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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19 태안 신진도 (신진도항, 마도)
  2. 2009.08.14 안면도 나들이 (꽃지해변, 안면도휴양림, 안면암 부교체험)
  3. 2009.07.25 금산 수심대, 조헌 사당
  4. 2009.07.08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가 자라는 곳, 천안 광덕사 14
  5. 2009.04.13 안면도 안면암 / 부교체험
  6. 2008.09.30 천안 광덕사
  7. 2008.09.17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2)
  8. 2008.09.17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1)
  9. 2005.07.09 # 금산 보석사 ~ 진악산 자연휴양림 (아랫글 후속편)

태안 신진도 (신진도항, 마도)

















안면도 나들이 (꽃지해변, 안면도휴양림, 안면암 부교체험)


~~~~~ 안면도 나들이 ~~~~~

▲ 안면도 자연휴양림

▲ 안면암의 밥줄, 부교(浮橋)와 2개의 섬(조구널섬, 여우섬)


봄이 한참 무르익기 시작하던 3월 말, 단체여행으로 안면도를 찾았다. 아침 7시에 서울
을 출발하여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행담도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행담도(行淡島
)는 아산만에 떠 있는 0.16㎢의 작은 섬으로 서해안고속도로의 백미로 일컬어진다.고속
도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약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나 2001년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섬 사람들은 강제로 정든 고향을 내줘야 했고, 지금은 휴게소 겸 행락지로 새롭게 자리
매김을 하였다.

언제나 사람과 수레로 몸살을 앓는 행담도를 뒤로하며 서해대교를 가뿐히 넘어 충남 땅
에 들어선다. 서산과 태안을 지나 한반도와 안면도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안면대교를 건
너 우리나라에서 6번 째로 큰 섬 안면도로 발을 들인다.안면읍을 지나 오른쪽으로 방향
을 틀어 오션캐슬(Ocean Castle)을 지나면 드넓은 백사장(白沙場)의 꽃지해수욕장이 시
원스레 펼쳐지고, 곧 사륜구동오토바이(ATV, all-terrain vehicle, 이하 사륜구동)타는
곳에 이른다.꽃지를 찾은 것은 바로 사륜구동을 타기 위함으로 그곳에는 사륜구동 30여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사륜구동과의 첫 만난, 우선 능숙한 조교에게 간단한 설명과 조작방법, 주
의사항을 듣고 그 자리에서 10분 가량 몸풀기 운전에 들어갔다. 한꺼번에 30여 대가 부
릉부릉 연주곡을 내뿜으며 손에 익숙해질 때까지 열심히 연습장을 돈다.약간 긴장의 끈
을 놓지 않았던 나도 1~2바퀴 도니 도는 만큼 여유와 익숙함, 속도가 정비례한다. 어느
정도 몸을 풀자 비로소 실전에 들어갔다. 여자들이 먼저 가고 남자들이 그 뒤를 따르는
형태로 진행되었는데, 여자들이 운전에 서툴러 말썽이 생기자 조교는 그들을 샛길로 뺐
다. 그들이 빠지자 남자들은 마음껏 속력을 내며 사륜구동의 참맛을 누린다.

코스는 대체로 비포장길로 중간에 잠시나마 2차선 포장길이 펼쳐지기도 한다. 호숫가를
따라 가는 구간도 있고 야트막한 고개도 있으며,바다를 벗삼아 달리는 꽃지해변 구간도
있다.포장길과 해변길은 다들 빛의 속도를 꿈꾸며 열심히 속도를 내면서 마치 추격전을
벌이는 듯 했다. 코스의 반환점은 해변의 남쪽으로 거기서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코스를 다 돌자 이번에는 연습장 옆에 마련된 특수 장애물 코스로 이동한다.
(남자들만 갔음)흙으로 다진 온갖 장애물로 가득한 그 코스, 야트막한 장애물부터 경사
가 가파르고 높은 장애물, 비스듬하여 자칫 넘어지기 쉬운 장애물까지, 그 전 코스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으며, 사고의 위험이 크다. 하지만 스릴감과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며 장애물을 넘을 때마다 손에 땀을 쥐며 긴장감이 파도치듯 치솟는다.다들 무탈하
게 그 구간을 통과하면서 2시간에 걸친 사륜구동 체험은 아쉽게도 마무리 되었다. 저렇
게 재밌는 것을 이제서야 타보다니 다음에도 꼭 타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꽃지에서의 일정을 정리하고 점심을 먹기 위해 방포항으로 이동했다.10분 정도 달려 도
착한 방포항은 관광객들이 끌고 온 수레들로 파도를 이루어 점심이 예약된 식당까지 들
어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간신히 비좁은 길을 비집고 들어가 해물탕과 온갖 해산음
식으로 즐거운 점심시간을 갖는다. 물론 곡차(穀茶)가 빠질 순 없지. 다들 알콜이 어느
정도 축적된 상태에서 점심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다. 방포항은 젓개항으로도 불리는데,
조개와 해산물로 유명하다.특히 부드러운 곡선을 지닌 꽃다리란 다리가 방포 북쪽과 남
쪽을 이어주고 있는데,방포항의 명물로 야경이 매우 아름답다고 하며 마을 한쪽에는 천
연기념물로 지정된 모감주나무군락이 따사로운 봄을 잉태하며 막바지 인내를 견디고 있
었다.

방포항에서 생각치도 못한 모감주나무군락과 눈인사를 나누고 안면도자연휴양림으로 발
길을 옮긴다.


▲ 아직도 겨울의 정령에서 깨어나지 못한 채, 늘어져 있는
안면도 모감주나무 군락(群落) -
천연기념물 138호


방포마을의 모감주나무 군락은 마을과 방포해수욕장에 걸쳐 있다. 숲의 길이는 120m, 너비는 약
15m로 바닥은 자갈로 덮여 있으며, 높이가 2m에 이르는 나무가 400∼500 그루 정도 자라고 있어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防風林)의 역할도 도맡아 한다. 모감주나무 외에도 소사나무, 졸참
나무, 신나무 등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살고 있다.

이곳 모감주나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2가지 설이 있다. 이 나무는 중국이 분포의 중심지로 그곳
에서 자라던 나무의 씨앗이 서해바다의 해류를 타고 넘어와 뿌리를 내린 것이라고 하며, 서해안
과 동해의 영일만(迎日灣) 일대에서도 모감주나무가 발견되고 있어 우리나라에서 자란 토종으로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나무로 자연적으로 싹을 틔워 자라고 있으며, 나름대로 가치가 높아 천
연기념물로 삼았다. 또한 군락이 마을 쪽으로 계속 확장되면서 나무의 높이도 점점 자라고 있음
이 밝혀졌다.


♠ 수목원과 휴양림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 명소
안면송(安眠松)의 솔내음이 진하게 진동하는 ~ 안면도 자연휴양림

안면도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소나무 천연림이 우거진 곳이다. 이곳에서 자라는 소나무인 안
면송(安眠松)은 우수한 품종으로 예로부터 명성이 자자하여 고려시대부터 조선 때까지 궁궐 목
재나 배를 만드는데 사용되었다. 특히 경복궁(景福宮)을 지을 때 이곳의 소나무가 큰 역할을 했
다고 한다. 지나친 벌목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고려와 조선 정부는 특별히 옆구리에 끼
며 관리를 했으며, 해방 이후는 1965년부터 충청남도에서 관리하고 있다.

안면읍 승언리 남쪽에 자리한 안면도자연휴양림은 1992년에 문을 열었다. 하늘을 향해 쭉쭉 뻗
은 안면송의 솔내음이 가득 진동하는 이곳은 안면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77번 국도를 사이에 두
고 서쪽은 수목원, 동쪽은 휴양림으로 나눠져 있다. 수목원에는 한국정원(아산원)과 방향수원,
외국수원, 소나무원, 식용수원, 상록수원, 먹넌출/모감주나무 자생수원, 목련원, 철쭉원, 생태
습지원, 유리온실, 전망대 등이 있으며, 휴양림에는 산림전시관을 비롯하여 하루 머물다 갈 수
있는 숲속의 집과 황토초가집 등의 숙박시설, 새조개봉과 키조개봉 등 조개류의 이름을 딴 6개
의 봉우리가 휴양림을 구성한다.

※ 안면도 자연휴양림 찾아가기 (2009년 8월 기준)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태안행 직행버스가 수시로 떠나며,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과 동서
울터미널에서도 태안행 직행버스가 드문드문 다닌다.
* 인천, 부천, 성남, 천안, 대전(동부), 군산에서 태안행 직행버스가 운행한다.
*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안면도행 직행버스가 1일 10여 회 운행하며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
에서는 1일 4회 운행한다. (피서철과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때는 증회 운행)
* 태안과 안면읍에서 영목 방면 군내버스(1일 20여 회 운행)를 타고 안면도자연휴양림 하차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서해안고속도로 → 홍성나들목 → 천수만방조제 → 원청리 → 안면대교 → 안면읍 → 안면도
자연휴양림
② 서해안고속도로 → 서산나들목 → 서산 → 태안 → 원청리 → 안면대교 → 안면읍 → 안면도
자연휴양림

★ 안면도 자연휴양림 관람정보 (2009년 8월 기준)
* 입장료(단체는 30인 이상) - 성인 1,000원(단체 800원) / 청소년,군인 800원 (단체 600원) /
어린이 400원(단체 200원)
* 관람시간 - 하절기(3~10월) 9시 ~ 18시 / 동절기(11~2월) 9시 ~ 17시
* 숲속의 집 이용 - 숙박일 오후 15시 ~ 다음날 12시까지 (숙박일 22시까지 반드시 입실 요망)
* 주차비 - 경차 1,500원 / 소,중형차 3,000원 / 25인승이상 대형 5,000원
(숲속의집 사용자는 입장료와 주차비 공짜)
* 안면도 자연휴양림 숲속의 집 이용정보와 예약은
☞ 안면도자연휴양림 홈페이지 참조
* 소재지 -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산 32-567 (☎ 041-670-2452, 674-5019)




▲ 안면도 자연휴양림 지도
(안면도 자연휴양림 홈페이지 참조)


휴양림은 1,500여 수종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으며 송림이 무성하여 하늘이 거의 보이질 않을 정
도이다. 휴양림을 이루는 6개의 봉우리를 모두 둘러보려면 넉넉잡아 1시간 정도 걸리는데, 우리
는 시간이 넉넉치 못하여 2개의 봉우리만 둘러보는 2번 코스로 휴양림을 산책해 아쉬움이 너무
강하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단체로 간 것이니~~ 다음을 기약하는 수 밖에~~

※ 휴양림 산책코스 (1,2번은 간단코스, 5번은 풀코스)
① 주차장 → 산림전시관 → 배수지고개 → 바지락봉 → 모시조개봉 → 주차장 (15분 소요)
② 주차장 → 산림전시관 → 배수지고개 → 숲속의 집 → 바지락봉 → 모시조개봉 → 주차장
(20분 소요)
③ 주차장 → 산림전시관 → 배수지고개 → 숲속의 집 → 대피소 → 잔디광장 → 삼해봉 → 새
조개봉 → 바지락봉 → 모시조개봉 → 주차장 (30분 소요)
④ 주차장 → 산림전시관 → 배수지고개 → 숲속의 집 → 대피소 → 진주조개봉 → 잔디광장 →
삼해봉 → 새조개봉 → 바지락봉 → 모시조개봉 → 주차장 (45분 소요)
⑤ 주차장 → 산림전시관 → 배수지고개 → 숲속의 집 → 대피소 → 키조개봉 → 진주조개봉 →
잔디광장 → 삼해봉 → 새조개봉 → 바지락봉 → 모시조개봉 → 주차장 (60분 소요)


▲ 안면송 그늘 아래에 펼쳐진 쉼터

▲ 산림전시관

휴양림에 발을 들이면 제일 먼저 3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휴양림의 남쪽 외곽
인 모시조개봉이 왼쪽으로는 휴양림의 안쪽 부분이 나온다. 왼쪽으로 길을 잡고 조금 들어가면
'ㄷ'자 모양의 산림전시관이 그 모습을 보인다.

산림전시관은 목재의 가공 및 이용, 전통목가구와 목공예품, 식물과 나무의 표본 등이 아낌없이
전시된 공간으로 소나무 재선충을 옮기고 다니는 솔수염하늘소를 볼 수 있다. 전시관 뜰에는 공
작 등 조류(鳥類)가 서식하는 사육사가 있다. 휴양림에 들어섰으니 산림전시관은 밑바탕으로 둘
러봐야 되겠지만 일행 모두 그곳을 지나치는 지라 나도 별 수 없이 통과하고 말았다. 다음에 기
회가 된다면 전시관을 말끔히 구경하고 싶다.


▲ 아름다운 꼬랑지를 펼쳐보이며 인간들 구경에 여념이 없는 공작새
사람들에게는 사육사 안의 공작새가 구경의 대상이지만 공작새에게는
사육사 밖을 나돌아 다니는 인간들이 구경의 대상이다.

▲ 자신의 꼬랑지를 다듬느라 여념이 없는 공작새


▲ 배수지고개

산림전시관을 지나 자연의 넉넉한 마음마냥 야트막한 배수지고개를 넘으니 휴양림 숙박시설(숲
속의 집)이 나타난다. 숲속의 집은 통나무로 만든 통나무집이 주류를 이루며 황토초가집, 황토
초가집은 1동, 한옥은 1동(3실, 가장 위쪽에 있음)이다. 이들은 안면송과 어울려 휴양림의 멋스
러움과 여유로움을 진하게 드러내 수식한다.


▲ 숲속의 집의 하나인 통나무집

숲속의 집을 지나 산길을 약간 오르면 휴양림 능선이 나타난다. 바다가 보일 듯도 하지만 좀 더
높은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새조개봉(92.4m)가 나오
며, 오른쪽은 바지락봉인데, 우리는 오른쪽으로 길을 틀었다.

▲ 소나무 숲길을 거닐며 자연과의 동화를 꿈꾸다. (바지락봉~모시조개봉 능선길)


▲ 바지락봉 정상에 세워진 봉우리 표석
휴양림에는 6개의 봉우리가 있다. 봉우리라고 해서 산의 일반적인 봉우리는 아니다.
능선에서 그나마 높은 곳을 봉우리로 삼아 우리에게 무척 친근한 조개류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 모시조개봉 봉우리 표석


▲ 시인 채광석(蔡光錫, 1948~1987) 시비
채광석은 안면도 출신으로 1987년 의문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시비에 적힌 '기다림'이란 시는 그가 26살에 박정희 대통령의 긴급조치 5호로
공주교도소에 갇혀있을 때 지은 것으로 자유로의 열망을 애타게 표현했다.

기름진 고독의 맘에 불씨를 묻으리라
이름모를 산새들 떼지어 날고 계곡의 물소리 감미롭게 적셔오는
여기 이 외진 산골에서
맺힌 사연들을 새기고 구겨진 뜻들을 다리면서 기다림을 익히리라.
카랑한 목을 뽑아 진리를 외우고
쌓이는 낙엽을 거느리며 한걸음 두걸음 조용히 다지다가
자유의 여신이 찾아오는 그날 고이 목을 바치리라.
대를 물려 가꿔도 빈터가 남는
기름진 고독의 밭에 불씨를 묻으리라.


2번코스(주차장 → 산림전시관 → 배수지고개 → 숲속의 집 → 바지락봉 → 모시조개봉 → 주차
장)
로 한 바퀴 도니 25분 정도 걸렸다. 여유가 된다면 휴양림의 구석구석과 수목원도 둘러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았으나 단체로 온 여행이라 나에게 그런 권한은 없었다. 많은 것을 눈에 담지
못하고 온 아쉬움은 실로 태산보다 더했다. 아쉽지만 다음의 인연을 꿈꾸며 안면송의 보금자리
인 휴양림을 떠났다.

휴양림에서 승언리를 지나 태안 방면으로 달리다가 안면암 이정표의 안내로 오른쪽 조그만 시골
길로 방향을 튼다. 여기서 5분 저도를 들어가니 천수만(淺水灣)을 옆구리에 낀 안면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 천수만에 둥지를 튼 조그만 절, 부교(浮橋)를 내세워
안면도의 유명 관광지로 크게 부각된 안면암(安眠庵)

천수만이 바라보이는 언덕에 뿌리를 내린 안면암은 고색(古色)이 창연하거나 오래된 문화유산이
깃들여진 절이 아니다. 고색이 짙은 절이나 산사의 아늑함과 단촐함, 절에 깃들여진 오래된 문
화유산을 생각하고 발을 들였다면 실망만을 가득 안게 될 것이다. 솔직히 절 자체는 별볼일 없
으며, 눈이 호강을 즐길 볼거리는 없다. 다만 절보다는 바다를 옆에 낀 이곳의 경치가 안면도
제일로 손꼽히며, 조구널섬까지 이어진 부교(浮橋)는 부교체험이라 하여 안면암을 안면도 제일
의 명소로 일으켜 세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한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출이 아름다워 해돋
이 명소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그야말로 절의 위치가 명당 중의 명당인 셈이다.

안면암은 김제에 있는 금산사(金山寺)의 말사(末寺)로 법주사(法住寺) 주지를 지낸 승려 지명이
그를 따르는 신도와 함께 1998년에 지은 현대식 절이다. 절의 면적은 2,727㎡로 천수만이 바라
보이는 곳에 3층에 이르는 거대한 법당인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지었다. 건물의 모습은 기존의
우리나라 불전과 크게 다르고 크기만 너무 커서 그다지 정감이 가질 않는다. 법당 옆에는 역시
3층짜리 삼성각(三聖閣)을 비롯하여 대웅전, 선원 등을 갖추었다. 절의 규모는 작으나 3층에 이
르는 법당과 삼성각은 절의 왜소함을 크게 커버해주어 부교에서 보면 바닷가 언덕에 지어진 화
려하고 웅장한 별장처럼 다가온다.

절 앞에는 여우섬과 조구널섬 2개의 조그만 섬이 두둥실 떠 있는데, 절에서 조구널섬까지 100m
가 조금 넘는 부교를 설치하여 건널 수 있다. 다만 다리가 섬까지 직접 이어진 것이 아니라 그
중간까지만 놓여 있다. 썰물 때는 갯벌이 은은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어 부교 끝에서 갯벌을 통
해 섬으로 들어갈 수 있으며 갯벌체험도 즐길 수 있다. 다만 밀물 때는 갯벌이 바다 밑으로 숨
바꼭질을 하여 갈 수 없다. 우리가 갔을 때는 운이 없는지 밀물 때가 걸려 섬에 들어가지도 못
하고 견우와 직녀가 강 사이를 두고 서로 연모하며 바라보듯, 그렇게 두 섬을 지켜봐야 했다.

안면도 관련 여행상품에서 약방의 감초로 등장하는 안면암 부교체험의 현장으로 부교의 호기심
을 가득 품고 찾아온 관광객들로 절은 늘 부산하다. 오래된 절의 호젓한 분위기와 고색함은 없
지만 바다와 일출을 가슴에 품은 절로 가볍게 다녀올만한 명소이다.

※ 안면암 찾아가기 (2009년 8월 기준)
* 서울 남부터미널,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안면도행 직행버스 이용
* 안면읍에서 안면암까지 들어가는 버스편은 없다. 택시를 이용하거나 태안 방면 군내버스를 타
고 안면암입구(정당리)에서 내려서 도보 30분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서해안고속도로 → 홍성나들목 → 천수만방조제 → 원청리 → 안면대교 → 정당리 → 안면암
② 서해안고속도로 → 서산나들목 → 서산 → 태안 → 원청리 → 안면대교 → 정당리 → 안면암

★ 안면도 관람정보 (2009년 8월 기준)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음
* 썰물 때는 부교를 통해 조구널섬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 소재지 -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 178-1 (☎ 041-673-2333)
* 안면암 홈페이지는 바로 아래 금동관음보살입상 사진을 클릭한다.

◀ 자비로운 인상의 금동관음보살입상

주차장에서 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금동을
입힌 고운 자태의 관음보살이 인자한 누님의
모습으로 중생을 반긴다. 왼손으로 감로수의
정병(政柄)을 쥐고 있으며, 오른손 아래 옷자
락이 약간 튀어 나온 것을 보니 바닷바람에 휘
날리는 법의(法衣)를 표현한 듯 싶다. 그가 서
있는 연꽃대좌 아래로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새겨져 그를 지킨다.


▲ 동쪽 바다(천수만)를 바라보며 자리한 안면암 무량수전(無量壽殿)
절집이라기보다는 한옥으로 된 관광상가 같다. 무량수전 앞에는 금강역사(金剛力士)와
팔부중상 등이 새겨진 돌덩어리가 절을 찾은 나그네를 검문한다.

◀ 삼성각과 용왕각(龍王閣)을 갖춘 3층 건물
1층에는 삼성각이 2층에는 용왕각이 한자리씩
차지하며 불전을 이룬다.


▲ 천수만에 뿌리를 내린 2개의 섬 여우섬과 조구널섬
하늘나라 선녀누님들이 공기놀이를 하다가 실수로 떨어트린 공기가 섬으로 굳어진 것 같다.


▲ 안면암 부교
썰물 때는 바로 부교로 갈 수 있지만, 밀물 때는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대나무 다리를
건너야 된다. 다리가 은근히 부실하므로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수심은 별로 깊지 않음)


▲ 잔잔한 바다의 속삭임 ~ 천수만(淺水灣)
천수만은 안면도와 서산, 홍성 사이의 물굽이를 이룬 바다를 일컫는다.
조구널섬과 죽도, 황도, 토끼섬, 모래섬 등의 작은 섬이 떠 있으며
서산 부석면 쪽은 서해안방조제를 쌓아 땅으로 만들었다.


▲▼ 바다 위에 뜬 하얀 조각배 ~

월척을 그리며 힘차게 뱃고동을 울린다.


▲ 부교의 끝에서 애타게 바라본 여우섬(왼쪽)과 조구널섬(오른쪽)
썰물 때 왔더라면 갯벌을 타고 섬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밀물로 길이 막히면서
부교의 종점에서 아쉬운 마음을 애써 삼키며 섬을 지켜본다.


▲ 보다 가까이서 바라본 조구널섬
인적이 없는 조그만 섬, 속세를 등지고 저곳에 들어가 몇일 당분간 묻혀 살고 싶다.
속세에서 나란 존재를 잠시 지우고 싶을 때 피난처로 삼고 싶은 곳이다.


▲ 부교에 줄이 묶인 채, 휴식을 즐기는 배 1척
배에서 즐기는 한줄기 낮잠은 과연 어떠할까? ~ 치악산 구룡사(龜龍寺) 창건설화에
나오는 의상대사(義湘大師)처럼 배에서 낮잠을 청해보고 싶다.

◀ 안면암 부교의 전경
다리는 그리 위험하지 않으므로 안심하고 건너
도 된다. 부교를 띄운 바다의 수면도 그리 깊
지가 않아 혹 빠지더라도 사고의 위험은 적다.
허나 괜히 장난 같은 것은 하지 않도록 한다.


말로만 듣던 안면암 부교를 진하게 체험하고 안면암을 나온다.솔직히 절 자체는 볼거리
가 없다. 다만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와 부교가 이곳의 큰 매력이라 하겠다.안면암의 존
재를 천하에 알린 안면암의 든든한 밥줄로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안면암이 바위 이름인
줄 알았다.

부교를 타고 조구널섬까지 발을 들였으면 좋으련만, 바다의 심술로 뜻을 이루니 못하니
아쉬움이 천수만에 모인 바닷물만큼이나 커다랄 따름이다.안면암을 나오니 시간은 어느
덧 17시,안면대교를 건너 천수만방조제를 지나 홍성에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원점인
서울로 길을 재촉했다. 이리하여 안면도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정말 번개처럼 날아가 즐겁게 보냈던 그날 하루, 그곳이 그리워지고 같이 간 이들이 보
고 싶은 마음에 비록 보잘 것은 없지만 이렇게 글을 남긴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0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집니다. <단 블로그는 한달까지이며, 원본
은 2달까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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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을 읽으셨으면 그냥 가지들 마시고 댓글 하나씩 꼭 달아주세요.
*답사, 촬영 일시 - 2009년 3월 28일
*작성 시작일 - 2009년 4월 16일
*작성 완료일 - 2009년 5월 4일
*숙성기간 ~ 2009년 5월 4일 ~ 2009년 8월 13일
*공개일 - 2009년 8월 13일부터


Copyright (C) 2009 Pak Yung(박융), All rights reserved

금산 수심대, 조헌 사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가 자라는 곳, 천안 광덕사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가 숨쉬고 있는 곳 ~
천안 광덕사(廣德寺)'



계절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5월의 마지막 날, 아산에 사는 어여쁜 후배 여인네와 천안의 명
찰(名刹) 광덕사를 찾았다.이곳은 광덕산 북동쪽 자락에 안긴 오랜 절로 우리나라 호도의 주
산지(主産地)인 광덕면 서남쪽에 자리해 있다.천안의 명물인 호도의 고향답게 광덕면은 그야
말로 호도나무가 천지를 가득 메운다.

천안 제일의 고찰로 손꼽히는 광덕사는 조계종 소속으로 공주에 있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
(末寺)이다. 신라 진덕여왕 5년(眞德女王,652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그 시절 천안 지역은 엄연한 백제의 영토였다.

600년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 무왕(武王)이 백제 30대 제왕으로 등극하면서 백제와 신라는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무왕은 50년 가까이 신라에게 망신 당한 자존심과 영토를 회복하
여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자연히 처가댁
(그의 부인이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
이다)
인 신라와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1년이 멀다하고 두 나라는 치열하게 맞짱을 떴다.오
죽하면 바다건너 당나라까지 혀를 내두르겠는가? 상황이 이러한데 신라 불교의 1인자 자장율
사가 어찌 적국의 땅에 절을 세우겠는가? 아무리 고승(高僧)이라 할지라도 적국의 승려가 자
기 땅에 절을 세우는 것에 대해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이며 1680년 안명로
()가 쓴 '사
적기(事蹟記)'에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다.

신라 흥덕왕 때는
진산대사(珍山大師)가 석가의 치아 1매와 사리 10과, 승가리(僧伽梨) 1령(
嶺), 불좌(佛座) 1병을 봉안하면서 크게 중창했다고 하는데 안명로의 언급대로 실제 창건 시
기가 이때일 듯 싶다.

그후 600년에 세월이 흘러, 1464년 온양온천으로 놀러간 세조(世祖)는 광덕사에 부처의 치아
와 사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환궁하는 길에 이곳을 잠시 들렸다.세조는 광덕사 승려의 부역
(負役)을 면해주고 절에 위전(位田)을 하사하는 교지(敎旨)를 내렸는데, 그것이 바로
광덕사
소장면역사패교지
(廣德寺所藏免役賜牌敎旨, 보물 1246호)이다.

조선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8방
(), 89개 암자, 9개의 금당(),80칸의 만장각
(), 3층의 천불전(殿)을 세워,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가장 큰 절로 성장하게 된다.
허나 임진왜란으로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 간신히 대웅전과 천불전 등을 다시 지었으나, 19세
기 이후 문닫기 직전에 이른 것을 1981년 김동진(金同珍) 주지승이 크게 불사를 일으켜 비록
옛 명성만은 못하지만 천안 제일의 사찰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과 보화루, 적선당, 명부전, 산신각 등 7~8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보물 1246호),
노사나불괘불탱(蘆舍那佛掛佛幀, 보물
1261호)
등의 국가지정 보물 2점과 천연기념물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400년 먹은 호도
나무가 있고, 대웅전과 부도, 석사자 등 지방문화재 6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 보물 390
호인 고려사경(高麗寫經) 6권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울 조계사(曹溪寺) 불교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산사(山寺)의 그윽한 향기와 정취, 정적(靜寂)이 가득 깃들여져 있으며, 호도의 향기까지 듬
뿍 가미된 광덕사 경내를 하나씩 둘러보도록 하자.

※ 천안 광덕사 찾아가기 (2009년 7월 기준 / 서울 기준)
* 서울(청량리, 서울역, 용산)에서 1호선 천안,신창행 전철이 거의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용산역에서 급행전철이 1~2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서울역(지상역)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한
해 급행전철이 운행된다
* 서울역(경부선 열차)과 용산(호남, 전라, 장항선 열차),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새마을호
열차가 1시간에 4~5회꼴로 떠난다.
* 부산, 동대구, 대전, 광주, 목포, 마산, 포항, 전주, 군산에서 천안행 열차가 있다.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동서울터미널, 남부터미널에서 천안행 고속/직행버스가 자주 떠난다.
* 대전(유성,동대전), 광주, 대구(동대구), 성남, 수원, 청주, 전주, 마산, 구미에서 천안행
고속/직행버스가 운행된다.
* 천안터미널과 천안역에서 천안시내버스 600, 601번이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50분 정
도 걸린다. 1일 29회 운행(600번 25회, 601번 4회)
* 승용차로 가는 경우
경부고속도로 → 천안나들목 → 천안시내(천안대로 경유) → 남부대로 → 광덕방면 629번
지방도 → 풍세 → 광덕사

* 광덕사 종점에서 계곡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광덕사가 나온다.

★ 광덕사 관람 정보
* 입장료와 관람시간 제한은 없음
* 광덕사 버스 종점에 조그만 주차장이 있다.
* 광덕사에서 광덕산의 가마봉을 거쳐 강당골(외암리 부근)로 내려 갈 수 있다. (2시간 소요)
* 광덕사 천불전에서 10분 정도 산을 오르면 기생 부용(芙蓉)의 묘가 있다.
*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 3점은 관람이 불가능하며, 노사나불괘불탱은 석가탄신일이나 기타
불교 관련 행사일에 운이 좋으면 구경이 가능하다.

*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 041-563-7050 / 567-0050)


♠ 오래된 호도나무 그늘에 아늑하게 터를 닦은
광덕사로 들어서며 ~


▲ 호도전래사적비(胡桃傳來史蹟碑)

▲ 시원스런 모습의 광덕사 일주문(一柱門)
문 뒤쪽에는 '호서제일선원(湖西第一禪院)' 현판이 걸려있다.

▲ 광덕사를 알리는 표석~ 왼쪽 길로 가도 광덕사는 나온다.

▲ 늦봄 한낮의 볕이 극락전 용마루에 머물러 있는
광덕사의 부속암자 안양암(安養庵)


광덕사 종점에서 광덕사로 길은 광덕산이 베푼 계곡을 옆에 끼고 있다. 졸졸졸♪ 노래를 부
르며 오로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에 속세의 근심걱정이 잠시나마 잊혀지는 듯
하다.나의 마음을 점유하고 있는 온갖 번뇌를 계곡에 띄워 흘러보내고 싶지만 찰가머리처럼
달라붙은 번뇌는 좀처럼 나를 놓아주려 하질 않는다.

길을 가다보면 '이뭣고'라 쓰인 표석이 나그네의 눈길을 모은다.그 뒤로 연꽃의 보금자리인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는데, 즐거운 향연을 펼칠 여름을 기다리며 연꽃은 오늘도 인내의 세
월을 견뎌낸다. 연꽃은 보통 6월에 아리따운 꽃망울을 선보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뭣고 연못을 지나면 절 입구에 으례 심어놓는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우측에는 '호도전
래사적비'가 세워져 이곳이 우리나라 호도의 고향임을 말해준다.높다랗게 걸린 일주문 현판
에는 '
太華山光德寺(태화산광덕사)'
라 쓰여있는데 태화산은 광덕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일주문은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문이라고는 하나 여닫는 문이 아닌 뻥
뚫린 형태이다.
절을 찾은 중생들, 산을 찾은 등산객, 부자와가난뱅이, 그 어느 누구도 가
리지않고 반가히 맞이해 주는 부처의 마음이 담긴 문이라 하겠다.문 우측에는 광덕사의 연
혁과 가람도 등이 있는 안내문이 있으니 가볍게 읽어보고 산문으로 들어서면 좋을 것이다.


문을 들어서면 근래에 세운 때깔이 좋은 비석들이 멀뚱히 서 있고 그 뒤로 무려 400살 먹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비석과 그 주변에 아낌없이 그늘을 드리워 준다. 높이는 20m에 이르며

천안시 지정 보호수
이다.

느티나무를 지나면 광덕사를 알리는 거대한 표석(標石)이 나온다.표석에는 좌측길로 가라고
화살표가 되어 있으나 실상은 우측길로 가도 광덕사는 나온다. 우측길로 가면 법등(法燈)의
역사가 짧은 안양암(安養庵)이 나온다. 광덕사의 부속 암자로 안양은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상징한다. 서방정토의 주인은 아미타불(阿彌陀佛)로 그가 봉안된 극락전(極樂殿)이 이 절의
법당이다. 티끌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깃들여져 있으며 하얀 비
단이 깔린 듯한 뜨락을 중심으로 전방좌우 건물들이 자리하여 빈틈이 없을 정도로 안정감이
배어나온다.


♠ 광덕사 내부 (호도나무, 대웅전)

▲ 광덕사의 명물, 호도나무 - 천연기념물 398호


안양암을 지나면 광덕사가 그 모습을 천천히 드러내 보이기 시작한다. 절로 들어서는 보화루 앞
에는 푸른 옷을 걸친 거대한 나무가 의연한 모습으로 자리해 있으니 바로 광덕사의 상징이자 우
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인 광덕사 호도나무이다.
호도나무는 중국이 원산지로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나라에선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
로 분포하며, 4~5월에 꽃을 피우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나무의
높이는 18.2m에 이르
며, 60cm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가슴높이가 각각 2.62m, 2.5m이다.

나무의 유래에 따르면 고려가 잠시 몽고(원나라)의 그늘 아래 있던 1290년(고려 충렬왕 16년) 9
월, 영밀공 유청신(英密公 柳淸臣)이 몽고에 갔다가 충렬왕(忠烈王)을 따라 귀국할 때 호도나무
의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어린나무는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고향집 뜨락에
심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정확하진 않다. 다만 나무의 나이가 400살 정도 되었다고 하니 그가
심은 나무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 천안시 광덕면은 우리나라 호도의 고향으로 이 나무가 우리나
라 최초의 호도나무라고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始栽地)로 여기고 있으며, 나무 그늘에는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柳淸臣 先生 胡桃 試植地)'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푸른내음이 가득 서린 호도나무의 위세 앞에 강렬한 햇빛도 고개를 숙였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
과 바람에 머릿속이 싹 정화된 듯 시원함이 솟아오른다. 우리나라에 맛있는 호도과자를 전해준
유청신(나중에 역모에 가담하여 멀리 귀양갔다고 한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절 경내로 올라선
다.


▲ 광덕사 적선당과 우측 해태상

▲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 보인 귀여운 자태의 좌측 해태상

▲ 부처의 중생 구제를 향한 은은한 메세지가 담긴 범종각(梵鍾閣)


2층 누각의 보화루(寶華樓)를 지나면 광덕사 경내가 마치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듯 펼쳐진다. 보
화루의 1층은 절과 속세를 이어주는 통로로 2층은 교육, 법회 공간 등으로 쓰이고 있는데, 1층
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돌해태 2마리가 뻐드렁니를 자랑스레 드러내며 절을 찾은 중생들을 검문
한다. 그들은 화마(火魔)와 온갖 악의 기운으로부터 절을 지키기 위해 배치한 것으로 무서움보
다는 어루만지고 싶은 귀여운 자태를 지녔다. 절을 파괴하러 온 화마도 그들의 귀여움에 반해
그 본분을 잊은 채, 그냥 돌아갈 지도 모르겠다.

보화루 정면으로 놓인 길 끝에는 법당인 대웅전이 보화루와 3층석탑을 굽어보고 있고, 길 좌우
로 선방(禪房)으로 쓰이는 적선당(寂禪堂)과 육화당(六和堂)이 서로 마주보며 자리해 있다. 대
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쪽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조그만 돌사자 2개가 자리해 있다.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들도 해태처럼 절을 수호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데, 머리털은 구름무늬를 띄
고 있고, 입은 약간 벌려 이를 드러냈으나 사실성은 다소 떨어진다.

이 돌사자상은 팔자가 박복한지 여러 차례 도난을 당했다고 한다. 간신히 찾아내어 제자리에 갖
다놓기가 무섭게 또 사라지고, 그것이 여러 번 반복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문화유산 도난과 파
괴가 다반사처럼 일어나고 있어 새삼스러울 것도 못되지만, 구석도 아니고 절 한복판에 덩그러
니 있는 무거운 돌덩어리까지 버젓히 도난의 피해를 받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제자리로
돌아와 주어 그저 다행일 따름이다. 이들 돌사자는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52호

돌사자의 가호를 받고 있는 대웅전(大雄殿)은 조선시대 건물로 1983년 해체복원할 때, 처음보다
크게 지어버려 본래의 모습을 다소 잃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덩어리
가 촘촘히 박힌 다포(多包)양식이다.


▲ 광덕사 대웅전 ~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46호

▲ 대웅전 불단에 모셔진 석가여래 3존불
석가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약사여래(藥師如來)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가 앉아 있으며,
그들 뒤로 1741년에 그려진 탱화가 든든히 자리해 있다.

◀ 광덕사 3층석탑 -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120호


대웅전 앞 뜰에는 날렵한 몸매를 지닌 3층석탑이 서
있다. 이 탑은 2중에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
身)을 올린 것으로 1층 탑신에는 문모양 안에 자물쇠
를 새겨 놓았다. 탑의 꼭대기에는 노반(露盤)과 복발(
覆鉢) 등의 장식이 남아있으며, 고려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탑 좌측 명부전 앞에는 괘불(掛佛)
을 거는 석주(石柱)와 당간(幢竿)이 하늘을 찌를 기세
로 솟아 있다.


▲ 지장보살(地藏菩薩)과 염라대왕 등의 저승의 10왕을 모신 명부전(冥府殿)

▲ 명부전과 대웅전은 단청(丹靑)이 곱게 입혀져 있다.
그 화려한 색채에 가히 눈이 부실 지경이다.


♠ 광덕사 외곽 부분 (산신각, 천불전, 부도)

▲ 광덕산이 베푼 옥계수로 늘 넘쳐나는 광덕사 약수터


▲ 대웅전에서 천불전, 산신각으로 가는 길

▲ 경내와 조금 떨어져 있는산신각

▲ 천불전으로 가는 다리 앞에 바위에 새겨진 불상이 있다.
얼핏 보니 불상보다는 금강역사(金剛力士)나 천인상(天人像)같다.


광덕사는 크게 대웅전과 명부전 등이 있는 중심부와 천불전, 산신각 등의 외곽부로 나눌 수 있
다. 명부전 좌측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그것을 지나치면 천불전, 산신각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푸른 내음이 가득 깃들여진 그 길을 따라가면 산신각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는데, 그 계단의
끝에는 시원스레 처마를 들어올린 산신각(山神閣)이 자리해 있다.
큰 새가 하늘로 비상하기 위해 날개를 높이 쳐든 인상의 팔작지붕을 지닌 이 건물은 산신각이라
고는 하지만 산신(山神) 외에 칠성신과 독성(獨聖, 나반존자) 등을 모시고 있어 거의 삼성각(三
聖閣)이나 다름없다.

산신각을 둘러보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직진하면 천불전으로 가는 긴 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는
광덕산 계곡과 등산로 위에 걸어놓은 것으로 경내에서 천불전으로 가는 시간을 크게 줄였다. 그
다리에 끝에는 근래에 새로 지은 천불전(千佛殿)이 있다. 한때 광덕사가 잘나가던 시절에는 3층
규모로 무려 3천불을 모셨다고 한다. 허나 임진왜란 때 한줌의 재로 변했으며, 그후 1층으로 다
시 재건하였다. 1975년에 해체 복원하였으나 1999년 12월 불의의 화재로 조선 중기에 그려진 탱
화 3점과 더불어 다시금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2001년과 2002년에 왔을 때는 터만 덩그러니 있
어 그 허전함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었는데, 새로운 천불전이 솟아나 그 빈터를 채워준다. 비록
고색(古色)의 내음과 천불전의 옛 영화로움은 화마(火魔)에 녹아 없어졌지만 말이다. 아직은 미
완의 상태라 단청이 입혀져 있지 않으며, 현판도 없다. 내부는 번데기에서 화려한 나비로 태어
날 그날을 기다리며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나비처럼 한참 몸단장 중이다.
지붕을 받치는 공포와 건물 기둥, 문짝에 색동옷이 곱게 입혀지는 날 천불전의 영화로움은 다시
재현될 것이며, 움츠려든 광덕사의 사세도 다시 기지개를 켤 것이다. 이 건물은
충남지방문화재
자료 247호
로 화재로 옛 모습을 잃었음에도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천불전 옆에는 승려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건물인 인광당(忍光堂)이 있고, 그 앞에는 옛 천불
전을 떠받들던 커다란 주춧돌 2개가 옛날을 그리워한다.


▲ 2번이나 화재를 만나 전소된 아픔을 간직한 광덕사 천불전

▲ 옛 천불전의 주춧돌

▲ 승려의 생활공간인 인광당

▲ 부여 정림사 5층석탑의 새로운 부활인가? 근래에 새로 심은 5층석탑


천불전에서 다시 다리를 건너 산쪽으로 가면 최근에 새로 지은 하얀 피부의 맨들맨들한 5층석탑
이 나온다. 백제탑의 백미(白眉)로 일컬어지는 부여 정림사(定林寺) 5층석탑의 후예일까? 그를
쏙 빼어닮은 모습이 우리의 눈길을 단단히 잡아맨다. 660년 백제가 나당(羅唐)연합군에게 망한
이후, 고려시대까지 옛 백제 땅에는 정림사 석탑을 닮은 탑이 여럿 등장한다. 이들은 백제를 그
리워한 백제인의 후예들이 세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아직도 백제를 열망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일까? 광덕사에 21세기형 정림사 석탑이 탄생하였다. (천안 지역도 옛 백제 땅의 일부)

5층석탑 우측으로 산길이 나 있는데, 그 길을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승려의 묘탑(墓塔)인 부도
를 만날 수 있다. 부도는 모두 4기로 팔각원당형(八角圓堂形)의 지붕을 얹힌 부도 3기가 한 형
제마냥 나란히 서 있고, 뒤쪽 멀리로 석종형(石鐘形)부도 1기가 외롭게 서 있다. 이들은 모두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광덕사의 찬란한 역사가 담긴 산증인들이다. 팔각원당형 부도의 주
인은 청상당
(淸霜堂), 적조당(寂照堂), 우암당(牛庵堂)으로 광덕사와 깊은 인연이 있던 승려다.
청상당은 17세기에 활약한 승려로 1671년 군산 은적사(隱寂寺)에서 입적하자 그 제자들이 사리
를 모셔와 1672년에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이들과 조금 떨어진 석종형 부도는 주인을 알 수 없어 무명부도(無名浮屠)라고 부른다. 이 탑은
가운데 받침돌 8면에 신장상(神將像)이 새겨져 있는데 그 수법이 우수하다. 이들 부도는 한 덩
어리로 묶어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85호이며, 이들로부터 산 쪽으로 200m 안쪽에 신라 흥덕왕 때
절을 크게 중창한 진산대사
(珍山大師)의 석종형 부도가 숨어 있는데, 우리는 그 탑의 존재를 알
지 못해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했다. 진산대사 부도는 별도로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53호
이다.

부도군 주변으로는 밤나무가 가득하다. 호도와 밤이 절정을 이루는 가을에 오면 여물어 땅으로
곤두박질 친 밤송이의 거대한 나라로 변해버린다.


▲ 팔각원당형 부도 3형제


▲ 팔각원당형 부도에서 멀리 떨어진 주인 모를 석종형부도


광덕사 부도를 끝으로 광덕사 관람은 마무리가 되었다. 진산대사 부도와 보물로 지정된 동산문
화재 3점을 못봐 아쉽기는 하지만, 인연이 없는 것을 어찌 하겠는가? 다시 종점으로 내려오면서
일주문 부근에서 시내에서 사온 김밥과 간식거리로 허기진 배의 불만을 잠재운다. 산에서 먹는
음식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모두 꿀맛인 것 같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먹어서 그런 것일까?
광덕산을 오를까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구실로 절과 산을 뒤로하며, 가고 싶지 않은 아비규환의
속세로 길을 재촉한다. 이렇게 하여 광덕사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0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는 한달까지이며, 원본
(☞보기)
은 2달까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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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면도 안면암 / 부교체험



















천안 광덕사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2)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1)





























































# 금산 보석사 ~ 진악산 자연휴양림 (아랫글 후속편)

 

' 충남 금산(錦山) 역사기행 (2005년 2월 20일)'
'중편 ― 진악산 보석사(寶石寺) ~ 산신각, 은행나무, 진악산자연휴양림'

사색에 잠기기 좋은 진악산 산책로 ~

▲ 보석사에서 영천암으로 올라가는 산길(진악산 등산로)

* 이번 여행 코스
' 서울
→ 천안역 → 대전역 → 마전 → 금산읍 → 보석사입구(석동리) →
보석사 경내(일주문 → 의병승장비 → 대웅전 → 의선각
산신각 → 은행나무)
→ 진악산 자연휴양림(영천암) → 보석사 경내 → 금산읍
칠백의총(순의비 →
칠백의총 → 종용사 → 기념관) → 마전 → 대전 → 천안 → 서울 '

* 본 글은 상,중,하 3부로 나눠서 작성했습니다.
* 본 글에 사용한 글씨체는 굴림체, 돋음체, 바탕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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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석사 산신각(山神閣)의 풍경물고기~

◀ 보석사 산신각(山神閣) -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을 한 조그마한
전각으로 우리에게 매우 친근한 존재인 산신
(山神)을 모시고 있다.
별 부담없는 모습의 이 전각은 아까전 의신각
처럼 문이 굳게 잠겨져 있어 안에는들어가지

못했으며 건물의 높이가 너무 낮아 현판(懸板)에
머리가 닿을 정도이다.

▲ 정면에서 바라본 산신각
 

◀ 산신각 추녀에 매달린 풍경물고기 -
다른 절에서는 보통손이 닿지도 않은 높은
위치에 매달려 있어 중생들의 목을 꽤 아프게
만들던 풍경물고기, 그런 풍경이 여기서는 바로
내 눈높이에서 딸랑딸랑 소리를 내며 춤을
추고 있다. 그래서 풍경을 유심히 살펴볼 수도
있고 직접 만져볼 수도 있다.

내가 가본 수많은 절중에서 풍경을 만져보고
이리저리 흔들어 볼 수 있는 곳은 이곳 보석사가
유일한 것 같다.
추녀 밑에 마치 그림의 떡처럼 높이 매달린
풍경을 바라보면서 평소 직접 만져보며 집으로
가져가고픈 생각이 매우 절실했는데 이제서야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매우 기쁘다.
절에 있는 것 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존재가바로 풍경과 물고기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풍경을 따가지고 온 것은 아님.
실제로 만져보니 생각 외로 무게가 꽤 나가는
것 같다.

▲ 풍경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
조그마한 풍경의 몸뚱이에도 범종(梵鐘)처럼 비천상이 자리해 계신다.
연꽃자리 위에 무릎을 꿇으며 두 손으로 소중히 뭔가를 떠받들고 있는데
그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비천상의 천의(天衣) 자락이 하늘 높이 마치 불이 활활 타오르듯 요란스레 휘날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연꽃구름을 타고 어디론가 급히 행차하는 모양이다.

풍경의 아랫 부분에는 당초문(唐草紋)으로 보이는 무늬가 마치 꼬부랑 아랍어처럼 새겨져 있다.

▲ 풍경에 안쪽 부분
방울 안쪽으로 십자(十字)처럼 생긴 추가 달려 있는데
저 추는 풍경이 그윽한 소리를 내는데 큰 역할을 하는 존재이다.
풍경의 추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 솔직히 방울 안에 저런 것이 있다는 것은
여기서 처음 알았다.

▲ 바람에 맞쳐 춤을 추는 풍경과
물고기 (1) -
매섭고 강한 바람이 계속 불어대면서
풍경물고기도 조금의 휴식도 없이
계속 몸을 움직여 댄다.

▲ 바람에 맞쳐 춤을 추는 풍경과
물고기 (2) -
오늘따라 그 소리가 정말 한 곡의 가곡(歌曲)을
듣는 듯 하다.

◀ 바람에 맞쳐 춤을 추는 풍경과물고기 (3) - 푸르른 하늘을 자신의 푸른 바다로 삼으며
열심히 바다를 거닐듯 살랑살랑움직이는
풍경물고기,
풍경 물고기는 불전(佛殿)의 화재를 막고자 하는
의미도 있다고 하며자나깨나 죽으나 눈을 뜨고
있는 물고기처럼 열심히 수행하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고 한다.

▲ 물고기를 잡았다
내 손에 잡힌 풍경물고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발 놔달라고 애원을 하고 있다.
간만에 정말 시원하게 들어보는 풍경물고기의 연주곡을 약 20분 가량 들으니
머리 속에 산재해 있는온갖 복잡한 생각들이 잠시나마 잊혀지는 듯 하다.

풍경물고기는 앞날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 잡힌 나에게 이렇게 충고를 해준다.
"하루하루 열심히 정진하며 살아가시오. 쓸데없는 과욕을 부리지 말고, 자연에 거스르지 말고,
자신의 일에 묵묵히 최선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꼭
좋은 날이 올것이외다.
인생이라는 것은 첫술에 배부를 수가 없다오.."
 

 


♠ 하늘 높이 자라난 보석사 은행(銀杏)나무 ~

◀ 1000년을 살아온 보석사
은행나무 -
보석사에서 제일 오래된 보석으로
일컬어지는 보석사의 은행나무.
이 나무는 보석사를 창건한 조구대사
가 그의 제자와 함께 심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수령(樹齡)은 적어도 약1000살 이상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한국
최대의 은행나무로 지존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용문사(龍門寺) 은행나무에
버금가는 나이로 나무의 높이는 무려
34m, 가슴둘레는 약 11m의 거대한
나무이다.
나무 아래를 지나가는 사람과 차량을
비교해보면 그 규모가얼마나 큰 지
실감이 날 것이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과 그들이 만든
문명의 이기(利器)들은 이 나무앞에서
는 일개 하잖은 존재에불과할 뿐이다.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 365호



 

▲ 애타게 봄을 기다리는 은행나무
가을에 왔으면 황금색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은행나무를 볼 수 있었는데,
이렇게 늦겨울에 오는 바람에 가지만 앙상한 벌거숭이 나무만 보고 말았다.
봄의 입구라는 입춘(立春)도 지나 이제 봄만 오면 되는데 이렇게 강추위가 몰려와
전국을 꽁꽁 얼려버리니 봄을 애원하는 은행나무는 더욱 조바심이 들어
가지를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하늘을 원망하고 있다.

◀ 보석사 은행나무 -
덩치도 크고 오래된 나무치고 신비하지
않은 나무가 없는것 같다.
이 나무 역시
석동리 마을에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으면 미리소리를 내어
알려준다고 하며 예로부터 석동리
마을을 지키는신성한 나무로써 매년
2월 15일마다
나무에게 제를지낸다.
또한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 마다
이 나무는 소리를 내어 운다고하는데
1945년 8.15광복과 한국전쟁 때나무가
하루종일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이 나무에 대해 마치 사람을
대하듯 소중히 여기던 지역 주민들의
사랑이 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냈을
것이다.

 

▲ 은행나무 표석

▲ 은행나무의 아랫 부분
둘레가 무려 11m에 이르는 엄청난 허리사이즈,
저 비만스러워 보이는 그의 굵직한 허리에는 1000년의 무수한 세월이 담겨져 있다.
그 엄청난 시간을 매일 매일 먹어대니 저렇게 무책임하게 살이 찐 것이리라..

▲ 이끼를 뒤집어 쓴 기린암(麒麟巖)
은행나무 북쪽에는 기린암이라 불리는 제법 큰 바위가 이끼를 옷으로 삼으며 그렇게 앉아 있다.
이 바위에는 옛 사람들의 낙서가 남겨져 있는데 '기린'(麒麟)이란 목이 긴 동물이 아닌
상상 속의 상서로운 동물로 '기린이 나타났다'하는 식의 역사기록이나 전설이 많이 남아 있어
여기서도 기린 같은 것이 나타났던 모양이다.
아니면 상서로운 존재인 은행나무를 기린으로 빗대 표현한 것일 수도 있겠다.

'麒麟巖'의 3글자 밑에는 이 곳에 다녀갔던 사람들의 이름 석자(字)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다.

▲ 은행나무에서 바라본 보석사 경내(境內)
마치 어미와 자식처럼 나란히 서 있는 대웅전과 의신각의 모습이 매우 다정스러워 보인다.



♠ 진악산 자연휴양림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다 ~

▲ 보석사 계곡
보석사의 방화수(防火水) 역할을 하는 계곡으로
절 부근에 12폭포가 있다고 해서 보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골짜기를
뒤적거려 보았으나 결국 찾지도 못하고 대신 3단으로 쏟아지는 조그만
계류(溪流)를 발견하는데 그쳤다.

비록 떨어지는 높이는 1m에 불과하지만 물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니
폭포는 폭포가 아닌가?

유리처럼 투명한 물의 유혹으로 잠시 그의 곁으로 다가가 그를 만졌는데
얼마나 차갑던지 한동안 손이 얼어 움직이지를 않는다.

▲ 무지개처럼 떠 있는 나무다리
저 나무다리를 건너면 금산군청에서 꾸며놓은 휴양림 산책로가 펼쳐진다.
산책로의 길이는 약 200~300m정도로 정자와 의자, 그리고 온갖 운동 시설 등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 쓸쓸한 겨울 산길
인적이 없는 조용한 산길,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채 봄을 갈망하는 나무들,
그리고 그 길을 혼자 걷고 있는 '나'라는 존재.
정말 사색(思索)에 한없이 잠기기에는 매우 적당한 곳이다.

마치 내가 저 길을 혼자 전세라도 낸 듯 아무도 없는 저 길을 걸으며
온갖 번뇌로 가득한 속세로부터 잠시나마 해방감을 누려본다.

시적(詩的) 감각이 뛰어났다면 정말 멋있는 시라도 한 수 지었을텐데 그러지를
못하는 현실이 너무 안타까울 뿐..

▲ 휴양림 산책로에서 만난 6각형 정자(亭子)
별로 정자처럼 보이지는 않지만 잠시나마 쉬어가기에는 괜찮은 곳이다.
저 난간에 걸터앉아 동동주 한잔 걸쳤으면 좋으련만..

▲ 여기서 잠시 수학공부를..
초등학교 시절부터 지겹게 배워온 1㎥의 존재를 그동안 까맣게 잊고 살다가
여기서 이렇게 재복습을 하게 되었다.

이 곳 진악산휴양림은 역사공부, 문화유산공부, 불교공부, 자연공부 외에도
보너스로 수학공부도 할 수 있는 매우 알차고 좋은 곳이다.

▲ 약수터
길가에 이름 모를 샘터가 지나가는 이들의 목을 축여준다.
나는 물을 많이 마시는 편으로 약수터나 샘터 등을 만날 때마다
꼭 물을 한모금씩 마시는 편이다.
여기서 진악산이 제공해준 깨끗한 물을 한모금 마시고 잠시 숨을 가다듬으며
다시 산책을 시작한다.

▲ 장승 1쌍
이들 장승들은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는지 표정이 매우 밝아 보인다.
내가 온게 너무 기뻐서 그런가.

계곡 옆에 주먹도끼처럼 생긴 커다란 바위가 푸른 이끼를
옷으로 삼으며 그렇게 서 있다.

▲ 계곡 위에 걸려 있는 외나무다리
저런 모습의 다리를 본
것도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저 돌덩어리는 아까전 주먹도끼처럼 생긴 바위에 뒷부분이다.
산에서 굴러떨어진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바위로 지금은
계곡과 숲 사이에 경계역할을 하고 있다.

나무다리와 휴양림 벤치
저 나무
다리를 건너 저 벤치에 앉아 잠깐 자연과 이야기를 해본다.
날씨가 따뜻할 때 왔다면 저 의자에 걸터앉아 잠시 낮잠이라도 즐겼으면 싶지만
추운 겨울이라 감히 그럴 생각을 하지 못한다.


▲ 산에 수북히 쌓여 있는 눈의 잔재들

보석사에서 15분 가량 올라가면 보석사의 부속암자인 영천암(靈泉庵)을 만날 수 있다.
이 절에는 영천(靈泉)이라 불리는 유명한 샘이 있는데 절에서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한다는
안내문을 입구에 버젓히 세워놓아 굳이 절 안까지는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몰래 들어가는 것이 나의 취미이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억지로라도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

절로 들어서는 입구 부근 공터에는 어느 산악회에서 방금 시산제(始山祭)를 마치고 진악산
정상으로 올라갈 체비를 하는데 그들이 놀고 먹은 자리는 거의 쓰레기장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산에 시산제를 지내러 왔으면서 오히려 산에서 먹고 놀고 쓰레기장으로 만드는 것은 또 뭐하는
짓이란 말인가? 굳이 시산제 흔적을 그곳에 남길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나는 그들을 지나쳐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그렇지만 눈이 녹으면서 등산로 전체가 진흙 길로 화(化)해 버려 좀처럼 올라가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저번 태백산처럼 등산화를 신고 온 것도 아니라서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한 고비를
맞기도 하였지. 아무래도 진악산이 나를 반기는 눈치가 아닌 것 같다는 핑계를 둘러대며
등산을 접고 다시 보석사로 내려왔다.

◀ 보석사 옆을 흐르는 계곡
보석사로 들어설려면 저 계곡을
꼭 건너야 된다.
이 계곡은 보석사의 방화수(防火水)
역할도 하겠지만 속세의 모든 번뇌
(煩惱)는 저 계곡 물에 흘러보내고
새로운 마음으로 들어오라는 뜻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아까 전에 둘러봤던 보석사를 그냥
지나치기가 몹내 아쉬워 다시 절로
들어갔지. 경내는 아까 전과 달리
매우썰렁한상태,
그 덕에 대웅전에 다시 들어가잠시
예불도 드리고, 내부 곳곳을이리저리
살펴도 보고 산신각으로 가서풍경
물고기와 놀기도 하면서 잠시 여유를
부려본다.

▲ 보석사를 나가면서~~
약 3시간에 걸친 보석사, 진악산 답사는 이렇게 끝을 맺게 된다.
사람들이 떠나간 전나무 숲에는 다시 기나긴 고요가 찾아왔다.

보석사에는 비록 혼자 왔지만
여기서 동행을 만나 같이 움직였으니
그는 바로 왼쪽에 있는 나무막대기.
저 나무는 보석사 범종루에 누가놓고
간 것을 내가 취하여 그 옛날먼 길을
나선 나그네들처럼지팡이삼아 같이
진악산과 보석사를둘러보았지.
단 대웅전으로 들어갈때는문 앞에
대기시켜 놓고.
막대기의 높이는 1m가 조금 넘으며
별로 무겁지도 않고 촉감이 좋아
나의 마음에 쏙 들었지. 그래서 산을
내려오면서 집으로 가져갈 야심찬
생각까지 해보았으나 나무도 그걸
원하지 않는 것 같고, 현실적으로
서울까지 그것을 지고 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그
막대기를전나무에 저렇게 기대어
기념촬영을 하며 작별을 고하니 마치
옛 벗과헤어지 듯한 아쉬움이 가슴
가득히 밀려온다.
나는 그 막대기를 주차장 부근에
꽂아놓고 왔는데 그 옛날승려, 선인
들이 땅에 꽂아놓은 지팡이가 나무가
되었다는거짓말같은전설에 따라
나도 그들을흉내내보았지.
부디 큰 나무로 성장하라는뜻에서~
혹시 아는가. 정말로 그렇게될지도..


진악산(보석사) 관람이 이렇게 마무리가 되자, 보석사 입구 정류장으로 나온다. 어차피 갈데는 거기 밖에
없으니 정류장에는 조그만 구멍가게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차시간을 물어볼 생각으로 문을 열어보았으나
왠걸 문이 열리지를 않는다. 가게 주인은 가게를 비워놓고 어디로 증발해 버린 상태.. 게다가 정류장
주변으로 집, 사람도 없고 물어볼 데가 마땅치가 않다.

이 곳은 버스가 1일 5회 밖에 안다니니 최소한 몇시간은 기다려야 차가 올 것이다. 그래서 오랜만에
지나가는 차에 신세를 지는 이른바 히칭을 시도하였지. 그렇지만 가족단위 나들이 차량이 많아서 쉽게
잡혀지지가 않는다. 낮시간이라 추위는 조금 풀리긴 했지만 추운 것은 여전하다.

그래서 석동초교 못미쳐로 가서 보석사 쪽에서 나오는 차를 노리는데 마침 거기서 차 한대가 나온다.
나는 손을 흔들며 태워달라는 신호를 보내니 그 차의 운전사는 나에게 손가락으로 금산 방면을 가리킨다.
즉 금산 쪽으로 가냐는 무언의 신호.그래서 고개를 끄덕이니 그는 내 앞에 차를 세우며 타라는 신호를
보낸다.

나를 태워준 차량 운전사는 보석사 신도로 보이는데 절에서 볼일을 마치고 읍내로 돌아가는 중이다.
보조석에는 그의 동무로 보이는 사람이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비지니스를 이야기 하느라 정신이
없어 나는 그냥 앉아있기만 하였지.
석동리를 출발한지 15분 만에 금산읍내 터미널에 도착, 그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다시 터미널로 들어선다.

그럼 이제 어디로 갈까? 이미 갈 곳을 정해두긴 했지만 별로 가고픈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날씨가 워낙에 춥다 보니, 나의 마음까지도 은근히 약해지고 있었지. 마음 한편으로는 '그냥 대전으로
넘어 가자' 다른 한편에서는 '마전으로 가서 이태조(李太祖)의 태실(胎室)이나 보자', 이렇게
나의 마음은 사분오열 되어 다툼이 일어났으나 과감히 마음을 다잡으며 새말(의총리)에 있는 칠백의총
(七百義塚)을 찾아가기로 하였지.
그래서 대전동부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마전 방향 5분 거리에 있는 새말로 간다.

새말에 이르니 칠백의총을 알리는 커다란 돌덩어리가 나를 맞이해준다.


~~ 아쉽지만 중편은 여기서 끝.
~~


* 중편은 2005년 6월 11일에 상편의 보석사 산신각, 은행나무와
하편의 진악산 자연휴양림 부분을 따로 분리한 것으로
7월 4일부터 공개


Copyright (C) 2005 by Park Yung,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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