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과 바다, 초원을 만나다.. - 대관령 / 동해바다 기행 (2006년 5월 20일)'
'하편 ― 경포대 해수욕장 ~ 등명낙가사 ~ 묵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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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상, 하 2편으로 나누어 작성했습니다.
♠ 동해바다와의 만남.. ~ 명사오리(明沙五里)의 경포대(鏡浦臺) 해수욕장
동해바다를 보기 위해 높다란 백두대간(白頭大幹)을 훌쩍 뛰어 넘어, 영동(嶺東)의 오랜 중심지 강릉(江陵)을
찾았다.
강릉시내를 가로질러 초당 순두부의 고향인 초당을 지나 경포도립공원의 중심지인 경포대 해수욕장 부근에
수레를 세워 놓고, 무척이나 시장한 배를 채우기 위해 가까운 주막으로 들어가 초당순두부와 김치찌게 등으로
허기진 배를 달랜다.
배가 어느 정도 들어차면서, 다들 포만감의 행복에 빠져든다. 이때다 싶어 졸음이라는 녀석이 '배깔고 한숨
자고 가라'며 우리를 슬슬 희롱하지만, 푸르른 동대해(東大海)를 보러 여기까지 온 만큼, 그들의 희롱을
단호히 뿌리치며, 바다에 놀러온 어린 아이처럼 앞다투어 해수욕장으로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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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포대 해수욕장의 끝없는 모래사장 아직 바캉스 시즌이 아니라서 사막처럼 넓게 펼쳐진 백사장에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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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로운 바닷가 풍경 성질 급한 어린아이들은 벌써부터 바다파도에 몸을 던지며 때이른 해수욕을 즐기고 있다. 그들이 자칫 바다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잔잔한 파도로 배려해주는 동대해의 넓은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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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향해 다가오는 바다 파도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내가 별로 달갑지 않은지, 나를 치기 위해 바다파도가 중공군의 인해전술처럼 새하얗게 밀려 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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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앞까지 파도는 밀려왔으나.. 나는 그 자리를 사수(?)하며 그런 파도를 응시하였다. 거의 내 앞까지 밀려와 나를 위협하는 파도.. 과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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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결국 나를 범하지 못하고 저 멀리 줄행랑을 치는 바다 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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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통이 났는지, 다시 나를 향해 물밀듯이 밀려오는 파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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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품이 거의 없는 파란 바다.. 저 파도에 나의 다리를 푹~ 담구고 싶다.. 저 푸른 바다처럼 나도 푸르게 살고 싶다. 아무리 천재화가가 그린다고 해도 저런 색깔은 가히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사람이 만든 색깔이 어찌 대자연이 만든 천연의 색깔만 하리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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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파도의 뽀송뽀송한 물거품.. ~ 마치 생맥주의 거품처럼.. 저 거품을 보니 갑자기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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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 파도와 모래와의 스킨쉽.. 백사장의 모래를 살짝 어루만지며 모래를 더욱 윤기나게 해준다. * 경포대 해수욕장 찾아가기 - 강릉터미널에서 강릉시내버스 202번 이용, (20 ~ 40분 간격) - 영동고속도로 → 강릉분기점에서 동해방면 → 강릉나들목 → 금산나들목에서 국도 35호선 → 강릉시내 → 초당 → 경포대 해수욕장 - 영동고속도로 → 강릉분기점에서 동해방면 → 강릉나들목 → 금산나들목에서 국도 35호선 → 옛 동해고속도로 → 선교장 → 경포대 해수욕장 |
동해바다와의 약간의 스킨쉽을 즐기며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약 1시간을 그렇게 머물렀다.
해수욕 시즌이라면 더 찐한 스킨십을 즐길 수 있을텐데, 아직은 때가 이른지라..
시간은 어느덧 4시. 바로 서울으로 올라가기도 그렇고 해서, 어디 한군데 더 둘러보기로 했는데 문득 등명에
있는 '등명낙가사'가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 곳으로 가자고 제안을 했지. 몸에 좋다는 약수가 있다고 하면서,
그러니 다들 ok. ~~
경포대 지구에는 해수욕장보다 더 중요한 경포호수와 경포대(鏡浦臺)가 있으나 이들 명소는 차창 밖으로 바라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냥 통과했다. 어차피 2004년 이전에 지겹게들 가본 곳이라, 그냥 지나친들 후회될
것은 없다.
오죽헌(烏竹軒)을 지나 옛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모전에서 동대해의 영원한 벗, 7번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가니
또다시 푸르른 동대해가 우리를 맞이하고, '1996년 북한군 잠수함 침투지'를 지나 경포대 출발 30분 만에
등명낙가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 동대해를 바라보고 있는 절집, 약수 물맛이 일품인.. ~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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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연간(年間)에 자장법사(慈藏法師) 가 창건했다고 한다. 그 당시 고구려와 신라는 강원도 북부지역(원산, 회양, 통천)을 경계로 삼으며 서로 으르 렁거리고 있었는데 고구려군은 수시로 배를 타고 강릉, 삼척 지역을 침범하였다. |
이에 골머리를 썩고 있던 신라 정부는 부처의 힘으로 고구려를 막을 생각으로 자장법사로 하여금 부처 의 사리를 석탑 3기에 나누어 모시고 절을 세우게 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시절, 신라는 왕경(王京), 즉 지금의 경주를 중심으로 절이 우후죽순 세워졌을 뿐, 지방 에까지 절을 세우지는 않았다. 특히나 자장은 신라 왕실의 국사(國師)나 다름없는 존재로 항시 왕경에 머물러 있었는데, 언제 이런 변경까지 와서 절을 세웠겠는가?
그는 무열왕(武烈王) 연간에 이르러 불교의 대중화를 내세운 원효(元曉)에 의해 권력에서 밀려나면서 강원도로 내려와 생을 마감했다고 하지만, 중앙에서 떨려난 비운의 처지로 과연 절을 세울만한 여력이 있었을까?
그러면 절은 도대체 언제 세워졌을까? 경내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5층석탑이 떡 버티고 서 있는 것으로 봐서는 대체로 신라 후기나 고려 초기에 세워졌을 것이다. 어쨌든 창건 당시의 이름은 수다사(水多寺)라고 하며, 나말여초(羅末麗初)에 지방세력간의 세력 싸움 으로 파괴된 것을 고려 초에 중창하여, 등명사(燈明寺)라 하였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 '신증동국여지 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며 절의 위치가 '어두운 방 가운데에 있는 등불과 같은 곳'이라 하여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
그 이후, 큰 사찰로 번성했을 것으로 생각되나 조선 중기에 이르러 폐사되었다. 절이 망한 이유에 대해서는 1.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해 파괴되었다 - 왜군은 강원도와 조선반도의 최북단, 함경도 온성(穩城) 지역까지 치고 올라 갔는데, 이는 동해바다를 완전히 장악했기 때문이다. 함경도 에 이른가등청정(加藤淸正)의 군대에게 군수물자를 보내던 왜선이 우연히 이 절을 발견하고배에서 내려 약탈,파괴를 하였을 것이다.
2. 안질로 고생하던 조선의 어느 왕이 점술가의 말만 믿고 파괴시켰다. - 등명사에서 흘려보낸 쌀 씻은 물이 바다를 오염(?)시켜 동해용왕(龍王)을 열 받게 만든 탓에. 왕이 안질 에걸린 것이라고...
3. 불교를 완전히 없애려는 조선 정부의 정책에 일환으로.. - 이 절은 서울의 정동쪽에 있어 왕궁이 받아야 할 일출을 제일 먼저 받으므로, 정동쪽 등불을 끄면 조선의 불교는 자연히 없어진다는 의견에 따라 파괴시켰다는 것.. |  |
오랜 세월 절터만 덩그러니 남아오다가, 1956년 승려 경덕(景德)이 다시 절을 일으켜 세웠으며, 관음 보살이 머무는 곳이라 하여 이름을 낙가사로 하였는데 옛 이름인 등명(燈明)을 앞에 붙여 '등명낙가사' 라 길게 부르기도 한다.
경내에는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고려시대 5층석탑을 비롯하여, 몸에 매우 좋다는 약수가 있으며,인간 문화재 유근형(柳根灐) 옹이 청자로 만든 오백나한(五百羅漢)이 있다.
* 등명낙가사 찾아가기 - 강릉 동부시장, 병무청, 남대천에서 강릉시내버스 111번, 112번, 113번 이용, 등명낙가사 하차, (1일 20회 남짓 운행) - 영동고속도로 → 강릉분기점 → 강릉나들목에서 35번로 나와서 → 옛 동해고속도로로 진입 → '모전'이나 '정동'에서 나와서 7번국도 이용
* 관람료는 없으며, 관람시간도 따로 제한은 없다. * 절 부근으로 해우소 외에는 이렇다할 편의시설은 없음. |
♠ 등명낙가사(燈明洛伽寺)를 들어서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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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가사 일주문(一柱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우람한 모습의 일주문 ~ 다포(多包) 양식으로 촘촘히 박힌 공포 덩어리가 꽤 정교하고 아름답다. 굵은 문 기둥에는 각각 용 1마리가 기둥을 발판 삼아 승천(昇天)을 꾀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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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얀 피부가 돋보이는 귀부(龜趺)와 이수(螭首) 원래부터 비신(碑身)이 없었는지, 아니면 중간에 없어진 것인지, 알맹이인 비신은 없고, 귀부와 이수만 덩그러니 있다. 이수는 여의주(如意珠)를 두고 다투던 반룡 2마리만 새기던 전통 양식을 버리고 양쪽으로 용 2마리를 보너스로 더 새겨놓았다. |
♠ 낙가사 약수를 마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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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가사 약수 1974년에 발견된 약수로 빈혈, 위장병, 신경통, 피부병, 부인병 등에 좋다고 한다. 예전에는 이 물로 목욕도 하고 그랬지만, 요즘은 별로 없는 것 같으며, 물 맛은 대개 짜고 거의 탄산사이다와 비슷하다. 그 물에 설탕을 넣어 적당히 저으면 바로 칠성사이다 그 자체 .. 역시 몸에 좋은 약수는 맛부터 틀리다니까..? 어린 시절에는 물 맛이 이상하여 입도 대지 않았지만, 요즘에는 바가지에 열이 나도록 떠 마시니..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도 이제 나이 를 먹은 모양이다.. 나뿐만 아니라 일행들도 몸에 좋다는 말에 앞다투어 물을 마신다. 마신 이들의 얼굴에는 마치 힘이라도 쏟아난 듯, 희색의 미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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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명감로약수 표석~ 누렁이 1마리가 특별 출현을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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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렁주렁 피어난 불두화(佛頭花) 꽃송이가 상당히 두터워, 저 송이에 맞으면 왠지 아플 것 같다. |
♠ 불두화의 향기로 가득한 낙가사 경내 둘러보기 ~
 | ◀ 낙가사 5층석탑 - 강원도 지방유형문화재 37호 고려시대에 세워진 탑으로 옛 등명사(燈明寺)의 유일한 흔적이다. 바닥돌 위에 2중의 기단(基壇)을 세우고, 그 위로 5층 의 탑신(塔身)을 세웠는데, 탑신의 1층부는 넓은 편이 나, 2층부터 5층까지는 그 폭이 매우 좁다. 마치 다층 석탑을 보는 듯한.. 옥개석의 모서리는 조금씩 깨져 있는데 이는 매정한 세월이 할퀴고 지나간 자욱들이다.
기단부 갑석에는 마치 촛불이 활활타오르는 모습의 연꽃이 묘사되어 있는데 아래에는 복련(伏蓮), 위에는 앙련(仰蓮)이 피어나 있다.
낙가사에는 원래 5층석탑이 3기가 있었다고 한다. 하나는 바로 이 탑, 다른 하나는 6.25전쟁 때 형체도 없이 파괴되었다고 하며, 다른 하나는 바다 속에 숨겨 진 이른바 수중탑(水中塔)이라고 한다. 1970년까지만 해도 수중탑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하며, 그 이후부턴 |
행방이 묘연하다고 하다. 물론 본 사람도 없다고 함. 과연 있기는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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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가사의 법당(法堂) - 약사전(藥師殿) = 만월보전(滿月寶殿) 만월보전으로 오르는 계단 양편으로 불두화가 탐스럽게 열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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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월보전 불단(佛壇)에 모셔진 약사여래좌상(藥師如來坐像) 양쪽 협시불은 일광보살(日光菩薩), 월광보살(月光菩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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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월보전에서 바라본 5층석탑 낙가사는 만월보전 구역과 청동오백나한이 있는 영산전(靈山殿) 구역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우리는 청동오백나한의 존재를 모르고 그만 영산전 구역을 통과해 버리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나는 그저 5층석탑과 약수터만 알고 있었지. 오백나한의 존재까지는 미쳐 헤아리지를 못했다. 집에 와서 확인해보니. 이런 아뿔싸.. 세계 유일의 청동 오백나한을 못보고 오다니.. 천추의 한이 될 정도로 후회감이 막심하다. 다음에 다시 찾아갈 기회가 있다면 그들을 꼭 친견을 하고 말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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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채 컬렉션 일주문 부근 나무 그늘에는 부채를 만들어 파는 장인이 1명 있었다. 바로 그 장인이 만든 전통 부채들.. 시원스레 펼쳐진 부채의 모습만으로도 더위는 '제발 나살려라~' 도망을 칠 것 같다. |
낙가사 관람을 마치고, 일행들이 동해바다까지 온 김에 꼭 회를 먹고 가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천추의 한이
될 것 같다고 이구동성으로 그런다. 그래서 어디서 회를 먹을 것인가를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묵호(墨湖)가
좋을 것 같다는 나의 의견에 따라, 서울과 정반대 방향인 묵호로 길을 잡았지.
동해고속도로를 타고 동해시(東海市)의 절반을 차지하는 묵호로 진입, 묵호항 부근에 수레를 세워놓고, 부근
횟집을 점거(?)하여 이른 저녁으로 비록 푸짐하지는 않지만 회를 먹었다.
나는 유감스럽게도 회를 즐기는 편이 아니라서, 맛은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일행들의 말로는 별로 맛은
없었다고 그런다. '다른 집으로 갈껄'하는 후회감이 막심...
회를 먹는데 역시 곡차(穀茶)를 뺄 수는 없지, 소주 1병 시켜서 나를 비롯 몇 명이 마셨으니, 그날 따라
이상하게도 곡차는 별로 인기를 얻지 못했다.
막판에 나온 해물찌게로 뒷마무리를 하고, 묵호항을 잠시 둘러보려고 했으나, 적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통에 그럴 마음을 접고, 바로 수레에 올라 이번 여행의 종점인 서울로 길을 재촉한다.
서울로 가는 길은 토요일 저녁이라 차가 그리 막히지는 않았다. 에버랜드가 있는 마성, 용인 주변만 약간
막혔을 뿐.. 그 구간을 지나니 굴뚝이 시원스레 뚫린 듯, 다시 정상 소통... 그리하여 묵호 출발 근 4시간
만인 22시 서울에 도착했다.
정말 번개처럼 날아가 재미나게 보냈던 그날 하루, 그곳이 그리워지고 같이한 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비록 보잘 것은 없지만 이렇게 글을 남긴다.
~~ 이렇게 하여 산, 바다, 초원을 만난 대관령, 동해바다 여행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 답사, 촬영 일시 - 2006년 5월 20일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6년 6월 29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6년 7월 3일
* 상편 숙성기간 - 2006년 7월 4일 ~ 8월 12일
* 공개일 - 2006년 8월 12일부터
Copyright (C) 2006 by Park Yu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