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권 사진,답사기
경남 내륙 제일의 경승지 ~ 거창 수승대
도봉산 고양이
2011. 7. 21. 16:33
' 거창 제일의 명승지, 수승대(搜勝臺) '

▲ 수승대의 상징, 귀연암
부산 선배 집에서 하루를 머물고 다음날 아침, 다음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한다. 만나면 언젠가는 작별하는 이른바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원칙은 어느 누구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한 지붕 아래 같이 살아온 가족과 숙성이 진한 죽마고우(竹馬故友)도 언젠가는 그렇게 될 것이라 는 생각에 사는 것이 참 부질없는 것 같다.
부산(釜山)의 북쪽 관문인 노포동으로 넘어와 바로 서울로 올라갈까 하다가 그냥 가면 무척 허전 할 것 같아서 어디로 갈까 머리를 굴린다. 아는 곳이 많다고는 하지만 딱히 정처를 찾지 못해 방 황하다가 우선 대구로 넘어가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대구로 가는 고속버스로 1시간 10분 만 에 동대구에 이른다.
대구에 이르니 옥포에 있는 용연사(龍淵寺)가 생각이 난다.그곳에 숨어들 요량으로 지하철로 대 곡역까지 갔으나 정작 절로 들어가는 버스 시간이 맞지가 않아 발이 단단히 묶이고 말았다. 아무 래도 인연이 아닌 듯 싶어 대구를 버리고 고령으로 넘어갔다. 하지만 고령에서도 두 다리를 부릴 마땅한 안식처를 찾지 못했다.간만에 지산동고분군을 찾아갈까도 했으나 감히 무더위에 맞서 오 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고령(高靈) 바로 옆 동네이자 92년 이래 오랫동안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거창으로 시야를 돌렸다.
고령터미널에서 거창(居昌)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기다리는데, 버스가 손님이 없다고 여겼는지 속 된 말로 그냥 쌩까려는 것을 간신히 붙잡아서 잡아탔다. 40분을 달려 도착한 거창에선 거열산성( 居烈山城) 일대와 수승대, 두 곳을 두고 무게를 재다가 수승대의 무게가 무거워 그곳으로 낙찰이 되었다. 거창읍에서 20~30분 간격으로 있는 위천 방면 군내버스를 타고 다시 30여 분을 달려 수승대에 이 른다. 시골의 노령화가 심각함을 보여주듯, 버스 안은 일부를 빼고는 죄다 노공(老公)들이다.
수승대로 들어서려고 하니 주차장 길목에 주차료와 입장료를 받는 매표소가 나타난다. 마침 매표 소를 지키던 공익은 오늘은 평일이니 그냥 들어가시라고 호의를 건넨다. 아주~ 기분 좋게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주차장과 황산마을이 나타난다. 마을은 대부분 민박까지 겸하고 있는데, 평일이라 다들 한가하기만 하다. 마을을 벗어나니 수승대를 빚으며 보다 넓은 세상으로 흐르는 계곡, 위천 천(渭川川)이 나온다. 여기서 계곡을 건너 옛날 이곳을 찾은 선비처럼 여유롭게 수승대를 둘러본 다. 계곡 서쪽에 우거진 송림(松林)은 거의 원시림을 방불케하며,눈썰매장과 수영장, 보트장 등 몇 가지 위락시설이 자리해 있다. |
 ▲ 위천천에 다리를 담군 현수교 수승대의 남해대교일까? 남해대교와 무척이나 닮았다. 휴일에는 사진을 찍은 보(洑)에서 다리까지 보트장으로 사용된다.
 ▲ 황산마을과 아름드리 은행나무 - 경남 보호수 12-00-38호 가운데 솟아난 은행나무는 수령이 500년으로 높이가 32m, 둘레가 6m에 이른다.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500년 세월을 양분으로 삼아 저렇게 어엿하게 성장했다. 이제는 나무가 은혜를 갚을 차례라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제공하며 정자나무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 계곡 너머로 보이는 황산마을(민박촌) 둑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나무들 사이로 집들이 간간히 고개를 내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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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승대로 들어서다
 ▲ 송림 속에 숨겨진 산책로를 거닐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솔내음의 달콤함에 취할 지경이다.
 ▲▼ 송림 산책로에서 바라본 수승대 계곡

 ▲ 계곡 너머로 수승대의 상징인 귀연암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수승대 계곡, 계곡 모래밭에 돗자리를 깔고 한숨 청하며, 속세에 찌든 두 다리를 물에 담구고 물장구도 치고 싶은 꿈속의 명승지이다. |
 | ◀ 하늘을 떠 다니던 구름도 수승대의 절경에 반했는지 잠시 가던 길을 멈췄다. |
 ▲ 수승대를 바라보며 서 있는 요수정(樂水亭) - 경남 지방유형문화재 4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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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의 물결이 넘치는 산책로를 2분 정도 거닐다보면 단촐한 모습의 기와집, 요수정이 나그네를 맞는다. 이 집은 수승대에 터전을 잡은 요수 신권(樂水 愼權) 선생이 1542년에 별장으로 지은 것으로 풍 류를 즐기고 제자를 기르던 곳이다. 처음에는 구연재와 척수대 사이에 있었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파괴된 것을 다시 세웠으나 또다시 수해로 떠내려 간 것을 1805년 후손(거창신씨)들이 지금 의 자리로 옮긴 것이다. 정자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가득하여 운치가 가득 깃들여져 있으며, 따로 부속건물이나 담을 두 르지 않고 홀로 세워진 것이 특징이다. |
 ▲ 요수정의 앞쪽
 ▲ 요수정에 걸려있는 현액(現額)
▲ 계곡 건너 귀연암에서 바라본 요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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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을 벗고 정자로 들어선다. 이제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아무도 살지 않는 빈껍데기 집이 지만 후손들의 관리가 지극정성인 듯, 거의 깨끗하고 건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기둥에 기 대어 서니 수승대의 절경이 두 눈에 거침없이 밀려와 눈이 그야말로 호강을 누린다. 자연과 동 화되어 살고자 했던 선비들의 마음가짐이 돋보이는 곳으로 자연에 크게 반(反)하지 않고 그 일 부로 자리한 요수정의 모습은 정말로 탐이 난다. 여건이 된다면 기꺼이 사들여 내 집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지나치기 아쉬운 요수정을 억지로 뒤로하며 야트막한 고갯길을 넘으면 수승대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귀연암이 나온다. 여기서 수승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
♠ 조물주가 오랜 세월 그려놓은 한 폭의 수채화, 선비들의 소풍 장소로 이름 높던 거창 수승대(搜勝臺) ~ 명승 53호
 |
소백산맥이 지나가는 거창 고을에는 수많은 명승지가 아낌없이 서려있다. 그중에서 이번에 찾은 수승대는 가히 으뜸이라 할 만하다. 선비들이 경상도 제일의 동천(洞天)으로 치켜세운 안의삼동 (安義三洞)의 하나이자 원학동 계곡 한가운데에 박힌 수승대는 빼어난 경관으로 예로부터 많은 선비와 문인(文人)들을 감동시킨 곳이다.
이곳은 백제(百濟)와 신라(新羅)가 서로 국경을 맞댄 곳으로 6세기 이후, 백제가 신라로 보낸 사신을 전별하던 곳이라 전한다. 동아시아 최대의 해양대국으로 번영을 누린 백제, 허나 554년 관산성(管山城, 충북 옥천) 참패 이후 졸지에 딱한 처지가 되버린다. 얼마나 우울했던지 신라가 우리 사신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을까 염려되어 이곳에서 전별회를 했다고 한다. 그들은 곡차 한 잔 걸치며 서로 부둥켜 안고 울지는 않았을까? '부디 무사히 잘 갔다 오시오','내가 잘못되면 내 식솔을 부탁하오' 하면서 하염없이 많은 눈물 과 한탄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래서 근심걱정으로 사신을 보낸다는 뜻에서 수송대(愁送臺)란 이 름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허나 속세의 근심을 잊을 만큼 빼어난 곳이란 의미로 불교와 연관 시키기도 한다.
조선 중종 시절에 이르러 요수 신권(樂水 愼權)이 이곳에 둥지를 트면서 구연서당(龜淵書堂)을 지어 후학을 길렀고, 수송대의 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여 암구대(岩龜臺)라 하고 이 일대를 구 연동(龜淵洞)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1543년(중종 37년)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안의현(함양군 안의면) 삼동에 놀러왔다가 인근 마리면 영승리에 머물던 중, 수송대의 이름을 듣고 찾아가려고 했다. 허나 조정일로 급히 상경하게 되면서 이곳에 오진 못하고, 대신 신권에게 이름이 별로라 며 음이 비슷한 수승대(搜勝臺)로 고칠 것을 권하는 사율시(四律詩)를 보냈다. 이에 감동한 신 권은 바위에 수승대를 새김으로써 그때부터 수승대가 되었다. 그 이후 이곳은 선비들의 소풍지로 널리 명성을 날렸으며 선비들의 산수유람 문화가 담긴 명승 지로 2008년 문화재청 지정 명승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수승대는 귀연암을 중심으로 요수정과 관수루, 귀연서원 등의 옛 유적이 남아있으며, 소나무숲 과 계곡, 바위가 한데 어울린 경승지로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다. 또한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썰 매장, 야영장, 수영장, 야외극장을 설치했으며, 마을에는 식당과 민박집이 많다. 자연과 동화되어 살고자 했던 선비들의 마음가짐이 담긴 자연 명승지로 잠시 속세의 삶을 잊고 이곳에 발을 들여 머무는 것은 어떨까? 요수정 기둥에 기대어 바라본 수승대, 그리고 거북이를 닮은 귀연암의 자태는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이다.
※ 수승대 찾아가기 (2011년 7월 기준) * 동서울터미널에서 수승대행 직행버스가 1일 1회(15시 40분) 떠난다. * 동서울터미널,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거창 행 직행버스가 1~2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 부산서부터미널, 대구서부정류장, 대전동부터미널, 전주, 김천, 남원에서 거창행 직행버스가 운행한다. * 거창터미널을 나오면 강변도로가 나온다. 왼쪽으로 8분 정도 걸으면 읍내로 통하는 중앙교가 나오는데, 그 다리를 건너 3~4분 정도 가면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거기서 수승대 방면 군내버 스가 20~60분 간격으로 떠난다. 버스표는 정류장에 있는 가게에서 구입 (막차는 19시 30분)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대전~통영고속도로 → 지곡나들목을 나와 안의 방면 → 안의 → 거창 방면 3번국도 → 마리 에서 좌회전 → 위천 → 수승대 ② 88올림픽고속도로 → 거창나들목 → 거창읍 → 마리에서 우회전 → 위천 → 수승대
♠ 수승대 관람정보 * 입장료(여름 7~8월에만 징수함) - 어른 1,000원(단체 900원), 청소년/군인 700원(단체 600원) , 어린이 500원(단체 400원) <단체는 30인 이상> * 주차료 - 소형차 당일 3,000원, 대형차 당일 5,000원 (1박 이상은 배를 받음) * 입장시간은 9시 ~ 18시 (겨울에는 9시 ~ 17시) * 소재지 -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 890일대 (수승대 관리사무소 ☎ 055-940-8530,32) * 수승대 홈페이지는 아래 사진을 클릭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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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승대의 상징 ~ 귀연암(龜淵岩)
 |
귀연암은 거북이를 닮은 바위로 거북바위라고도 한다. 높이는 약 10m, 둘레만 해도 100m는 족히 넘어보이는 커다란 바위로 푸른 소나무와 계곡이 만든 푸른 소(沼), 주변에 널린 하얀 피부의 잘생긴 암반들이 한데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절벽을 이룬 바위 면에는 퇴계 선생이 신권에게 수승대로 이름을 바꿀 것을 권하는 시를 비롯하 여 이곳을 찾은 문인들의 시귀(詩句)로 가득하여 내가 한 글자 남길 공간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만큼 이곳의 절경이 지금은 가고 없는 그들을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허나 그들 의 글씨가 바위면에 너무 빼곡하여 조금은 흉물스럽게 보이기도 한다. 적당하면 좋을 것을 너무 지나쳐서 바위의 피부를 좀 괴롭힌 꼴이 된 것이다.
바위 정상에는 소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바위 주변은 하얀 암반들이 여기저기 누워 귀연암을 더 욱 돋보이게 만든다. 그야말로 돗자리 깔고 한숨 청하고 싶은 그런 곳이다. 평일이라 사람이 거 의 없는 이곳은 암반 사이로 흐르는 계곡물이 졸졸졸~♪ 적막감을 깨트리곤 부리나케 하류로 줄 행랑 칠 뿐이다. |
 ▲ 계곡 사이에 걸린 귀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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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에서 흘러온 위천은 귀연암에서 그 폭이 2m 남짓으로 현저히 줄어든다. 바로 그곳에 귀연 교란 돌다리가 유연하게 걸쳐져 있다. 계곡의 폭이 협소하고 돌이 많아 두 발로 충분히 건널 수 있으나, 건너기 버겨운 약자들을 배려하여 다리를 놓은 것이다. 예전에는 시멘트 다리가 흉물처 럼 있었으나 지금은 하얀 돌다리로 탈바꿈하여 주변 암반과 조화를 꾀했다. |
 ▲ 거의 난공불락의 철옹성과 같은 귀연암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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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연암 뒤쪽 부분에도 낙서가 가득하다. 바위 남쪽은 모래벌판과 자갈밭이 이어져 있으며, 바위 로 오르는 길이 나 있어 조심스레 오르면 된다. 남쪽을 제외한 나머지는 칼로 다듬은 듯한 절벽 이라 오르기도 내리기도 불가능하다. 바위 정상에는 옥의 티처럼 콘크리트로 발라진 대(臺)가 있으며, 바위 서쪽면에는 신종선(慎宗 先)이란 커다란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다. 아마도 신권의 후손으로 이곳에 정착한 신종선이란 사 람이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것으로 여겨진다. |
▲ 귀연암 꼭대기 서쪽 면에 큼지막하게 새겨진 바위글씨 ~ 신종선(慎宗先) |
▲ 귀연암 꼭대기
▲ 귀연암 꼭대기에서 바라본 수승대 북쪽 |
귀연암의 등껍데기 정상에 해당되는 콘크리트로 된 대(臺)에는 몇 개의 커다란 돌이 벤치처럼 누워있다. 이곳에 올라서면 수승대 일대가 두 눈에 쏙 바라보여 조망도 시원하다. 이곳은 좀 더 높은 곳에 올라 수승대의 풍광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던 선비들의 놀이터였던 모양이다. 돌에 걸터 앉아 곡차 1잔 마시며 계곡의 시원한 바람을 안주 삼아 시를 읊조리고, 밤에는 밤대로 달 놀이를 즐기며 곡차 1잔 걸치던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
♠ 수승대 한쪽에 마련된 귀연서원(龜淵書院)
 ▲ 귀연서원 사당 |
귀연암 부근에는 고색이 깃들여진 귀연서원이 자리해 있다. 이곳은 요수 신권을 비롯하여 성팽 년(成彭年), 신수이(慎守彛)를 배향한 서원으로 1694년에 세워졌다. 서원의 이름은 신권이 지은 귀연서원에서 따왔다. 지금의 것은 흥선대원군 때 철거된 것을 근대에 다시 지은 것으로 서원 끝에는 그들을 모신 사당이 있으며, 가운데에 교육을 하던 강당이 자리한 이른바 전학후묘(前學 後廟)의 형태이다. |
 ▲ 귀연서원 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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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귀연서원 우측 담장 너머에 자리한 효자비와 열녀(烈女)비 | ▲ 귀연서원 뜰 좌측 가득메운 비석 4기 |
가을이 내려앉은 서원 강당 앞뜰 좌측에는 비석 4기가 키순서대로 서 있다. 제일 좌측에 산고수 장(山高水長)이라 쓰인 비석이 제일 높고 덩치가 큰데, 산고수장은 산이 높고 물이 길다는 뜻으 로 거창고을을 그야말로 한 마디로 표현한 단어이다. 비석들은 다들 귀연암을 닮은 거북이(귀부 )를 갖추고 있는데, 모두 근래에 세워진 것이다. |
 ▲ 귀연서원의 정문인 관수루(觀水樓) - 경남 지방유형문화재 42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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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연서원에서 제일 눈여겨 볼 것은 서원의 정문인 관수루이다. 얼핏보면 평범한 누각처럼 보이 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나름대로 개성이 넘치는 문루이다. 이 문루는 1740년에 지어진 것으로 정 면 3칸, 측면 2탄의 누각이다. 커다란 바위 사이에 터를 닦아 지은 것으로 따로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두지 않았다. 그 이유는 좌우로 경사가 낮은 바위가 있어 그 바위를 딛고 누각으로 올라 서면 되기 때문이다. 이 바위는 담장의 역할도 겸한다. |
 ▲ 자연과 절묘히 조화를 이룬 관수루의 뒷모습 ~ 누각 좌우에 비스듬히 누운 자연바위는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 역할을 한다.
▲ 관수루 우측에 커다란 바위와 근래 세운 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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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을 받치는 1층 기둥은 곧게 서지 못하고 다소 꼬부라져 있다. 바위를 타고 누각으로 오르는 것도 특이하지만 꼬부랑 기둥은 더욱 눈길을 잡아맨다. 바위를 손질하거나 옮기지 않고 있는 그 대로의 모습을 유지하며 그 사이에 문루를 지은 옛 사람들의 지혜가 담겨져 있다 하겠다. |
 ▲ 관수루 바위에 새겨진 바위글씨 요수신선생 ? 수동(樂水慎先生 ? 修洞)이라 쓰여있다. 여기서 요수 신선생은 요수 신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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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 속을 거닐다 ~ 귀연서원에서 황산마을로 가는 둑방길 |
▲▼ 가을이 짙게 내려앉은 수승대 둑방길 둑방길 가로수는 서서히 자신의 몸을 물들이며 단풍의 향연을 준비한다. 전통 흙담장으로 꾸며진 마을 담장은 벌써부터 추운건지 푸른 담쟁이덩굴 옷을 두텁게도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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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승대에서 머문 시간이 대략 3시간 정도 되는 것 같다. 귀연암 꼭대기와 귀연암 건너편 암반에 걸터앉은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등을 돌리며 가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수승대의 절경, 다음에 다시 온다면 곡차 1병과 시집(詩集) 하나 챙겨와서 옛 사람들을 따라해 보고 싶다.시를 짓는 실력은 아주 형편없으니(고등학교 시절에 제일 싫어했던 것이 시임) 시집에 나온 시나 열심히 읊조리련다.
수승대에서의 아쉬운 시간을 정리하며 속세로 나가기 위해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나온다. 정류장 에는 시간표가 걸려있는데 그 시간보다 5분 일찍 버스가 다가온다.그 차를 잡아타고 다시 거창 읍으로 나와 마음만은 수승대에 몇일 있으라 하고 몸뚱이만 우선 동서울로 가는 직행버스 막차 에 실어 보냈다. 이렇게 하여 수승대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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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 - 2011년 7월 18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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