십분 이
해가 간다.

* 무악산 동봉수대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산1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1) 홍제동과 홍은동, 불광동, 평창동,
북한산 서남부 지역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2)
홍제동과 홍은동, 녹번동, 연신내를 비롯하여 멀리 고양과 파주 지역의
산줄기까지 희미하게 바라보인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3) 서울 도심
도심을 이루는 빌딩숲 너머로 남산과 N서울타워가 시야에 들어온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4)
바로 밑에 서대문독립공원과 독립문 주변을 비롯하여 도심부와 남산,
서울 동부, 강남 지역이 바라보인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5) 안산 남부와 도심부, 신촌 지역
우리가 저 밑의 안산 남쪽 기점(천연뜨란채아파트)에서 길을 시작했는데
이렇게 보니 정말 꽤나 올라왔다. (초여름 사진)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6)
안산 남부와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여의도 63빌딩을 비롯하여
동작구와 관악산, 호암산이 앞다투어 시야에 들어온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7)
일몰이 진행되는 가운데 서대문구와 마포구, 강서 지역이 바라보인다.

▲  안산 정상에서 바라본 천하 (8)
인왕산 남쪽과 서대문독립공원, 도심부, 서울 동부 지역을 비롯해
불암산과 아차산 산줄기가 까마득하게 바라보인다.

▲  정상 바로 밑 바위 (정상 동쪽)
정상 동쪽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낭떠러지이다. 북쪽과 남쪽은 경사가 가파르며
그나마 서쪽이 좀 접근이 편하다.


안산 정상에서 발 밑에 펼쳐진 천하를 굽어보며 열심히 사진에 담으니 시간은 어느덧 6시가 되
었다. 산바람은 더욱 매서워져 바람과 맞닿은 얼굴이 아플 정도이며, 천하를 비추던 햇님은 달
님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지평선 너머로 꽁무니를 뺀다. 특히 산에서는 평지보다 일찍 해가 떨
어지기 때문에 서둘러야 뒷탈이 없다. 아무리 안산이 작은 산이라고 해도 염연히 뫼는 뫼이기
때문이다.

짙어져가는 땅거미에 안산 정상을 내주고 봉원사 방면으로 내려가는데 금세 어두워졌다. 길이
미로처럼 여러 갈래로 흩어져 조금 정신이 없었으나 길눈과 지리에 밝은 나의 직감을 믿고 내
려가니 어느덧 봉원사 경내에 이른다. 봉원사는 일몰 이후에 모든 건물을 잠궈놓기 때문에 그
규모에 맞지 않게 벌써부터 어둠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었다.
봉원사와 절 밑에 펼쳐진 마을(봉원사 승려들의 집이 대부분)을 지나면 7024번 종점과 봉원사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서울역으로 가는 7024번 시내버스를 타려고 했으나 대기시간이 길어
서 봉원동로터리, 이대부고까지 더 내려갔다. 거기까지만 가면 도심으로 가는 버스는 물 흐르
듯 넘쳐난다.

이대부고 정류장에 이르러 어디서 저녁을 먹을까 궁리를 하다가 북촌(北村)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아무리 명소나 맛집을 많이 안다고 해도 정작 필요할 때 쉽게 떠오르지 않는 것이 내 돌
머리의 단점이다. 하여 생각난 감에 북촌으로 흔쾌히 넘어가기로 했다.

퇴근/하교 손님들로 가축 수송을 이룬 272번 시내버스(면목4동↔남가좌동)를 타고 안국역에서
내려 나의 즐겨찾기 명소의 하나인 북촌으로 들어섰다. 한정식을 먹자는 의견이 있어서 마땅한
곳을 물색하던 중, 마침 부근에 '다정'이란 한정식집이 시야에 들어온다. 예전에 가봤던 집을
생각했으나 새로운 집을 개척할 겸, 별 미련 없이 그 집의 사립문을 열었다.


▲  김치 등의 밑반찬과 보쌈, 잡채, 굴

▲  고기 8조각 보쌈의 위엄

▲  달랑 3종류 6조각 전의 초라함

▲  제일 마지막에 나온 칼국수의 위엄

다정에서 2만원대의 한정식을 주문하였다. (가격은 변동 가능) 시장한 배를 달래며 맛이 어떨
까 기대를 하고 있으니 얼마 안가서 김치 등의 밑반찬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굴
과 보쌈, 잡채, 전이 차례대로 나왔는데 (그 외 몇 가지가 더 있었으나 생각이 안 남) 높은 가
격에 비해 성인 남자들이 먹기에는 양이 적었다.
좀 두둑하게 나왔으면 좋으련만 쥐꼬리마냥 찔끔찔끔 나오니 나오기가 무섭게 동이 난다. 다행
히 주인 아지매가 인심이 좀 있는지 전과 잡채, 몇몇 반찬을 더 갖다주었으나 그것으로는 택도
없었다.

그렇게 메인 메뉴를 처리하고 나니 제일 끝에 칼국수가 나온다. 칼국수 대신 밥을 먹어도 되지
만 칼국시가 양이 많다고 하여 그것을 택했다. 조개와 호박, 면발이 어우러진 칼국수는 국물이
꽤 진국이었다. 국수와 호박도 괜찮았지. 칼국수가 나오기 전까지는 배가 덜 찼지만 국수로 인
해 배는 완전히 만땅이 되었다. 이건 완전 한정식보다 칼국수가 더 생각이 날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 비싼 한정식을 끝으로 11월 안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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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17년 1월 20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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