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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03.05 서울의 상큼한 남쪽 지붕, 삼성산~호암산~목골산 <관악산호수공원, 성주암, 서울둘레길5코스, 독산자락길>

서울의 상큼한 남쪽 지붕, 삼성산~호암산~목골산 <관악산호수공원, 성주암, 서울둘레길5코스, 독산자락길>

삼성산, 호암산, 목골산 초여름 나들이



' 삼성산, 호암산, 목골산 초여름 나들이 '

호암산
▲  호암산

삼성산 성주암 호암산 북쪽 능선길

▲  삼성산 성주암

▲  호암산 북쪽 능선길

 



 

여름 제국이 서서히 고개를 쳐들던 6월의 끝 무렵, 내 즐겨찾기 뫼의 하나인 호암산(虎
巖山, 393m)을 찾았다.
툭하면 찾아오는 호암산 앓이도 잠시 해소하고 호암산과 삼성산(三聖山)에 아직까지 살
아남아 내 속을 긁는 몇 남지 않은 미답처들도 싹 정리하고자 찾은 것으로 햇님의 고개
가 서서히 꺾이던 15시에 서울대 정류장에서 길을 시작했다.
(산행시간 약 3시간, 산행거리 약 9~10km)



 

♠  관악산호수공원과 삼성산 성주암(聖主庵)

▲  삼성산과 관악산으로 인도하는 신림로 숲길

삼성산과 관악산(冠岳山, 632m)의 주요 북쪽 기점인 서울대 정류장에서 짙은 숲에 감싸인 도
로를 따라 15분 정도 가면 관악산호수공원이 잘빠진 호수와 자하정, 귀여운 석구상을 내밀며
마중을 한다.
오로지 성주암 등의 미답처(未踏處)에 정신이 팔려 그냥 넘어가려고 했으나 고양이가 생선가
게를 그냥 못 지나친다고 못이긴 척 잠시 발을 들였는데, 이곳은 서울대에서 관악산, 삼성산
으로 오를 때 꼭 거쳐가는 곳으로 바쁘면 돌아가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있듯이 잠깐 들린다고
큰일 날 것은 없다.


▲  관악산 호수공원의 귀염둥이, 석구상(石狗像)
관악산 호수공원을 조성하면서 장만한 것으로 호암산 한우물 부근에 있는
석구상을 축소, 재현했다. 그런데 기분 탓일까? 실물보다는 이곳
석구상이 훨씬 귀엽게 다가온다.

▲  관악산 호수공원의 이름값을 하는 호수

지금은 상큼한 호수공원으로 있지만 예전에는 계곡물을 이용한 수영장이 있었다. 그 수영장은
문을 닫았으나 오랫동안 방치되어 흉물스럽게 있던 것을 1996년 12월부터 거의 1년에 걸쳐 손
질을 하여 1997년 12월 자연과 어우러진 호수공원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공원에는 그 이름값을 하는 호수와 자하정, 석구상(1997년 11월 제작됨), 나무다리 2개, 분수
대, 쉼터 등이 있으며, 소나무 외 18종 9,180주, 초화류 수련 등 3,190본을 심어 아름답게 다
듬었다. 이렇게 싱그러운 공간이건만 바람직하지 않게도 옥의 티가 하나 있어 심히 불편함을
준다. 바로 왜정(倭政)과 독재 세력에 철저히 빌붙어 영혼을 팔고 부귀영달을 누렸던 서정주(
1915~2000)의 시비(詩碑)가 있다는 것이다.

서정주는 관악구 남현동(南峴洞)에서 30년이나 서식하여 관악구와도 인연이 깊다. 게다가 20
세기 주요 시인으로 쓸데없이 꼽히다보니 관악구청이 그의 그릇된 점을 살피지도 않고 문학적
업적만 내세우며 이렇게 개념도 없이 시비를 세운 것이다. 또한 서울시는 그보다 한술 더 떠
그의 남현동 2층 양옥을 인수해 내부 손질을 거쳐 그의 유품과 문학작품을 취급하는 기념관으
로 세상에 내놓는 어리석음을 범했다.
오히려 때려 부시고 연못을 파야 될 판에<예로부터 역적(逆賊)의 집은 말끔히 부시고 그 자리
에 연못을 팠음> 관악구와 서울시가 앞장을 서서 그의 흔적을 붙잡아 찬양하고 있으니 행정관
청 철밥통들의 역사의식과 개념들이 이렇게도 없다. <관악구는 낙성대(落星垈) 강감찬 장군의
영정이 도난을 당하자 이것도 쉬쉬하여 크게 욕을 먹은 화려한 전력이 있음>


▲  오늘도 평화로운 호수

호수는 거의 생태연못 수준으로 수초(水草)가 많고 오리와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거닐고 있어
평화롭고 고요한 풍경, 그 자체이다. 세상이 시끄럽든 말든 여기서는 그저 다른 세상의 이야
기 같다. 섬 복판에는 동그란 섬까지 띄워놓아 운치를 더하고 있으며 숲 너머로 서울대 농업
생명과학대학 건물이 고개를 내밀며 이곳의 경치를 시샘한다.

    ◀  연못에 두둥실 띄워진 동그란 섬
섬에는 소나무 1그루가 바깥 세상을 거부하며
고고하게 솟아있다. 인간의 손길이 거의 미치
지 않는 곳이라 마음껏 나래를 펼치며 그 섬의
주인 노릇을 한다.

◀  호수공원의 화려한 입술, 자하정(紫霞亭)
1997년에 지어진 1칸짜리 팔작지붕 정자로 살
짝 들려진 처마의 선이 꽤 경쾌하고 아름답다.


▲  북서쪽에서 바라본 자하정과 호수, 그리고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  호수를 순찰하는 압공(鴨公, 오리)의 위엄
오늘도 저들이 있기에 호수는 평안하다.

▲  성주암을 알리는 표석
관악산 호수공원을 둘러보고 성주암으로 이동했다. 공원에서 성주암까지 10분
거리로 관악산119산악구조대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르면 그 길의 끝에
성주암이 활짝 모습을 비춘다.

▲  성주암 대웅전(大雄殿)

삼성산 북쪽 끝자락이자 돌산 동쪽에 성주암(聖住庵)이 포근히 둥지를 틀고 있다. 이곳은 원
효대사(元曉大師)가 677년에 창건했다고 하는데, 그가 절을 짓고 머물렀다고 해서 성주암이라
했다고 전한다. 즉 원효대사를 성스러운 존재로 높인 것이다. 허나 이를 입증할 유물과 기록
은 아쉽게도 없는 실정이다.

14세기에 각진국사(覺眞國師)가 중창을 했다고 하는데 태정원년<泰定 元年, 원나라(몽골) 태
정제의 연호, 1324년>이라 쓰인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이때 창건되거나 중창된 것으로 여겨진
다. 그것이 성주암에서 나온 것 중 가장 늙은 유물이다.
조선 성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삼막사(三幕寺), 안흥사<安興
寺, 염불사>, 망일사<望日寺, 망월암>와 더불어 관악산의 4개 사찰로 나오며 성주사(聖住寺)
로 기록되어 있다. (삼성산을 관악산의 일원으로 보기도 함) 또한 조선 후기에 제작된 '시흥
읍지(始興邑誌)'에는 삼막사, 호압사(虎壓寺), 염불사(念佛寺)와 함께 4개 절의 하나로 나와
있어 삼성산 일대에서 제법 인지도가 있던 절임을 알려준다.
1883년 금화형기가 만든 현왕탱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으며 오래된 석탑도 1기 있었으나 왜정
(倭政) 때 왜인이 빼돌렸다.

1897년 만월(滿月)이 폐허가 된 절터에 작은 암자를 지어 법등(法燈)을 다시 켰고 1966년 혜
담(慧潭)이 중창을 했다. 1971년 화강석을 이용해 대방(大房)을 지었고 1981년 종연(宗演)이
3년에 걸쳐 대웅전을 지었으나 1997년 10월 화재로 대웅전 등 목조 건물이 모두 날라가고 말
았다. 이때 서울과 경기도의 40여 사찰이 불의의 방화를 당했다.
이후 주지 재홍(才弘)의 지도 아래 승려와 신도들이 임시 천막을 치고 3년에 걸쳐 불사(佛事)
를 벌여 지금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으며, 2006년 12월 관악구 전통사찰로 지정을 받았다.

조촐한 경내에는 대웅전과 대방 등 4~5동 정도의 건물이 있으며 늙은 유물은 커녕 고색도 다
말라버려 오랜 역사를 무색하게 한다. 절은 북/서/남쪽은 산으로 막혀있고 오로지 동쪽만 확
트여있어 관악산이 훤히 바라보이며 마치 알둥지처럼 자리 또한 포근하다. 게다가 절이 암자
에 걸맞게 아담하여 두 눈에 쏙 넣고 살피기에 별 부담이 없으며 대방 뒤쪽으로 돌산과 호암
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있다.

* 성주암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198 (신림로 15-250, ☎ 02-877-7180)

▲  성주암 대방(大房)
종무소와 선방, 요사(寮舍), 공양간의 역할을
하는 경내에서 가장 큰 건물로 그 뒤쪽에
호암산으로 넘어가는 산길이 있다.

▲  11면 관세음보살상
큰 얼굴 하나에 작은 얼굴 10개 등, 11개의
얼굴을 지닌 관세음보살이 정병(政柄)을
쥐어들며 관악산을 지그시 바라본다.


▲  대웅전 석가3존상과 화려한 닫집
마침 유가족들이 49재 중이라 들어가지는 못하고 바깥에서 살짝 담았다.

▲  성주암에서 바라본 관악산의 위엄
성주암은 관악산 조망에 아주 최적화된 곳이다. 바로 정면에 관악산이
마치 풍경화처럼 펼쳐져 있으니 말이다.

▲  대웅전 뒤쪽 바위에 주렁주렁 달린 칠성탱과 산신탱, 약사여래상

성주암은 다른 절과 달리 산신(山神)과 칠성(七星), 독성(獨聖, 나반존자)을 머금은 그 흔한
삼성각(三聖閣)이나 산신각 등의 건물이 없고, 대신 대웅전 뒤쪽의 그늘진 암벽을 활용해 칠
성탱과 산신탱을 두어 노천 삼성각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바위 피부를 무작정 깎아서 만든 것은 아니며 별도의 돌판에 그들을 새겨 벼랑 앞에
두었다. 그리고 산신탱 위쪽 벼랑에는 석조(石造) 약사여래좌상을 두었는데 그가 경내에서 가
장 높은 곳을 장식하고 있다.

▲  하얀 피부의 석조 칠성탱
파리가 미끄러질 정도로 피부가 매끈하다.

▲  산신 가족이 담긴 석조 산신탱(밑)과
석조 약사여래좌상(위쪽)


▲  5층석탑과 마니차

성주암은 바로 눈에 보이는 대웅전 주변이 전부가 아니다. 대웅전 뒤쪽 벼랑에 칠성탱과 산신
탱 등이 있으며, 대방 뒤쪽으로 가면 8각으로 다듬은 참한 모습의 석탑과 그를 반원(半圓) 모
양으로 둘러싼 마니차가 있기 때문이다.

5층석탑은 성주암의 유일한 탑으로 8각의 바닥돌과 연꽃무늬와 팔부중상(八部衆像) 등이 새겨
진 기단석(基壇石) 위에 8각의 탑신(塔身)을 세우고 그 위를 보륜(寶輪) 등의 머리장식으로
마무리를 지었다.
탑 뒤에는 '마니차'란 동그란 돌덩어리가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그는 티벳불교에서 전래된 것
으로 윤장대(輪藏臺)와 비슷한 것인데, 손으로 저것을 돌리며 염불을 하거나 소망을 빌면 경
전을 모두 이해한 것과 같다고 하며 소망도 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옛날에는 글자를 모르는
까막눈이 많다보니 저런 것을 이용해 영업을 한 것이다.


▲  티벳 글자가 새겨진 마니차

마니차 밑에 있는 검은 피부의 돌판에는 1997년 이후 절 중창에 도움을 준 이들의 이름이 빼
곡히 적혀있다. 저들이 있기에 성주암이 다시 일어선 것이다. 그러니 너무 외형 확장과 재물
에 욕심내지 말고 오직 사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여 속세(俗世)를 위해 사는 아름다운 절이
되기를 바라면서 성주암과의 첫 인연을 정리한다.



 

♠  호암산과 서울둘레길5코스 거닐기

▲  성주암에서 호암산으로 인도하는 산길

5층석탑을 지나면 돌산, 호암산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손짓을 한다. 그 길을 오르면 돌산 북쪽
으로 천하 둘레길의 대표 성지(聖地)로 격하게 추앙을 받는 서울둘레길5코스(사당역↔석수역,
13.5km)와 관악산둘레길 2구간(서울대 정류장↔국제산장아파트, 4.7km)과 만난다.
둘레길 대신 하늘과 가까운 곳을 원한다면 호암산과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서남쪽 산길을 이용
하면 되며 관악산둘레길 2구간이 장군봉 북쪽까지 동행을 한다. (둘레길의 위치상 삼성산둘레
길이 맞지만 관악산둘레길을 칭하고 있음)

나는 산봉우리 대신 성주암과 호암산 북쪽 능선 등의 미답처 개척을 위해 왔으므로 호압사로
빠르게 이어지는 서울둘레길5코스를 택해 길을 재촉했다.


▲  솔내음이 오각을 간지럽히는 돌산 북쪽 산길

▲  서울둘레길5코스 약수사 윗쪽 구간

돌산 북쪽에서 호압사까지 서울둘레길5코스 구간은 느긋한 길의 연속이다. 오르락과 내리락이
반복되지만 호압사 직전 구간을 빼면 그 기복은 별로 없으며 관악산 산림쉼터, 약수사(藥水寺
), 삼성산성지 등의 조촐한 명소들이 연이어 포진해있어 가는 길이 심심치 않다.


▲  관악산 산림쉼터 (약수사 윗쪽~삼성산성지 구간)

잣나무와 메타세콰이아, 단풍나무를 빽빽히 심고 그 짙은 그늘에 쉼터를 닦았다. 숲 그늘에는
의자와 평상 등을 넉넉히 깔아 잠시 쉬어가거나 낮잠, 독서, 간식 섭취에 아주 좋으며 숲속도
서함도 비치하여 독서의 여유도 누리게끔 했다.


▲  관악산 산림쉼터 앞을 지나는 서울둘레길5코스

▲  삼성산성지 동쪽을 지나는 서울둘레길5코스 ①

▲  삼성산성지 동쪽을 지나는 서울둘레길5코스 ②
오로지 정면에 보이는 먹이를 향해 질주하는 맹수처럼 삼성산성지는 쿨하게
통과했다. 어차피 적지 않게 인연을 지은 곳이다.

▲  수풀을 앙증맞게 다져놓은 서울둘레길5코스 (삼성산성지~호압사 구간)

▲  호암산 밑에 이르다 (사진에 보이는 산이 호암산 정상)

삼성산성지에서 10여 분 정도 오르면 호압사 분기점에 이른다. 이곳에는 넓게 쉼터가 닦여져
있는데, 남쪽으로 각박하게 이어진 산길을 20분 정도 오르면 호암산 정상에 이르며 호압사는
쉼터 서쪽에 펼쳐져 있다.
호암산에 가면 보통 호압사를 끼고 가는지라 이곳 분기점은 아주 낯이 익다. 여기서 보통 호
압사와 서울둘레길5코스 석수역 방향인 서쪽, 삼성산성지와 서울둘레길5코스 서울대 방향인
동쪽, 정상과 한우물 방향인 남쪽으로만 주로 갔지 북쪽 길은 단 1번도 가지를 않았다. 아무
래도 동/서/남쪽으로 호압사와 한우물, 석구상, 호암산 잣나무산림욕장, 서울둘레길5코스 등
호암산의 알짜배기 명소들과 잘생긴 바위들, 일품 조망들이 펼쳐져 있고, 삼성산과도 이어지
므로 버릇처럼 자꾸 가던 쪽으로만 간 것이다. 반면 북쪽은 딱히 흥미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북쪽을 개척하고자 찾은 것이다.


♠  호암산 북쪽 능선(독산자락길)과 목달산

▲  호압사분기점 북쪽 헬기장

호암산 북쪽 능선은 시흥동과 독산동(禿山洞), 난곡 사이로 펼쳐진 긴 산줄기이다. 북쪽으로
독산자연공원까지 이어져 금천구(衿川區)의 북쪽 지붕이자 관악구(冠岳區)의 서쪽 지붕을 이
루는데, 선우공원 주변은 따로 목달산이라 불리며, 그 산줄기를 따라 '독산자락길'이 호압사
분기점에서 독산고교(독산자연공원)까지 이어진다.
 
처음에는 독산고교까지 욕심을 냈으나 산길이 생각 밖으로 너무 길었다. '아니 이렇게나 긴
산줄기였나?' 크게 놀라며 1시간이나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그곳 남쪽인 쌍용아파트에서 길을
접고 철수했다. 몸도 지쳤고 햇님의 퇴근시간도 임박했기 때문이다.


▲  호암산 북쪽 능선길(독산자락길) ①

▲  호암산 북쪽 능선길(독산자락길) ②

호암산 북쪽 능선길(독산자락길)은 북쪽을 향해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러다보니 길도 완만하
고 숲도 삼삼해 여름 햇살도 눈치를 보며 내려앉는다. 정면만 본다면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을 거니는 기분이나 좌우로 시가지가 진하게 바라보여 그 감흥을 50% 이상 떨어트린다. 이
는 1960년대 이후 서울이 나날이 비대해짐에 따라 개발의 칼질이 호암산과 목골산의 살을 마
구 후벼 팠기 때문이다.
다행히 늦게나마 도시공원과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이 정도라도 남게 된 것이지 그것도
아니었으면 아마도 호암산 북쪽 능선의 대부분은 절단이 났을 것이다.


▲  호암산 북쪽 능선길(독산자락길) ③

▲  호암산 북쪽 능선길(독산자락길) ④

▲  독산자락길(호암산 북쪽 능선길) 시흥4동과 난향동 경계 구간
이쪽에 이르면 시흥4동과 난향동(난곡) 주택가가 능선 좌우로 너무 깊게 들어와
산세 폭이 200m 내외로 확 좁혀진다. 허나 이곳을 지나면 목골산이
나오면서 다시 산세가 넓어진다.

▲  목골산 남쪽 능선길(독산자락길) ①

목골산(163m)은 호암산의 북쪽 끝이자 삼성산의 서북쪽 끝으머리를 잡고 있는 뫼이다. 독산동
과 시흥4동, 난곡(난향동, 난곡동, 미성동)에 둘러싸여 있으며 북쪽 자락에는 선우공원이 넓
게 자리해 있다.
서쪽과 남쪽은 경사가 조금 있으나 북쪽과 동쪽은 완만하며 선우공원을 중심으로 미성동둘레
길이 별도로 닦여져 있다. 이 둘레길은 독산고교 뒤쪽에서 시작해 정심초교 뒤쪽 → 관악구
민방위교육장 → 목골산 북쪽 자락 → 선우공원 동부 → 영산홍동산을 거쳐 독산고교로 이어
지는 3.4km의 순환형 길이다.


▲  목골산 남쪽 능선길(독산자락길) ②

▲  목골산에서 만난 이정표 의자
이정표 역할을 하는 의자는 처음 본다. (동네 사람들이 만든 것임)

▲  잠시 하늘로 솟구치는 목골산 능선길

▲  목골산 미성동둘레길

▲  목골산 영산홍동산

선우공원 북쪽에 영산홍이 잔뜩 깃든 영산홍동산이 있다. 영산홍은 4~5월에 홍자색(紅紫色)
꽃을 피우는데 내가 갔던 때는 6월 말이라 영산홍은 커녕 그 떨어진 잎도 없었다. 이는 영산
홍의 잘못이 아닌 철을 맞추지 못하고 찾아온 나의 불찰이다. 다음에 영산홍 철에 다시 한번
찾아와 이곳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맛보고 싶다.


▲  목골산을 내려가며

영산홍동산을 내려가니 쌍용아파트가 나온다. 여기서 북쪽 산이 독산자연공원이나 시간도 이
미 18시가 넘었고 몸도 지친 터라 쿨하게 길을 접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성주암부터 해서 적
지않은 미답지를 지웠으니 그것으로도 충분히 보람을 느낀다.
이렇게 하여 초여름 삼성산~호암산~목골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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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23년 2월 2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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