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내 답사 (경주읍성, 경주관아, 경주신사)
' 경주 ~ 부산 역사 기행 (2005년 11월 19일)'
'상편 ― 경주역전 3층석탑 ~ 경주읍성 ~ 경주관아터 ~ 경주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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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상, 중상, 중하, 하 4편으로 나누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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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던 11월 중순, 부산 해운대에서는 APEC 21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그래서 APEC이 열린 부산의 분위기도 살펴보고, 2년 이상 발걸음을 하지 못했던 옛 신라의 고도(古都) 경주
(慶州)도 보고 싶고 해서, APEC 정상회의의 마지막 날인 11월 19일 경주와 부산 지역을 찾았다.
11월 19일 새벽 0시 6분, 천안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심야 완행 열차에 몸을 의지하며 동남쪽으로 내려가는데
대전역에 이르러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기관차 고장으로 인해 그 것을 교체하느라 무려 30분을 정차했다.
그 여파로 부산까지 30분 이상의 지연이 도미노처럼 이어졌는데. 열차의 고질적인 지연 행위는 뭐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목적지인 동대구역에는 정시보다 무려 32분이나 늦은 새벽 3시 18분에 겨우 도착했다.
많은 사람들은 열차 지연에 대해 적지 않은 불만을 드러내 보였지만, 나는 지연에 대해 그리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지연시간 50분을 채우지 못해 소정의 지연료를 받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쉬웠지. 어차피 제 시간에
도착해보았자. 그 새벽 시간에 할 것도 없고, 그 상태에서 5시 20분까지 시간을 때워야 되니 이렇게 지연한
덕에 따뜻한 열차 안에서 30분이나 더 잘 수 있고, 나로써는 매우 고마운 일이 아니던가.?
열차에서 내리니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아직 11월 중순이건만 겨울의 제국주의(帝國主義)는 벌써부터 그
맹위를 떨치고 있었는데, 그 날은 11월 들어서 제일로 추웠던 날로 기억이 된다.
별로 따뜻하지도 않은 동대구역사(驛舍) 내로 들어가 책을 보면서 억지로 120분의 시간을 때웠는데, 시간도
나의 그런 마음을 헤아려 준 듯, 유수(流水)처럼 잘만 흘러간다.
4시 30분이 넘자, 오랜 만에 동대구역의 명물인 냄비우동을 먹고자 밖으로 나왔으나. 왠걸 우동집이 없다.
그래서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역사(驛舍) 안쪽으로 옮겼다고 하여, 찾아가 보았으나 나를 반기는 것은 철옹성
처럼 굳게 닫혀진 우동집 뿐...
예전에는 새벽 3시부터 문을 열더니만, 그 날 따라 5시가 넘도록 좀처럼 문이 열리지를 않는다.
그래서 우동을 먹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과감히 접고 꿩 대신 닭으로 옆에 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이른 아침을
때운다.
새벽 5시, 표 사는 곳에서 경주까지 통근형 열차표를 구입(2000원), 냉기(冷氣)가 가득한 승강장으로 내려간다.
경주를 거쳐 포항으로 가는 통근형 열차를 타기 위해서..
이 열차는 고속전철이 생기기 이전에는 5시 15분에 출발했는데, 주로 무박 코스로 경주에 갔을 때 자주 이용
하던 열차였다.
5시 20분이 되자 온돌방처럼 따뜻한 통근형 완행열차는 문을 닫고 동대구역을 출발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존의 동촌, 반야월 방면으로 안가고 경산 쪽으로 가는 것이 아닌가? 예전부터 대구선 이설
공사를 한다는 말은 들었으나, 벌써 그 공사가 끝난 모양이다. 경주역에서 확인해보니 11월 15일에 이설 공사가
완료되어, 기존의 동촌, 반야월 코스는 없어지고 고모, 금강(안심 남쪽 동네)쪽으로 노선이 변경되었다.
하양역을 지나서부터 슬슬 잠이 나를 희롱한다. 나는 그 희롱에 한없이 빠져들고.. 희롱에서 깨어보니 어느덧
열차는 형산강(兄山江)을 건너고 있었다. 서라벌의 찬란한 여명(黎明)을 맞이하면서..
잠시 뒤 6시 40분, 서라벌 경주의 관문 경주역에 도착했다.
거의 31개월 만에 와보는 경주, 그러나 날씨가 너무 춥다. 그 동안 자신에게 발걸음도 하지 않은 나에 대한
강한 유감의 표현일까? 나름대로 발걸음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변명을 해보았으나 역시 통하지는 않는다.
한 때는 한,두달에 한 번 꼴로 오던 곳이었는데, 그 동안 내가 너무 무정했던 것 같다.
♠ 경주역전 광장에 세워진 황오동(皇吾洞) 3층석탑 ~
▲ 경주역에서 아침을 맞이하며 | |
▲ 경주 역전에 세워진 황오동(皇吾洞) 3층석탑 ~ 경북 지방문화재자료 8호 | |
![]() | ◀ 세월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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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층석탑 서쪽에 있는 석탑 부재(部材)와 비석의 지붕돌 |
이렇게 간단하게 황오동 3층석탑을 둘러보고 시내로 들어갔다.
따뜻한 남쪽나라를 기대하고 왔건만, 겨울의 제국군은 나의 그런 희망을 무참하게 짓밟았다.
날이 얼마나 매섭던지, 손을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정도.. 잠시만 밖으로 내밀어도 금세 차가운
얼음 덩어리가 되버리면서 사진을 찍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아침이건만 역전 건너 시장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었다. 인도(人道)도
모잘라서 차로의 1차선까지 점유할 정도로 사람들과 장꺼리로 넘쳐나고, 그러인해 시장의 분위기는 정말 겨울의
제국주의를 녹여버릴 정도로 그 열기는 대단했다.
시장을 지나면서 문득 '경주읍성'이 생각이 난다. 그래서 오랜 만에 그를 보기 위해 동부동 주택가 쪽으로
들어갔다.
♠ 민가의 담장으로 전락해 버린 ~ 옛 경주읍성(慶州邑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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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읍성(慶州邑城) - 사적 96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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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읍성을 보수하면서 나온 석재들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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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읍성과 고목(古木) |
경주읍성은 예전에도 많이 와봤으므로 자세히는 살피지 않았다. 그냥 그에게 안부인사 정도 하는 수준에서
볼일를 마치고, 노서동 ~ 노동동 고분군을 찾기 위해 다시 서쪽으로 들어간다.
경주에 오면 연례 행사로 꼭 찾던 곳이 바로 노서동 ~ 노동동 고분군인데, 2년 만에 찾아와서 그런지 도저히
어디에 붙어 있는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이 쪽이던가? 저 쪽이던가? 나의 길눈도 꽤 밝은 편인데, 이젠 그것도
아닌가 보다.. 노서동 ~ 노동동 고분군은 남쪽 화랑로 건너편에 있는데 이건 엉뚱한 곳에서 우물을 찾고 있으니.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
경주읍성에서 서쪽으로 약 5분 정도 걸어가니 담장으로 둘러쌓인 기와집이 보인다. 처음에는 그곳이 경주김씨의
사당(祠堂)이려니 생각했으나, 그에게 다가가보니 그 곳은 근래에 복원된 경주관아(官衙)이다.
♠ 옛 경주 고을의 행정, 사법, 치안의 중심지 ~ 경주관아 유적 / 동부동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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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관아터 안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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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수막이 걸린 경주관아 정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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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동부동 은행나무 - 경북 지방기념물 66호 |
♠ 서라벌 경주에 버젓히 남아있는 옥의 티 ~ 경주 신사(神社)
노서동 ~ 노동동 고분군을 만나기 위해 남쪽으로 가야 함에도, 엉뚱하게 서쪽으로 발걸음을 하던 중, 약간
눈에 거슬리는 모양의 집 1채를 만나게 되었다.
나오라는 고분군은 죽어라 안나오고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엉뚱한 것들만 계속해서 나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건물의 모습을 가만히 보니, 바다 건너 왜열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건축 양식인데, 이건 혹시??? 그렇다.
그 집은 여러 번 언론에도 소개된 바가 있던 바로 경주 신사(神社)이다. 옛 신라의 천년고도(千年古都) 한복판에
옥의 티처럼 버젓히 살아있는 왜의 신사.. 순간 나도 모르게 경악이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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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신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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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늦가을 분위기에 빠진 경주 신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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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신사의 동쪽 측면(側面) | |
![]() | ◀ 경주 신사의 서쪽 측면(側面) |
~~ 아쉽지만 상편은 여기서 끝. ~~
* 답사, 촬영 일시 - 2005년 11월 19일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5년 12월 20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6년 1월 2일
* 상편 숙성기간 - 2006년 1월 6일 ~ 1월 26일
* 공개일 - 2006년 1월 26일부터
* 2006년 1월 27일, 상편을 상, 중상편으로 분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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