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구] 성주 성산동 고분군 ~ 옛 영남의 중심, 대구 경상감영공원
' 경북 성주, 대구 역사기행 (2006년 3월 25일)'
'하편 ― 성산가야(星山伽倻)의 옛 도읍, 경북 성주(下) ~ 대구 경상감영공원(선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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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주 성산동 고분군 둘러보기 ~ 사적 86호
▲ 성산동 67호분 | |
▲ 무덤 위에 피어난 노란 들꽃 | |
![]() | ◀ 67호분에서 바라본 성산동 69, 70, |
◀ 약간 외딴 곳에 떨어진 65, 66호분 | |
◀ 야트막하게 누워있는 | |
◀ 57호분에 버금가는 큰 무덤 - |
▶ 성산동 42호분 ▶ | |
▶ 성산동 46호분 ▶ | |
▲ 노란 들꽃 |
이렇게 하여 약 2시간에 걸친 성산동 고분군 답사는 마무리가 되었다.
처음에는 산 아래 약 20기 정도만 살펴보려고 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산 자락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렇게 재미도 없는 옛 무덤들을 지겹게 본 것은 작년 11월 19일, '경주 노서동 ~ 노동동 고분군' 이후 4개월만
으로 무덤의 모습은 솔직히 거의 비슷비슷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무덤의 곡선과 크기가 다르다는 것..
(경주 노서동 ~ 노동동 고분군 둘러보기)
저 무덤들을 만들기 위해 강제 동원되어, 땀과 피를 바친 이 지역의 수많은 백성들, 그리고 죽어서도 자신의
권위를 과시하며 누리기 위해 큰 무덤을 선호했던 망족(望族)들의 부질없는 행동, 인생이란 죽으면 그만인 것을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큰 무덤을 만들었던 것일까..? 다 썩어 문드러진 그들의 육신을 위한 공간치고는 너무
넓은 것 같다.
그렇지만 그들의 부질없는 행동은 자칫 영원히 잃어버릴 뻔 했던 성산가야의 존재를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이 곳은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몇 안되는 흔적들로, 고분에서 나온 수천 점의 유물들(현재 대구 계명대 박물관에
있음)은 우리로 하여금 1500년 전 그들의 존재를 약간이나마 느끼게 해준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3시, 성산동 고분군을 뒤로 한 채, 다시 읍내로 걸어 나왔다.
날씨는 잠바가 필요 없을 정도로 따뜻했는데, 봄에 반항하는 겨울의 잔여 세력들이 반란을 꿈꾸는지, 매서운
바람이 몇번 씩이나 나를 후려치고는 그렇게 사라져 간다.
성주터미널에서 이르러 아쉽지만 성주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 짓고, 그 다음 행선지인 대구로 가기 위해
성주좌석버스 250번을 탔다. 좌석버스라고는 하지만 거의 농어촌 완행버스.. 대구까지는 3000원을 요구하길래
다사에서 지하철을 탈 생각으로 다사까지만 표를 끊는다.
3시 45분, 버스는 성주터미널을 출발, 읍내를 한바퀴 돌고, 선남을 지나 4시 10분 '성주대교'라 불리는 정말로
길쭉한 다리를 건넌다. 이 다리 역시 낙동강(洛東江) 위에 걸린 수많은 다리 중에 하나. 그날따라 그 강을 벌써
3번이나 건넌다.
강을 건너니, 이제부터 본격적인 대구광역시(大邱廣域市)... 하산리와 대구지하철 2호선 종점인 문양역을 지나
4시 30분 경, 아파트로 가득한 다사읍(多斯邑)에 도착. 읍내의 어느 정류장에서 내렸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다사역'을 찾는데 이건 도대체 어디에 숨어있는지 안내문도 없고,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찾지 못할 지경이다. 그래서 과일을 파는 행상들에게 '지하철역이 어디에 있습니까?' 물으니 길을 건너 아래로
내려가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로 가는 도중 할인마트 하나를 발견했는데, 마침 집에서 가지고 온 물도 바닥을 드러내어, 캔커피
음료라도 사 마실 생각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세상에 커피 음료 하나에 250원.. 우리동네는 제일 싸봐야 400원
인데.. 매우 저렴한 가격에 그만 감동을 먹어.. 충동구매로 2개나 사고 말았다.
세천리 방면으로 통하는 내리막길에 이르니 그제서야 다사역이 눈에 보인다.
읍내에서 약간 외진 곳에 자리한 전철역, 그렇지만 이용객은 상당하다. 어차피 읍내에서도 걸어서 10분 이내
거리이니..
역으로 내려가 자동판매기에서 표를 사는데, 나는 수도권에서 전철을 탈 때 100% 카드를 이용하기 때문에
특별히 자동판매기를 찝적거릴 이유가 없었다. 솔직히 전철표 구경해 본지도 오래 되었지. 볼 이유가 없으니까.
중앙로역(900원)으로 가기 위해 판매기에 1000원짜리를 쑤셔 넣는데 판매기는 자꾸 반항을 하고.. 나의 이런
모습을 바라본 역무원이 다가오면서 '이렇게 하면 됩니다' 친절히 설명을 하면서 직접 표를 뽑아준다.
그런데 네모 모양의 표가 아닌 조그마한 동그라미 표 하나가 덩그러니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걸 보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오잉~ 이게 표에요?'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그런다. 처음으로 접해본 특이한 디자인의
'지하철 표', 얼마나 신기하던지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처럼 표 윗면과 아랫 면을 구석구석 살펴보았지.
표를 넣고 들어가는 개찰구도.. 그 동그란 표를 어디에 쑤셔 넣는지 몰라서 허둥지둥.. 그래서 역무원이 직접
넣어주었다. 이렇게 하는 거라면서..~ 서울에 살면서 지하철을 23년 이상 타온 나는 그 순간만큼은 순진한
촌놈이 되어버렸다.
▲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던 대구지하철 표 |
♠ 400년 영남(嶺南)의 중심지 ~ 경상감영공원(慶尙監營公園)
옛 경상감영이 있던 자리에 조성된 시민공원으로 대구에 감영이 설치 | |
부터 영남의중심도시로 경상도의 행정, 정치, 군사, 치안의 중심지가 됨과 동시에 조선 3대 도시(서울, |
지금의 공원 자리는 경상감영 외에도 객사, 진영(鎭營), 군창(軍倉) | |
공원 내에는 경상감영의 건물이었던 '선화당'과 '징청각'이 있으며, |
* 경상감영공원 찾아가기
-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도보 5분, 대구역에서 도보 10분
* 입장료는 없으며 관람시간은 제한 없음
▲ 하마비(下馬碑) 경상감영의 정문인 관풍루(觀風樓, 현재 달성공원에 있음) 앞에 세워져 있던 것으로 비문 | |
▲ 선화당 앞에 피어난 벚꽃 | |
▲ 가로등과 벚꽃나무 | |
◀ '시민의 나무'라는 이름을 가진 석조 |
▲ 선화당(宣化堂) ~ 대구 지방유형문화재 1호 | |
◀ 메마른 연못 | |
▲ 징청각(澄淸閣) ~ 대구 지방유형문화재 2호 경상도 관찰사의 처소(處所)로 1601년에 세워졌다. | |
◀ 징청각 현판 |
▲ 비림(碑林) 경상감영공원을 조성하면서 대구 각지에 흩어져 있던 경상도 관찰사, 혹은 대구부사(府使)의 | |
▲ 징청각의 뒷모습 |
동대구에서 나를 맞이하는 것은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와 버스 뿐이다. 어차피 나의 최종 목적지는 집이니까.
성주와 대구는 어디까지나 경유지..
동대구역 아랫쪽에 있는 고속버스정류장에서 19시 40분 서울로 가는 일반고속을 타고 중부내륙고속도로를
거쳐 23시 40분, 서울에 도착했다.
~ 이렇게 하여 '성주 ~ 대구' 역사기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리며 다시는 재생이 불가능한 추억 속의 한 페이지로
그렇게 남게 되었다. ~
* 하편 작성 시작일 - 2006년 4월 17일
* 하편 작성 완료일 - 2005년 4월 21일
* 하편 숙성/방치 기간 - 2006년 4월 22일 ~ 7월 10일
* 공개일 - 2006년 7월 11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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