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권 사진,답사기

한여름에 찾아간 진해 성흥사 / 대장동계곡

도봉산 고양이 2008. 9. 8. 03:18


' 성하(盛夏)의 길목에서 찾아간 진해 성흥사(聖興寺)'

성흥사 대웅전 ~~
▲ 성흥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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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제국이 그 절정을 향해 치닫던 7월의 마지막 주말, 그리운 이들을 보고자 오랜 만에 남쪽
지역을 찾았다.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여 대전을 거쳐 5시간 만에 창원터미널에 이르니 명곡동에 사는 15년 숙
성을 자랑하는 옛 친구(현재 서울 거주)가 일찌감치 배웅을 나와주었다.

창원의 날씨는 서울보다 무척이나 뜨거웠다. 내리쬐는 햇살은 가히 천하를 녹여먹을 정도로 강렬
하여 채 1분도 버티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이렇게 푹푹 찌는 날씨에는 바깥을 돌아다니는 것보단
냉방이 두툼하게 나오는 대형실내공간이 딱 그만이다.
마침 점심을 먹지 않은 터라 터미널 부근 '삼성홈플러스'에서 점심을 먹으며 여름 제국의 핍박을
잠시나마 피해 본다.

핍박이 잠시 느슨해진 틈을 타 친구의 자전거를 번갈아 타면서 창원의 주요 간선로인 '반송로'를
따라 '창원 컨벤션센터'로 이동했다.
거기서 6시까지 머무르다가(더워서 주로 실내에 있었음) 저녁에 다른 약속이 잡혀 있는 터라, 친
구와 잠시 작별을 고하고 창원시청 부근에 있는 상남시장에 갔다.
거기서 후배 여인네를 만나 저녁으로 고기와 곡차(穀茶) 등을 배부르게 대접받고, 친구집으로 돌
아와 토요일 일정을 마무리 했다.

다음날(일요일) 아침, 찬란한 여명의 재촉을 받으며 잠에서 깨어났다. 간단히 아침끼니를 때우고,
아쉽지만 회자정리의 원칙에 따라 그와 작별을 고하며, 또 다른 이들을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길
을 향했다.
부산으로 가던 중, 불모산에 있는 '성흥사' 생각이 간절하여 웅동에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불
모산 자락으로 파고 들어갔다.

성흥사 아래로는 '대장동계곡'이 베풀어져 있는데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모양이다. 피서객들이
끌고 온 수레들이 거의 1분이 멀다하고 계곡 쪽으로 들어간다.
평상시에는 무척이나 조용할 것 같은 이 길은 피서 차량들로 인해 소음과 매연이 진동하여, 걸어
올라가는 나를 엄청 고달프게 만든다.
날씨도 무지 더워 땀으로 계곡을 메울 판에 쌩쌩 지나치는 수레들 때문에 짜증이 한가득 밀려와
육두문자가 절로 쏟아진다.

땀을 씻으며 20분 정도 오르면 불모산을 뒷배경으로 삼은 대장동마을이 나오고, 10분 정도 더 오
르니 계곡 매표소가 나온다.
나를 앞지르며 유유히 올라간 수레들은 매표소를 기준으로 아래 200m 지점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
며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안쪽으로는 더 이상 수레가 들어갈 공간이 없
기 때문이다.
수레 수용능력을 초과한 매표소 측은 더 이상 수레를 들여보내지 않으려고 하고, 피서객들은 어
떻게든 수레를 끌고 들어가려고 하고, 그들이 팽팽히 줄다리기를 벌이는 사이, 나는 그들에게 조
소를 띄우며 가볍게 매표소를 지나친다. (절 관람객은 입장료 없음)

▲ 피서삼매경의 현장 ~ 대장동 계곡

피서삼매에 빠져든 피서객들을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시원한 계곡물 대신 뜨거운 땀방울로
몸을 젖히면서 오로지 성흥사를 향해 두 발을 움직인다.

계곡을 벗어나니 성흥사 주차장과 함께 하얀 맵시의 7층석탑이 눈에 띈다. 정면으로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성흥사가 보이는데, 절 입구에는 으례 심어놓는 일주문(一柱門)이 없다.

속세와 불세(佛世)의 경계선 역할을 하는 담장, 그 두 세계를 이어주는 성흥사의 정문 천왕문을
들어서니 백일홍의 향기가 진동하고 열대 야자수가 손짓하는 남국(南國)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
는 성흥사 경내가 유감없이 펼쳐진다.

▲ 성흥사의 정문, 사천왕(四天王)의 거처인 천왕문(天王門)


♠ 불모산(佛母山) 자락에 안긴 신라 후기 고찰(古刹)
~ 성흥사(聖興寺)


▲ 열대 야자수가 중생들을 반기는 성흥사 경내


진해와 김해 경계에 걸쳐있는 불모산의 남쪽 자락에는 진해 지역 유일의 고찰(古刹)인 성흥사가
어미 품에 안긴 애기 마냥 포근히 자리해 있다.

이 절은 신라 후기, 선종구산(禪宗九山)의 하나인 성주산문(聖住山門)을 개창한 무염국사(無染
國師)가 833년<흥덕왕(興德王) 6년>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흥덕왕 연간(年間)에 왜구(倭寇)가 지금의 웅동 지역에 쳐들어오자, 신라 조정은 무염을 보내 왜
구를 토벌케 했다.
무염은 불력(佛力)으로 그들을 쫓아내자. 왕은 그에게 국사(國師)의 칭호를 내리고 구천동(九川
洞)에 성흥사란 절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 2층 구조의 범종각(梵鍾閣)

▲ 성흥사 선방(禪房)


창건 시절에는 승려수가 500명에 달하는 큰 절이었다고 하나 고려 예종 연간(1105 ~ 1122년)에
화재를 만나 근처 대장동으로 이전하였다.
1668년(조선 현종 9년) 다시금 엄습한 화마(火魔)로 인해 구천동으로 절을 옮겼으며 1789년(정조
13년)에 비로소 지금의 자리에 안착했다.

▲ 성흥사 주차장 부근에 심어진 7층석탑
성흥사에 유일한 석탑이다.

▲ 중생들의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성흥사 샘터


소장 문화재로는 유일한 지정문화재인 대웅전을 비롯하여 1890년에 승려 화주가 그린 무염국사의
영정과대불상, 나한상 등이 있고, 절에서 서남쪽 200m 떨어진 산자락에는 성흥사의 기나긴 역사
를 대변하는 승려들의 부도군(浮屠群)이 있다.

절 아래로는 '대장동계곡'으로도 불리는 '성흥사 계곡'이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며 펼쳐져 있고,
숲이 울창하여 무더위를 떨치기에는 아주 제격이다.

* 성흥사 찾아가기 (2008년 8월 기준)
- 부산서부터미널(2호선 사상역 3,5번 출구)이나 하단역(5번 출구)에서 진해 방면 직행버스 이
용(약 15분 간격) 웅동 하차
- 진해시내와 용원에서 진해시내버스 105번 / 115번 이용, 웅동(웅동1동사무소) 하차
- 웅동에서 성흥사까지 걸어서 30분, 또는 약 1~2시간 간격으로 있는 대장동행 공영버스 이용


* 승용차 : 부산 → 낙동강하구둑 → 용원 → 웅동 → 대장동 → 성흥사
마산 / 창원 → 진해 → 웅동 → 대장동 → 성흥사
- 대장동 계곡과 성흥사 아래에 주차장이 있음
- 휴가철에는 피서객들에 한해 계곡 입장료 징수
* 소재지 - 경상남도 진해시 대장동 180 (☎ 055-544-0555)

▲ 보랏빛 향기를 간직한 수련(垂蓮)

▲ 성흥사 삼성각(三聖閣)
칠성(七星)과 독성(獨聖, 나반존자),
산신(山神)을 모신 전각이다.


♠ 남국의 정취와 백일홍, 연꽃의 향기로 가득한
성흥사 둘러보기 ~~

성흥사의 정문인 천왕문에서 사천왕의 검문(?)을 받고 경내로 들어서면 좌우로 승려들의 생활공
간인 선방(禪房)이 있다.
선방을 지나치면 정면에 대웅전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 앞에는 특이하게도 야자수가 멀
뚱히 솟아나 나의 눈을 어리둥절케 만든다. 솔직히 절에서 야자수를 만난 적이 처음이라그 풍경
이 다소 낯설기만 하다. 마치 무더운 남국(南國)의 어느 사원에 온 기분이랄까..?

계단 옆에는 중생들의 목마름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샘터가 있는데 40분 동안 땀을 발산하며 걸은
탓인지 물맛이 상쾌하다.
몇 바가지를 마시고 나서야 겨우 대웅전으로 발걸음이 떨어진다.

▲ 대웅전 앞에 피어난 목백일홍(木百日紅)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모든 만남은 생각보다 짧다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 부릴 이유는 하나도 없다
지금부터 백일만 산다고 생각하면 삶이 조금은 지혜로워지지 않을까?
처음 보아도 낯설지 않은 고향친구처럼 편하게 다가오는 백일홍
날마다 무지갯빛 편지를 족두리에 얹어 나에게 배달하네
살아 있는 동안은 많이 웃고 행복해지라는 말도 늘 잊지 않으면서…

* 이해인의 '백일홍 편지'에서


계단을 오르면 왼쪽으로 붉은 색의 백일홍이 그 아리따운 자태와 향기로 나의 눈과 코를 붙잡고
놓아줄 생각을 않는다. 꽃에는 벌들이 꿀같은 점심 식사를 즐기며 한여름의 더위를 피한다.
백일홍의 향기로 진동하는 성흥사 경내는 그리 넓지 않은 아담한 크기이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대웅전 주변은 승려와 사람들의 발길로 부산하다. 아마도 무슨 법회가 있는
모양인데, 대웅전 섬돌에는 많은 수의 신발들이 어지러히 널려져 잠시 단잠을 즐긴다.


▲ 성흥사 대웅전(大雄殿) - 경남 지방유형문화재 152호


천왕문을 바라보며 들어앉은 성흥사의 법당(法堂),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
물이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여러 번의 보수를 거쳐 기존 모습에서 많이 변화한 것으로 보이며 공
포가 촘촘히 박힌 다포(多包) 양식이다.

법당 앞에는 으례 세워놓는 석탑은 없으며 가람(伽藍) 배치는 '법당 ~ 중문'의 형태이다.

지붕 용마루의 곡선이 아래로 약간 구부
러져 있어 멀리서 보면 팔작지붕으로 보인
다.

대웅전도 그렇고 성흥사의 불전들은 그리
크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로 두 눈으로 살
펴보기에 별 부담이 없다.

◀ 대웅전 내부


▲ 대웅전의 오른팔 - 나한전(羅漢殿)

나한전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불전 내부에는 1890년에 만들어진 500개의 나한상(羅漢像)과 16나한상 등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
으며, 불단에는 석가여래가 좌우로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대동하고 있다.

◀ 나한전 내부


▲ 대웅전 부근에는 이렇게 연꽃들의 보금자리를 베풀어 놓았다.

◀ 나를 바라보며 어여쁜미소를 띄
워준 보라색 수련(垂蓮)

대웅전 왼쪽에는 조촐한 모습의 삼성각이 자리해 있다.
삼성각은 우리 민족과 생사고락을 같이한 3명의 성스러운 존재가 모셔져 있는데 바로 산신(山神
)과 독성(獨聖), 칠성(七星)이다.

삼성각에는 승려 1명이 염불을 크게 읊조리며 예불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염불을 들어보니온
갖 보살(菩薩)과 불교 관련 존재들이 계속 나오던데, 자세한 건 모르겠다. 그렇게나 한참 예불
을 드리던 그는 다리가 아픈지 절을 멈추고 휘청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밖으로 나온다.
아마도 108배 이상의 예불을 올린 모양이다.

삼성각 정면에는 2층의 범종각이 자리해 있다. 경내에서 제일 높은 건물로 부처의 중생구제를
향한 은은한 메세지가 담긴 범종을 비롯하여 법고, 목어, 운판(雲版) 등의 사물(四物)이 있다.

▲ 독성(나반존자)과 동자가 그려진
독성도(獨聖圖)

▲ 칠성도(七星圖)

◀ 산신도(山神圖)
산신과 동자, 호랑이가 그려진 산신도, 그림앞
에도 호랑이를 탄 산신상이 따로 자리해 있다.


절을 둘러보고 속세로 나갈 때는 무엇이 허전한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쩌면 성흥사와의
만남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샘터에서 물을몇 바가지씩 원없이 떠다 마시고는
성흥사의 산문을 나섰다.

대장동 마을로 나오니 마침 웅동으로 나가는 공영시내버스가 앞문을 열고 대기해 있었다.
운전사는 동네 사람들과 잠시 계곡으로 들어서는 피서객 차량들의 교통 정리를 해주고있었다.

온 몸이 땀으로 철저히(?) 유린당한 상태라 걸어가는 걸 포기하고, 냉방으로 서늘한 차 안으로
들어가 땀을 닦으며, 불만 가득한 두 다리를 쉬게 했다.
한 15분 정도 지났을까? 슬슬 출발시간이 되었는지 운전사가 차에 오른다. 버스요금을 물어보니
700원이라고 그런다. 진해시에서 지원하는 벽지 공영버스라 시내버스보다 300원을 저렴하게 받
는 모양이다.

버스는 나 하나만을 태우고 바깥세상으로 나간다. 중간에 3명 정도 탄거 같은데 대장동마을까지
걸어올 때는 거의 25분이 걸리더만 차로 나가니 불과 5분이다.

웅동에서 용원으로 나가는 105번 시내버스를 타고 부산과 진해 중간인 용원으로 이동했다.

~~ 아쉽지만 본글은 여기서 끝. ~~


* 답사, 촬영 일시 - 2007년 7월 29일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7년 9월 11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7년 9월 23일
* 숙성기간 ~ 2007년 9월 24일 ~ 2008년 9월 5일
* 공개일 - 2008년 9월 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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