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슬산 북쪽에 포근히 안긴 고찰, 비슬산 용연사(琵瑟山 龍淵寺) 팔공산(八公山)과 더불어 대구를 크게 보듬은 비슬산(琵瑟山)에는 유서 깊은 고찰(古刹)이 많은 데, 그중에서 북쪽 계곡에 안긴 용연사가 단연 갑(甲)이다. <유가사는 을(乙) 정도>
용연사는 후삼국시대의 한복판인 912년<신라 신덕왕(神德王) 원년> 보양국사(寶讓國師)가 창건 했다고 전한다. 보양은 청도에 운문사(雲門寺)를 세운 인물로 중원대륙으로 건너가 불법을 배우 고 귀국하는 길에 서해바다 용이 용궁(龍宮)으로 초청해 그를 대접했다. 용은 자신의 아들인 이목(璃目)을 딸려 그를 호위케 했는데, 마침 나라에는 가뭄이 극성이라 보 양이 이목을 시켜 비를 내리게 했다고 한다. 물론 믿거나 말거나 설화이지만 그 연유로 절 이름 에 용(龍)이 들어간 것이다. 상상의 동물인 용까지 내세우며 창건설화를 그럴싸하게 지어냈지만 정작 창건 이후 조선 초기까 지 이렇다 할 바퀴자국을 남기지 못했으며, 다만 극락전 앞에 고려 때 지어진 3층석탑이 있어 적어도 고려 때부터 절이 있었음을 살짝 귀띔해준다.
절의 사적(事績)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419년으로 그때 승려 천일(天日)이 망해가던 용 연사의 모습이 슬픈 마음이 솟구쳐 크게 중창을 했다고 한다. 허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으며, 1603년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인잠(印岑)과 탄옥(坦玉), 경천(敬天)에게 명해 다시 짓도록 했다. 이때 지은 건물이 대웅전(大雄殿)을 비롯해 5동이었고 거주하는 승려는 20여 명이었다고 한다.
1650년 어느 날 저녁, 난데없이 별똥이 떨어져 대웅전과 요사가 불에 탔으며, 이듬해 일언(一彦 )과 학신(學信)이 동상실(東上室)과 서상실(西上室)을 세웠다. 1653년에는 홍묵(弘黙)이 대웅전 을, 승안(勝安)이 명부전을 세웠고, 이듬해에 일주(一珠)가 만월루(滿月樓)를 세웠으며, 1661년 까지 함허당(含虛堂)과 관정료(灌頂寮), 관음전(觀音殿), 반상료(返常寮), 명월당(明月堂), 향 로전(香爐殿), 약사전(藥師殿), 두월료(斗月寮) 등을 지었다. 또한 계속 불사를 벌여나가 18세 기 초까지 사리각(舍利閣), 천왕문, 응진전, 영류당(詠流堂), 일주문, 명부전 등이 건립되어 무 려 200칸의 규모를 지닌 대가람을 이루게 되었다. 지금이야 팔공산 동화사(桐華寺)가 대구 지역 사찰의 으뜸이지만 그때는 오히려 동화사가 용연사의 말사(末寺)였다.
1673년에는 임진왜란 때 통도사(通度寺)에서 금강산(金剛山)으로 옮긴 부처의 사리를 다시 통도 사로 가져오면서 그중 1과를 용연사에 봉안하고 사리를 담을 사리탑(舍利塔)과 석조계단(石造戒 壇)을 만들었다. 그와 관련된 내용은 1676년(숙종 2년) 권해(權瑎, 1648-1723)가 쓴 '파사교주 석가여래부도비명(娑婆敎主釋迦如來浮屠碑銘)' 이란 비석에 기록되어 있다.
1708년 사리탑을 중수했고, 1715년 찬화(粲和)가 대웅전과 여러 건물을 중수하고 단청(丹靑)을 새롭게 입혔다. 중수를 마치자 1722년 홍문관(弘文館) 교리(狡吏)인 임수간에게 청해 중수비를 세웠는데, 그 중수비에 의하면 당시에는 부속 암자로 명적암과 은적암, 보리암과 법장암이 있었 으며, 절 계곡에 용문교과 천태교 등 5개의 돌다리가 있었다고 한다. 허나 1726년 1월 불이 나 서 대웅전과 다수 건물이 소실되었고, 1728년에 중건을 했는데, 이때 법당 이름이 대웅전에서 극락전으로 갈린 듯 싶다.
이렇게 대구 굴지의 사찰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용연사는 1911년 왜정(倭政)의 사찰령(寺刹令) 으로 동화사의 수반말사(首班末寺)가 되면서 처지가 서로 뒤바뀌고 만다. 이후 1934년 석가사리 탑을 수리하면서 탑 주위에 석주(石柱)를 둘렀으며, 그 이후 여러 건물을 지어 지금에 이른다.
법당인 극락전을 비롯하여 영산전과 삼성각, 안양루, 사명당 등 약 16~17동의 건물이 경내를 가 득 메우고 있으며, 소장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된 석조계단과 목조아미타여래3존좌상과 복장 유물 등 보물 2점과 3층석탑과 극락전 등 지방문화재 2점을 지녔다. 그리고 부속 암자로는 은적 암(隱寂庵)과 명적암(明寂庵), 광선암(廣仙庵)을 거느리고 있다.
대구의 남쪽 지붕인 비슬산 북쪽 자락에 포근히 둥지를 틀었고, 절을 둘러싼 숲이 삼삼하여 기 운 또한 청정하며, 티끌 없이 맑은 계곡이 경내를 가로지르며 청정한 기운을 돕는다. 시내와도 멀리감치 거리를 두고 있고, 산새의 지저귐과 바람의 소리가 잔잔하게 경내를 감싸며 산바람에 흥분한 풍경물고기가 그윽한 풍경소리를 베풀어 산사의 고즈넉함을 더해준다.
용연사에서 비슬산을 거쳐 유가사나 비슬산휴양림으로 내려갈 수 있으며, 정상까지는 4시간 정 도 걸린다.
※ 용연사 찾아가기 (2014년 2월 기준) * 대구지하철 1호선 대곡역(1번 출구)에서 달성2번, 달성5번 시내버스를 탄다. 달성2번은 지선 이 무지막지하게 많아서 반드시 용연사행(1일 8회)을 확인하고 타야 된다. 잘못탈 경우 엉뚱 한 곳으로 강제투어를 당할 수 있다. 달성5번은 용연사를 경유하여 현풍, 유가사(瑜伽寺)까지 다니며 1일 10회 다닌다. 또한 주말 과 휴일에는 600번 버스 일부가 '대곡역~용연사~비슬산휴양림~유가사' 구간을 1일 10회 운행 한다. * 승용차로 가는 경우 (경내 일주문에 주차장 있음, 주차비는 공짜) ① 구마고속도로 → 화원옥포나들목을 나와서 직진 → 반송리 → 용연사 ② 대구시내 → 화원 → 간경교에서 좌회전 (또는 화원에서 명곡지구를 거쳐 명곡로 경유) → 반송리 → 용연사
★ 용연사 관람정보 * 입장료 : 어른 1,500원 (20인 이상 단체 1,000원) / 청소년 1,200원 (단체 800원) / 어린이 800원 (단체 400원) * 용연사 점심공양은 맛이 제법 좋다. 공양시간은 12~13시이며, 음력 초하루나 석가탄신일, 기 타 절 행사가 있을 때는 연장될 수 있다. * 용연사 관광안내소에서 문화유산해설사의 용연사 이야기를 들어보자. 2월부터 11월까지 매일 10시부터 18시까지(겨울 17시) 근무하며, 설과 추석 연휴에는 쉰다. (근무 시간은 변동될 수 있음) * 소재지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면 반송리 882 (용연사길 260 ☎ 053-616-88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