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음루를 지나면 주차장이 나온다. 수레를 끌고 온 이들은 여기서 수레를 접어야 되는데, 주차 공간이 넉넉치 못해 바퀴를 동동 굴리는 수레들도 적지 않았다. 어떤 수레 주인은 주차장 관리 요원과 자리를 두고 말싸움을 벌여 석가탄신일의 경건한 분위기를 해치기도 한다. 봉국사가 교 통이 불편한 시골에 있다면 이해라도 하지만 교통편도 괜찮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해 있는데, 잠 깐 편하자고 굳이 수레를 끌고와 불편과 혼잡에 기름을 껴얹어야 되는지 모르겠다. 이런 날은 그저 대중교통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주차장을 지나면 길은 180도로 크게 구부러지며, 그 길의 끝에 산중턱에 둥지를 튼 봉국사가 자 리해 있다. 그럼 여기서 잠시 봉국사의 내력을 짚어보도록 하자.
※ 정릉의 원찰(願刹)이자 약사도량(藥師道場), 봉국사(奉國寺) 북한산(삼각산)의 가장 남쪽 산줄기에 자리한 봉국사는 1395년에 무학대사(無學大師)가 창건했 다고 전한다. 예전에는 1354년(고려 공민왕 3년)에 나옹선사(奈翁禪師)가 창건했다고 우겼으나 근래에는 무학대사 창건설로 완전 굳어진 모양이다. 무학은 이곳에 절을 짓고 약사여래불을 봉안해 약사사(藥師寺)라 했다고 전하며, 1468년에는 세 조(世祖)의 지원으로 절을 중창했다고 전한다. 허나 그 이후 정릉(貞陵)이 복원된 17세기 중반까지 200년 동안 적당한 내력이 없어 창건 시기 에 대한 의구심을 던지게 한다. 게다가 조선 초기 유물은 하나도 없으니 무학이 정녕 창건한 것 인지 아니면 15세기의 세조의 지원으로 지어진 것인지, 정릉이 복원된 이후에 지어진 것인지는 좀더 조사가 필요하다.
봉국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1669년 이후이다. 태종(太宗)에 의해 260년 가까이 속세 의 뇌리 속에 잊혀져 쑥대밭이 된 태조의 계비(繼妃) 신덕왕후(神德王后) 강씨의 정릉을 현종( 顯宗)의 명에 따라 1669년에 복원되었다. 이때 정자각(丁字閣)과 전례청(典禮廳) 등 정릉의 부 속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인근 경국사(慶國寺, ☞ 관련글 보러가기)와 이곳을 정릉의 원찰로 삼았는데, 이때 나라를 받든다는 착한 뜻에서 봉국사로 이름을 갈았다. 왕실에 더욱 잘보여 절 을 크게 꾸려보겠다는 야심에서 비롯된 소산일 것이다. 참고로 봉국사는 정릉과 같은 산자락에 안겨져 있으며, 정릉에서 바로 북쪽 300m 거리에 자리해 있어 원찰의 자격으로는 충분하다.
1882년 임오군란(壬午軍亂)이 터지자 성질이 난 군인들에 의해 절이 피해를 입었고, 1883년 한 계(漢溪), 덕운(德雲)이 중건했다. 1885년 3월에는 명부전에 지장탱을 조성했으며, 1898년에 운 담(雲潭), 영암(永庵), 취봉(翠峰) 등이 명부전을 중건하고 시왕도를 봉안했다. 1913년에 주지 종능(宗能)과 화주 월하봉연(月荷奉蓮)이 칠성각을 중건했고, 1938년 화주 금파( 錦坡)가 조인섭(趙寅燮)의 시주로 염불당을 새로 지었다. 1979년에는 주지 현근이 2층 크기의 일음루를 세워 범종루와 천왕문으로 삼았고, 1986년에 산신각을 중수하고 만월보전에 신중탱을 봉안했으며, 1991년에 천불전에 신중탱을 봉안했다. 1994년 3월에는 안심당을 새로 마련해 승려와 신도의 수행처로 활용하고 있고, 주지 선관과 신 도들이 합심해 경내에 나무 1,000여 그루와 온갖 꽃을 심어 도량의 분위기를 화사하게 살렸다. 그래서 경내에 제법 나무가 무성하여 산사의 티가 진하게 된 것이다.
일주문이 정릉로 도로변에 있어서 그렇지 일주문과 일음루를 지나면 산사의 내음이 오각을 간지 럽힌다. 정릉로와 내부순환도로가 절 앞에 있고 주택가와 가깝지만 숲에 짙게 둘러싸인 경내는 아늑하고 적막해 깊은 산골에 들어선 기분이다. 지금이야 속세의 기운이 절 밑까지 올라와 실감 이 덜하겠지만 옛날에는 완전 첩첩한 산주름 속이었다. 한양(서울) 도성에서 오려면 동소문<(東 小門), 혜화문(惠化門)>을 나와 아리랑고개를 넘어가야 했는데 워낙 외진 곳이라 호랑이의 등장 이 잦았다.
일주문은 북한산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경내 서쪽과 남쪽, 동쪽은 야산이라 정릉천이 있는 북쪽이 그나마 진입이 쉬웠다. 그래서 그곳에 문을 내고 속세와 왕래했으며, 그 길이 절과 속세를 잇는 유일한 통로이다. 경내는 일주문에서 각박한 오르막길을 200m 올라야 나오는데, 법 당(만월보전)은 지형상의 이유로 동쪽을 향하고 있고, 명부전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법당 뒤쪽 에는 높은 벼랑이 병풍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벼랑에 독성각과 산신각을 아슬아슬하게 걸쳐놓 았다. 이는 경내 확장이 용이하지 못해 그리 한 것이다. 이렇게 조촐한 경내에는 만월보전을 위시하여 명부전, 천불전, 산신각, 독성각, 납골당인 연화 원 등 약 10동의 건물이 터를 메우고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목조석가여래좌상, 석조여래 좌상, 석조지장3존상과 시왕상 및 권속일괄,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아미타괘불도(서울 지방유형 문화재 351호), 지장시왕도, 시왕도와 사자상 등 지방문화재 6점을 간직하고 있다. 이들은 2014 년 1월에 한꺼번에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받았다.
서울 도심과 무척이나 가깝고, 교통편도 양호해 접근성은 진짜 좋다. 몇 시간이나 발품을 팔아 야 되거나 수레도 겁을 집어먹는 깊은 산중의 산사에 가기가 여의치 않을 때 아주 잠깐의 발품 으로 언제든 안길 수 있는 산사(山寺)로 산사의 기운을 나름 진하게 간직하고 있어 속세의 기운 을 잠시 털어버리기에 좋다.
※ 정릉 봉국사 찾아가기 (2015년 5월 기준) * 지하철 4호선 길음역(3번 출구)에서 171, 1213, 7211번 시내버스를 타고 봉국사 하차 * 지하철 4호선 미아3거리역(1,6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 길음역(7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 에서 153번 시내버스 이용 * 지하철 6호선 고려대역 4번 출구에서 1213번, 6번 출구에서 7211번 시내버스 이용 * 지하철 3,6호선 연신내역(4번 출구)에서 7211번 시내버스 이용 * 경내에 주차장 있음 (주차장까지 진입 가능) * 소재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 637 (정릉로 202 ☎ 02-919-0211~2) * 봉국사 홈페이지(연화원 포함)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