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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교육의 중심지이자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깃든 곳, 성균관 늦가을 나들이 (문묘 은행나무, 성균관대성전 은행나무)
' 조선시대 교육의 중심지,
성균관(문묘) 늦가을 나들이 '
▲ 성균관의 자랑, 문묘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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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명륜당 |
▲ 성균관 대성전(문묘) |
대자연이 우리에게 내린 4계절 가운데 오색 단풍과 황금색 은행잎이 흩날리는 늦가을 풍 |
♠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교육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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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학교 교내
동남부에 넓게 자리한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국립 교육기관으로 오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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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신삼문(神三門) |
▲ 성균관 사람들의 시계, 북 |
성균관 유생은 명륜당 좌우에 설치된 동재와 서재에서 기숙 생활을 했는데, 매월 1일에는 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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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문묘 은행나무 |
▲ 하연대 |
성균관 교과 과정은
사서와 오경을 구재(九齋)로 나누어 가르쳤다. 그 밖에 과문(科文)의 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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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정비각과 대성전 은행나무 |
▲ 좌측에서 바라본 명륜당 |
드넓은 성균관은 유교
성현을 봉안하며 제를 지내는 대성전을 앞쪽에 두고, 교육 공간인 명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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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균관 명륜당 동북쪽 구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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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해 활짝 입을 연 명륜당 서쪽 문을 들어서니 바로 명륜당의 육중한 뒷통수가 위압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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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각 동쪽에는 역시나 굳게 닫힌 육일각이 붉은 피부를 드러내며 자리해 있다. 겉으로 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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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동북쪽 협문을 들어서면 말쑥한 모습의 정록청이 마중한다. 이 건물은 성균관 참하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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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가장 뒷쪽에는 향관청이 동/서월랑을 거느리며 자리해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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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월랑(西月廊) |
▲ 동월랑(東月廊) |
향관청 앞에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월랑 2채가 있다. 서쪽에 자리한 월랑은 서월랑, 동쪽 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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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록청 동쪽 창고 |
▲ 서리청(書吏廳)과 비복청(婢僕廳) |
정록청 동쪽에는 창고를
비롯해 직방(直房), 서리청, 비복청, 서벽고(西壁庫), 주소 등의 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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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방 남쪽에는 성균관
사람들의 밥을 책임지던 진사식당이 길게 자리해 있다. 여기서 진사는 |
♠ 성균관 명륜당(明倫堂) 주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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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은 유생들을 교육하던 강당(강의실)이다. 명륜(明倫)이란 '인간 사회의 윤리를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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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륜당의 육중한 뒷모습 |
▲ 명륜당 동쪽 날개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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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이 워낙 장대한 규모라서 그 건물의 정체를 알리는 현판 또한 몇 사람으로는 어림도 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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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내부에는 한자로 쓰인 온갖 현판들이 천정을 번잡하게 메우며 나의 침침한 두 눈을 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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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문약례(博文約禮) |
▲ 덕화만방(德化萬邦) |
▲ 안연이 공자에게 인(仁)이 뭐냐고 |
▲ 내배성묘서독노론(來拜聖廟書讀魯論) |
◀ 명륜당 안쪽에 걸린 또 다른 명륜당 현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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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앞에 넓게
닦여진 석축을 월대라고 한다. 돌로 4줄의 기단을 쌓고 정면과 좌우에 돌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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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재(東齋) 바깥쪽 |
▲ 동재(東齋) 안쪽 |
명륜당 뜨락 좌우
끝에는 유생들의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길게 늘어서 있다. 각각 20칸 규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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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西齋) 바깥쪽 |
▲ 서재 바깥쪽 통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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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뜨락에는
성균관의 오랜 명물이자 꿀단지로 추앙받는 거대한 은행나무 2그루가 아낌없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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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재 남쪽 끝에는
성균관 사람들의 시계 역할을 했던 태극무늬 북이 걸려있다. 그가 1번 울리 |
♠ 성균관 마무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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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남쪽에는 유교의 성현이 봉안된 대성전이 자리해 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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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동쪽에는 동삼문이 자리해 있다. 말 그대로 동쪽 삼문으로 오직 제왕만 드나들 수 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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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뜨락에는 묘정비(廟庭碑)를 머금은 묘정비각이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묘정비는 성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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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답하게 갇혀있는 성균관 묘정비 |
▲ 성균관 대성전 동쪽 은행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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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신삼문 좌우에는 장대하게 자라난 은행나무 2그루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비록 명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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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게 닫힌 신삼문 안쪽 |
▲ 바깥에서 바라본 신삼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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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전 남쪽에 자리한 신삼문은 성균관의 남문이자 정문이다. 석전대제 등 큰 행사가 열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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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기고(祭器庫) |
▲ 수복청(守僕廳) |
대성전 서쪽에는 제기고와 수복청, 전사청 등의 조그만 부속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그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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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청과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사청이 자리해 있다. 이곳은 제사와 석전을 준비하는 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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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경내 바깥에는
비천당과 탕평비각, 하연대, 숭보사 등이 있다. 이들도 엄연한 성균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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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정문이자
탕평비각 옆에 단촐하게 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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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은 주근깨가 많이 피어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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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비 옆에는
1742년에 세워진 탕평비를 머금은 비각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영조 임금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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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이 성균관을 방문할
때는 연(輦)이라 불리는 제왕 전용 가마를 타고 편하게 이동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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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보면 성균관은
이제 다 본 것 같다. 접근이 통제된 진사식당의 속살과 서벽고, 서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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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에 묶여있는 강화도 옆구리의 커다란 섬, 교동도 여름 나들이 ~~ (교동읍성, 교동향교, 성전약수, 화개사, 강화나들길 9코스)
~~~~~ 강화 교동도 나들이 ~~~~~
▲ 화개산 숲길 | |
▲ 교동향교 |
▲ 교동읍성 |
강화도(江華島)와 황해도 사이에는 교동도란 커다란 섬이 떠있다. 예전에는 강화도 창후 |
♠ 교동도 입문 (교동읍성) | |
교동대교를 건넌 버스는 봉소리와 고구저수지, 교동도의 중심인 대룡리, 교동향교가 있는 읍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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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도에서 가장 먼저 문을 두드린 곳은 교동도의 옛 중심지인 교동읍성이다. 화개사입구 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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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바라보고 선 남문은 문루를 상실한 채, 홍예문과 성벽, 옹성 일부만 남아있다. (최근 | |
▲ 남문 서쪽 성곽과 옹성의 흔적 |
▲ 돌담처럼 낮아진 남문 동쪽 성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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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문 앞에는 비석의 일부인 조그만 귀부가 누워있다. 거북 머리와 비석을 꽂던 비좌(碑座)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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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읍성 남문 동쪽에는 교동부 관아터와 황룡우물, 연산군(燕山君) 유배지 등의 명소가 있 | |
▲ 성문에 새겨진 남루(南樓) 글씨 |
▲ 삼도(三道)~~ 문(門)이라 새겨진 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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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향교로 꼽히는 교동향교(喬桐鄕校) | |
교동읍성을 둘러보고 화개산 남쪽 자락에 안긴 교동향교를 찾았다. 화개사입구 정류장에서 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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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군에서 교동향교로 가다보면 향교의 정문인 홍살문이 마중을 한다. 홍살문은 붉은 피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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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하마비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라 쓰여 있으나 이곳은 '수령변장하마비(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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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 남쪽에 터를 닦은 교동향교는 고려 중기인 1127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원래는 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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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조선시대에 전 고을에 설치되었다. 그러다보니 옛 고을 중심지에는 꼭 향교가 남아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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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을 들어서면 바로 명륜당이 정면을 막고 선다. 명륜당은 공자왈~맹자왈~! 공부를 하던 | |
▲ 서재(西齋) |
▲ 동재(東齋) |
▲ 무늬만 남은 동재 굴뚝 |
▲ 굳게 닫힌 내삼문(內三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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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 뒷쪽에는 노룡암이라 불리는 조그만 돌덩어리가 기울어진 모습으로 서있다. 그의 피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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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에서 가장 하늘과 가까운 곳에 향교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이 자리해 있다. 남쪽을 바라보 | |
▲ 한쪽 문이 열린 서무 |
▲ 동무 (그 옆에 제기고와 명륜당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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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향교에 왔다면 꼭 맛봐야 되는 존재가 있다. 바로 대성전 서쪽 담너머에 있는 성전약수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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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개산 남쪽에 포근히 둥지를 튼 조그만 산사 |
교동향교 서쪽에는 화개사로 통하는 울창한 숲길이 있다. 이 숲길은 도보길 유행에 따라 강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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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산 남쪽 자락에 자리한 화개사는 숲에 감싸인 조그만 산사(山寺)이다. 서울 조계사(曹溪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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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초췌한 모습의 승탑(부도탑) 하나가 마중을 한다. 겉으로 보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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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지어진 여염집 모습의 대웅전 앞에는 자태가 아름다운 소나무가 웅장하게 서있다. 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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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사를 둘러보고 정상으로 인도하는 산길을 조금 오르면 문무정터가 나온다. 지금이야 외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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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사람들의 출세 욕심이 담긴 문무정을 지나 화개산 정상으로 향했다. 자연이 닦아놓은 느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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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양천고을의 중심지, 서울 가양동 나들이 '
▲ 궁산에 복원된 소악루(小岳樓) | |
▲ 궁산 산책로 |
▲ 소악루에서 바라본 한강 |
한강 가을물결 무명베를 펼쳐놓은 듯
무지개다리 밟고 가니 말발굽이 가볍다.
사방들녘 바라보니 누런구름 일색인데
양천 일사에서 잠시 군대 쉬어간다.
* 1797년 정조 임금이 양천 관아를 방문하면서 남긴 시
여름 제국의 패기가 기승을 부리던 성하(盛夏)의 한복판에 친한 후배와 강서구 가양동(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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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향교 남쪽에는 양천 고을을 관리하던 관아가 있었다. 양천현아는 중앙에 고을 현감이 |
♠ 옛 양천고을 교육의 중심지, 서울 유일의 향교로 주목을 끄는 | |
향교(鄕校)는 조선 정부가 서울을 제외한 각 고을에 세운 유교식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 | |
◀ 양천현 홀기 (문화재청 사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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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삼문 우측에 심어진 비석 9기는 양천 고을의 오랜 역사를 가늠케 해주는 유물로 양천현감과 | |
▲ 서재(西齋) |
▲ 동재(東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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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은 교육 공간으로 교궁(校宮)이라 불리기도 한다. 보통 학생 30~50명이 수업을 받았으 | |
▲ 글씨에 힘을 불어넣은 듯한 명륜당 |
▲ 대성전을 품은 채, 입을 봉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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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륜당 뒤쪽 굴뚝 | |
※ 양천향교 찾아가기 (2017년 12월 기준) |
♠ 가양동의 든든한 뒷동산, 궁산(宮山) 둘러보기 |
양천향교 뒤쪽에는 가양동의 진산(鎭山)이라 할 수 있는 궁산(74.3m)이 야트막하게 누워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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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두 눈에 바라보이는 궁산 북쪽 절벽에 단아하고 조촐한 맵시의 소악루가 있다. 이 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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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악루에는 겸재가 궁산에서 그렸다는 진경산수화 복사본과 해당 그림의 해설판이 있다. 그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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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鞍峴, 갈마재)은 연세대 뒷산인 안산(鞍山)이다. 겸재가 안산 봉수대에서 피어오르는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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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왼쪽에 소악루가 있고, 그 부근에 조그만 기와지붕이 보이는데 그곳이 소악루를 세운 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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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악루 서쪽 산자락에 아련히 남아있는 양천고성터는 궁산 정상부에 축조된 것으로 길이 220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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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정상부 남쪽 소나무숲에 자리한 관산성황당은 가양동의 안녕을 기원하던 마을 당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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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은 거의 야트막한 뒷동산 수준이지만 주변에 마땅한 산이 없어 그 존재가 무척 커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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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가양동 나들이를 마치고 시장한 배를 달래고자 김포공항 입구에 있는 공항칼국수집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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