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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중앙고등학교, 창덕궁 신선원전 구역, 후원 돌담길 겨울 나들이 <중앙고 본관, 창덕궁 후원 뒷길, 옥류정>
' 북촌 중앙고등학교, 창덕궁 후원 뒷길
겨울 나들이 '
▲ 창덕궁 신선원전, 의효전 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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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고등학교 (본관 주변) |
▲ 창덕궁 후원 돌담 |
겨울의 차디찬 한복판인 1월의 끝 무렵, 북촌(北村)에 자리한 중앙고등학교와 창덕궁 후 |
♠ 북촌의 한류 명소이자 늙은 근대 건축물을 여럿 간직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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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과 맞닿은
북촌의 동북쪽 끝자락에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중앙고등학교(중앙중고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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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뜨락 서쪽에는
기묘하게 생긴 형상과 함께 6.10만세 기념비가 3.1운동 책원비가 있는 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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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서쪽에는 서양식
건물인 원파도서관이 있다. '원파'는 학교를 크게 일으킨 김성수의 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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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대한제국 고위 무관이자 독립운동가로 크게 활약했던 노백린(1875~1926) 장군의 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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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뜨락 동쪽에도 기묘하게 생긴 형상과 함께 3.1운동 책원비가
자리해 6.10만세 기념비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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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본관과 많이도 닮은 중앙고 본관은 콘크리트 철근의 2층 석조 건물로 1935년에 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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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1층 중앙은 학교 행정공간으로, 나머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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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관의 뒷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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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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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뒤쪽에는 붉은 피부의 비슷한 모습을 지닌 서관과 동관이 있다. 서관은 1921년에 지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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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관과 마주하고 있는 동관은 1923년 10월에 지어진 2층 붉은 벽돌 건물이다. (지붕을 포함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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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관에서 바라본 동관 |
▲ 동관의 뒷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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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관과 서관 사이에는 원래 본관이 있었다. 허나
1934년 화재를 만나 건물이 주저앉으면서 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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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강당 뒤쪽에는 삼일기념관이라 불리는 단촐한 모습의 기와집이 있다. 네모나게 다져진 석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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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고 운동장에서 바라본 창덕궁 신선원전(昌德宮 新璿源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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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고에 왔다면 꼭 살펴봐야 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창덕궁의 숨겨진 속살인 신선원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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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원전의 옆 모습 |
▲ 신선원전의 두툼한 뒷모습 |
신선원전 자리에는 원래 대보단(大報壇)이 있었다. 조선은 명(明)의 충직한 제후국(諸侯國)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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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원전 남쪽에 있는 의효전은 원래 덕수궁(경운궁)에 있었다. 1904년 순종의 왕비인 순명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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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원전 구역에서 그나마 제일 가깝게 접할 수 있는 존재가 괘궁정이다. 이곳은 돌담이 운동 |
♠ 서울
도심 뒷통수에 숨겨진 호젓한 뒷길, |
창덕궁 돌담이 이어진
중앙중학교 동쪽 길을 오르면 고려사이버대학교가 나온다. 이들은 중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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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을 속세로부터 열심히 가리고자 지형을 이용하여 높이 돌담을 둘렀다. 지형이 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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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에는 연못이 참 많다. 그 연못을 살찌우는 물은 바로 북악산이 베푼 것으로 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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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이 마음 놓고
바퀴를 굴릴 수 있을 정도에 후원 뒷길은 옥류정 입구의 너른 공터에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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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정으로 인도하는
짧은 산길은 경사가 느긋하다. 그 옆에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는 조그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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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물이 흐른다는
뜻의 옥류정, 그 어여쁜
이름 마냥 후원 뒷쪽에 숨겨진 오래된 경승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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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의 뒷통수인 후원 뒷길 고개는 돌담 바로 옆구리라 돌담을 만지면서 갈 수 있다. 그 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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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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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 경주의 꿀명소, 경주 남산 나들이 <염불사지, 봉화골, 칠불암, 칠불암 마애불상군>
' 서라벌 경주의 꿀단지, 남산 초여름 나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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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산 신선암 마애보살반가상 |
▲ 남산(금오산) 산줄기 |
여름 제국이 봄의 하늘을 가로채며 천하 평정에 열을 올리던 6월의 첫 무렵, 신라(新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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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제(양피저수지)는 배반평야에 수분을 제공하는 저수지로 연(蓮)들이 푸른 기운을 드 |
♠
남산 입문 (염불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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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제에서 남쪽으로 7분 정도 가면 안말(안마을) 한복판에 누워있는 염불사터를 만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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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터 동탑은 1973년 구정동 불국광장으로 강제 이전되었다. 그때 박정희 전대통령이 경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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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쪽에서 바라본 동탑 |
▲ 북쪽에서 바라본 동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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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감치 복원된 동탑과 달리 서탑은 옥개석을 중심으로 무거운 상처들이 적지 않다. 동탑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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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쪽에서 바라본 서탑 |
▲ 절터에서 수습된 주춧돌과 늙은 석재들 |
동탑 주변에서는 사람들이 한참 잡초를 토벌하고 있었다. 염불사터가 간만에 이발을 하는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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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불사지에서 숲과 밭두렁이 적당히 섞인 시골길을 지나면 그 길의 끝에 봉화골 산길이 나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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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골
계곡은 조그만 개울로 아기자기한 모습을 지녔다. 하지만 하늘이 비를 너무 짜게 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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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남산에서 가장 덩치가 큰 불교 유적, 7개의 석불로
이루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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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에는 옛 신라 사람들이 심어놓은 불교 유적이 지나치게 많이 서려있다. 절터만 무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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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주변은 그들의 신변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하여 그 밑에서 그들을 바라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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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존불 앞에 놓인 바위에는 4방불이 깃들여져 있다. 3존불이 주연이라면 4방불은 그들을 수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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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만한 얼굴과 양감이 풍부한 신체 표현, 협시보살들의 유연한 자세는 남산 삼릉골 석불좌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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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불암 뜨락에 수습된 주춧돌들 (석등 대좌도 보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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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암 뜨락에는 주춧돌과 석등 대좌(臺座), 석탑 석재들, 연꽃이 새겨진 배례석(拜禮石)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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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과 칠불암 법당 사이에는 석탑의 옥개석으로 여겨지는 주름진 커다란 돌덩어리가 화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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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곁에 자리한 칠불암은 1930년대에 지어진 조그만 암자이다. 칠불암이란 이름은 3존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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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배지붕을 지닌 1칸짜리 |
▲ 삼성각에 봉안된 독성탱, 칠성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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