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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도심(부암동) 기행 ~ 가을에 찾아간 북악산 백사골(백석동천 별서유적지)

도봉산 고양이 2005. 12. 4. 23:08


' 서울 부암동(付岩洞) 역사 기행 ~ 2005년 9월 16일'
'상편 ― 초가을에 찾아간 부암동 백석동천 별서 유적지(백사골)'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9월 16일, 남들은 '시골이다, 고향이다, 여행이다'해서 지방과 국외로 한참
빠져나가고 있을 그 시간, 초가을에 잠긴 백사골의 모습이 보고 싶어 또다시 북악산 백사골(백석동천)에
문을 두드렸다.

이번에는 저번과 달리 하림각 코스를 이용하지 않고 세검정 코스를 이용했는데 5월과 8월, 그 코스로
2번이나 내려 왔던 탓에 길을 찾는 데는 별로 어려움은 없었다.

세검정초교에서 세검정, 상명대 방면으로 가다보면 '28 홍지천길'이라는 골목길이 나온다.
그 골목길로 쭉 들어가서 '혜문사(慧門寺)'를 알리는 이정표를 따라 들어가면 그 절 입구에 이르는데
거기서 '현통사(玄通寺)'를 알리는 문구를 따라 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백사골의 입구인 현통사가 나온다.

* 원본을 보고자 할 경우(따로 익스플로어 창으로 보고자 할 경우) 여기를 클릭.
* 2005년 5월 14일에 갔던 '백석동천 별서유적지와 백사골의 봄'을 보고자 한다면 여기를 클릭
,
2005년
8월 20일에 갔던 '백석동천(백사골)의 여름'을 보고자 한다면 여기를 클릭하기
바라며
그 2개의 글과 내용이 다소 비슷할 수 있습니다.
* 사진을 올린 웹 사이트의 점검,기타 사유로 인해 아주 간혹가다 사진이 안뜰 수 있습니다.


♠ 초가을에 잠긴 백사골 ~~

▲보기만 해도 시원스런 ~ 현통사 옆 백사폭포
한달 전(8월 20일)에 비해 폭포의 물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담(潭)으로 떨어지는 폭포수 소리도 우렁찬 것이 시원스럽고,
이제서야 폭포다운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는 백사폭포,

▲가까이서 바라본 백사폭포와 바위들
하얀 피부의 인상적인 바위, 그리고 깨끗한 폭포수, 그들의 한결같은 강렬한 유혹,
그러나 나는 나의 갈 길이 있어 그들의 유혹을 매정하게 뿌리치며
백사골 안쪽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폭포 위에서 바라본 담(潭)
백사골의 옥계수(玉溪水)들이 저 곳에 다 모였다.
이제 슬슬 부모 품을 떠나는 새끼새처럼 넓은 세상으로 나갈 채비를 한다.

▲현통사 문짝에 새겨진 금강역사(金剛力士)
문을 들어서기가 왠지 겁이 난다, 칼로 후려칠 것 같아서..

▲백사골로 들어서는 길
그저 평범해 보이는 저 산길의 끝에는 전설의 옛 정원, 백석동천 별서 유적이 숨겨져 있다.


◀ 백사골 계곡
정말 마셔도 괜찮을 정도로 청명한 계류
(溪流), 간혹 가재, 올챙이 등의 수중
식구들도 모습을 드러내 보이며 계곡의
청정함을 자랑하는 곳.

계곡과 주변의 풍경이 거의 한 폭의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를 보는 듯
너무 아름답다.

▲계곡 건너편에서 바라본 백석동천 유적

▲연못 옆으로 흐르는 백사골의 옥계수(玉溪水)
저 계류를 연못으로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연못의 예전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텐데,
역시 그림의 떡인가?

연못을 애써 무시하며 자기 갈 길만 서둘러 재촉하는 무정한 백사골의 계류들..


♠ 서울 도심 속의 무릉도원(武陵桃源) ~ 북악산 백석동천 별서 유적지



서울도성의 서북문에 해당되는 자하문(紫霞門)을 넘어서면 기가 막힌 수려한 경치가 눈 앞에 펼쳐진다.
자하문 너머로 부암동, 홍지동, 신영동 지역은 북악산과 인왕산, 북한산 자락에 안겨 있는 동네로
지금은 비록 도시화가 많이 되었지만 그래도 산림(山林)등의 녹지(綠地) 비율이 서울 지역에서는 매우
높은 편으로 인왕산, 북악산 등지에서 흘러내려오는 백사골 등의 깨끗한 계곡도 아직까지 볼 수가 있다.

예로부터 서울 부근 경승지로 이름이 높았던 이들 지역은 홍지천(弘智川)
―지금은 물이 거의 폐수 급으로
전락되었으나 예전에는 정말 깨끗하여 물놀이 장소로 이름이 높았다―
을 중심으로 옛 사람들의 풍류(風流)
유적이 하나 둘, 남아 있으니, 백사골에 숨어 있는 이 백석동천 별서 유적 역시 그 중에 하나라 할 수가
있다.
이처럼 자하문 너머 북악산, 인왕산 자락의 부암동, 홍지동 지역은 고위직을 지낸 양반사대부와 조선황족
들의 별서(別墅, 별장)및 피서(避暑), 유흥을 즐기는 장소 등으로 매우 인기가 높았다.

세종(世宗)의 3자(子)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의 별장, 무계정사(武溪精舍)
―지금은 '武溪洞'이라 쓰인
각자만 남아 있다―
가 부암동에 있었고, 안동김씨의 별장이었다가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중간에
가로챈 석파정(石坡亭), 휴식과 유흥의 장소로 만들어진 세검정(洗劍亭), 연산군이 사냥과 여가를 즐기기
위해 만들었다는 탕춘대(蕩春臺), 그리고 바로 이 곳 백사골 유적까지.

이 백석동천 유적은 18세기에 조성되었던 어느 양반사대부의 별서(別墅)로 누구의 별장인지, 별서의
이름이 도대체 무엇인지는 현재로써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태이다.
다만 백석동천을 포함한 이쪽 계곡 일대를 '백사골'이라 부르는데 그것은 16세기의 활약했던 이항복
(李恒福)의 별장이 이 곳에 있었다고 하여 그의 호인 백사(白沙)를 따서 백사골이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예전 이항복의 별서가 이 곳에 있었다가 18세기 이후에 그의 후손 혹은 다른 사대부가 이 곳에
들어와 새로운 별서를 세운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 유적은 백사골 자락에 산천이 수려한 곳에 자리해 있는데, 현재는 사랑채, 정자 등의 건물터와 연못,
각자(刻字) 2개만이 남아 있을 뿐이며, 북악산 깊숙한 곳에 자리해 있어 정말 신선의 거처가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로 이 곳을 보는 순간 입이 딱 벌어져서는 좀처럼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서울 도심에 이런
무릉도원(武陵桃源)같은 곳이 있었다니, 나는 그만 그 곳에흠뻑 빠져들고 말았지. 그래서 그 곳을 또
찾게 되었던 것이다. 횟수로는 벌써 3번 째..

이 곳은 그동안 비지정문화재의 서러움을 간직하며 그렇게 숨어 있었으나 2005년에 이르러 사적 462호
특진되어 그 존재가 약간이나마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인지도가 많이 떨어지며 관계당국의
직무유기와 무관심은 지금도 어련하여 그럴싸한안내문이나 이정표도 없는 실정이다.


백석동천 별서 유적지 찾아가기
*부암동 하림각 정류장 → 신도슈퍼 → '44번 백석동길'로 쭈욱 올라간다 → 백사골(백석동천)
*세검정초교 → '44번 홍지천길'로 쭈욱 올라간다 → 혜문사 입구 → 현통사 → 백사골(백석동천)

♠ 세검정초교(세검정) 교통편
* 경복궁역(3호선)에서 서울시내버스 0212번(이북5도청∼옥수동), 1020번(정릉,청수장∼종로1가),
1711번(국민대학교∼합정동), 7022번(구산동∼서울역)을 이용, 세검정초교(신영상가) 하차
* 신촌(2호선)역에서 서울시내버스 170번(우이동∼서강대), 110번(정릉,청수장∼이태원) 이용,
세검정초교(신영상가) 하차

▲ 아~~ 세월무상이로다~~ 돌기둥과 돌계단만 남아버린 정자(亭子)
정자를 아무 내색 없이 떠받치고 있던 돌기둥들, 그러나 지금은 저렇게
허전한 대머리가 되어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나의 마음으로 그 허전함을 달래주고 싶구나.

▲ 8월에 비해 연못의 물이 제법 늘어나 그새 하나의 거대한 연못을 이루고 있었다.
겉으로는 죽어 있던 연못이 자연의 위대한 힘에 의하여 다시 예전에 가까운 모습으로
되살아났다.
저 정도면 뱃놀이를 즐겨도 좀 무방하겠지. 잡초가 좀 많기는 해도..

▲ 2개의 돌기둥 사이로 바라본 연못
연못 속에 비친 물푸레나무의 모습..
나무들은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매무새를 다듬는다.

▲ 언덕의 토사가 쓸려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랑방이 있던 언덕 아래에
저렇게 축대를 쌓았다.

▲ 주춧돌만 남은 사랑채의 서쪽 부분
주춧돌의 높이가 낮은 동쪽 부분과 달리 돌의 높이가 3배 정도 높다.
이 곳에 사랑방 혹은 연회를 위한 또 다른 방이 있었을 것이다.
이 곳은 육각형 정자를 비롯한 연못 일대가 한눈에 바라 보이는데
창을 열며 연못을 바라봤을 별서 주인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본다.

연못을 바라보며 시 한수를 지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인생을 한번 되새겨 보았을까?
그는 이 곳에서 자신의 취미생활을 즐겼을 것이고 종종 벗이나 가족들과 함께
차 한잔, 혹은 술 한잔의 여유를 즐겼을 것이며 어둑어둑한 저녁에는
연못에 뜬 달을 바라보면서 경포대(鏡浦臺)의 달놀이를 따라 했을 것이다.

▲ 사랑방에서 바라본 연못
처량함과 공허함으로 가득한 연못. 그러나 저 연못에도 위대한 자연의 생명력이 싹트고 있고,
또한 자라나고 있다. 게다가 빗물이 모여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연못티를
내고 있으며 잡초로 가득한 연못의 모습도 나름대로 초록의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솔직히 맨바닥 보다는 낫다)
아직 자신(연못)의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 사랑방에서 바라본 연못의 서남쪽 부분
이제 슬슬 10월 단풍철을 준비하고 있는 연못 주변 나무들

▲ 연못 북쪽에서 바라본 연못의 서남쪽 부분

▲ 가까이서 바라본 연못

▲ 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고 있는 월암(月巖) 각자
연못을 나와 현통사로 내려가기 바로 직전에, 서쪽 언덕을 바라보면
언덕 정상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바위들을 볼 수가 있는데 그 바위에 바로
달의 바위, 즉 월암이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오묘하게 숨겨져 있다.

이 각자(刻字)는 별서 주인 혹은 이 곳을 방문한 문인(文人) 들이 새겼을 것이며
별서 주변이 나무들로 울창하여 달을 제대로 구경할 수가 없어,
이 곳으로 올라와 달 구경을 했던 모양이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어두운 밤에 찾아와 이 곳에서 달놀이를 즐기고 싶다.

▲ 월암(月巖)에서 바라본 별서유적
나무들로 울창하여 연못, 사랑방에서는 이 곳이 잘 보이지 않는다.


 

▲ 이끼의 보금자리가 된 백사골 계곡의 어느 바위
이끼가 가득히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여기가 그만큼 깨끗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저렇게 무성한 이끼는 보기가 힘든데, 백사골은 마치 서울 속의 딴 세상처럼
청정함과 순수함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 백사골을 내려가며
3번째로 찾은 백사골, 이제 어느덧 떠나야 될 시간이 다가온 것 같다.
이 곳에서 단 몇 일이라도 신선을 꿈꾸며 머물고 싶으나 현실은 그러지를 못한다.
다음을 기약하며 한 폭의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와 같은 그 곳을 나왔다.

▲ 가까이서 바라본 백사골 계곡물
거의 1급수에 가까운 깨끗한 백사골,
계곡물은 뭐 그리 기분이 좋은지 한결같이
졸졸졸 노래를 부르며 아래로 흘러간다.

▲ 백사골과 현통사 방면 등산로

 

▲ 현통사로 내려가는 소나무길
이렇게 하여 백석동천(백사골) 3차 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홍지동(상명대입구) 4거리에 있는 대원군 별장을 찾아가던 중, 서인(西人)들이 반역을 도모했던
세검정(洗劍亭)을 잠시 들렸는데, 세검정은 8월 20일
백석동천 여름 답사에서 이미 다루었으며
여기서는 따로 다루지 않고 대원군 별장부터 하편으로 넘어간다.



* 답사,촬영 일시 - 2005년 9월 16일 오후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9월 25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9월 30일
* 상편 숙성기간 ~ 2005년 10월 1일 ~ 12월 2일
* 공개일 - 2005년 12월 3일부터
* 하편 공개일 - 2005년 12월 4일 이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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