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권 사진,답사기/부산 해안 지역

한더위에 찾아간 송도(암남공원) 해변 / 용원포구(망산도)

도봉산 고양이 2008. 9. 12. 15:46


' 성하(盛夏)에 길목에서 찾아간 부산 송도해변 / 옛 가야국의 설화를 간직한 용원포구'

송도 앞바다
▲ 부산 송도 앞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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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원 앞바다에 떠 있는 조그만 섬 망산도(望山島)와 유주암(維舟岩) ~
그 곳에 숨겨진 옛 가야국(伽倻國)의 이야기.. -
부산 지방기념물 57호


▲ 육지와 붙어버린 망산도와 유주암
육지와 망산도 사이로 갯벌이 펼쳐져 있어 이 곳이 예전 바다였음을 말해준다.


부산과 진해 사이에 들어앉은 용원(龍院, 진해시), 지금은 거의 육지가 되버렸지만 그 앞바다(행
정구역상 부산 강서구)에는 망산도(望山島)라불리는 나무와 바위로 가득한 조그만 섬 하나가 자
리해 있고, 섬 남쪽에는 유주암(維舟岩)이란 바위가있다.

10년 전 만해도 용원 앞바다는 제법 수심이 깊어 어항(漁港)의 역할을 했으나 녹산산업공단 개발
로 부산 명지동부터 용원까지 앞바다를 싹 메워버리면서 어항의 기능을 상실했다.

예전에는 배를 타고 들어갔으나, 이제는 가볍게 걸어 들어갈 수 있게 된 망산도, 겉으론 그저보
잘 것 없어 보이는 이 섬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지방문화재로 특별히 지정되었을까?
이 섬을 비롯하여 용원 주택가에 있는 유주각에는 옛 가야국의 숨겨진 이야기가 담겨져있다.


▲ 망산도의 북쪽 부분
섬 안에는 가지각색의 모양을 지닌 바위와 돌들이 오랜 세월을 그렇게 누워있고
섬을 에워싼 갯벌에는 게를 비롯한 온갖 작은 동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부산히 움직인다.
섬 건너로 보이는 곳은 망상도를 육지로 만들어버린 주범, 녹산산업공단


기원 1세기경. 변한연맹(弁韓聯盟)의 하나인 구야국(狗倻國, 지금의 김해)에서 가락국(駕洛國,
금관가야)을 세운 김수로(金首露)는 왕위에 오른지 7년이 넘도록 부인이 없었다고 한다.
보다 못한 신하들은 왕비를 맞이할 것을 줄기차게 건의했는데, 수로왕은
'왕비는 하늘이 정해주
실터이니 너무 걱정들 마시오'
하고는 유천간
(留天干)이란 신하를 망산도로 보내 하늘이 보내주
었다는 왕비를 기다리게 했다.


▲ 망산도로 들어가는 길

저 길은 근래에 만든 것이다. 섬에는 몇십 ~ 몇백년 묵은 나무들과 이상하게
생겨먹은 바위들이 섬의 신비로움을 더해주며 후기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도질제 토기와 연질제 토기 파편들이 나오고 있어 제사관련 유적지로
추정된다.


과연 몇일 뒤, 바다 서남쪽에서 붉은 색의 돛과 기를 단 돌배가 나타났다. 바로 인도 아유타국
(阿踰陀國)의 공주 허황옥(許黃玉)
일행의 배였다.
그들은 파신(派神)의 노여움을 잠재우고자 배에 파사석(婆娑石)을 잔뜩 실고 왔는데 가야에 도착
후 그 돌로 탑을 만드니 그것이 바로 오늘날 김해지역에서만 발견되고 있는 역삼각형 모양의 탑,
파사석탑이라고 한다.


▲ 망산도를 바라보며 서 있는 유주정(維舟亭)
근래에 솟아난 정자로 망산도와 유주암, 가덕도, 녹산산업공단이 한 눈에 바라보인다.


배가 떴다는 보고를 받은 수로왕은 친히 망산도로 나와 환영행사장을 만들어 그들을 예로써 맞이
했으며, 김해로 돌아와 성대하게 국혼(國婚)을 치렀다고 한다.

허황옥 일행이 상륙하자 그들이 탄 돌배는 파도에 확 뒤집혀 바위로 변하니 그것이 망산도남쪽
에 있는 '유주암'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 형상이 배를 뒤집어 놓은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별
로 그리 보이진 않는다. 아마도 막대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유주암의 외모에도 많은변화가 있
었을 것이다. 하긴 세월의 짓궂은 장난을 누가감히 당해 내겠는가?

유주암의 유(維)에는 '붙들어 매다' '굵은줄로 잡아 매다'라는 뜻이 있어, 배가 뒤집혔다기 보
다는 배를 댄 곳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듯 싶다. 그들의 배가 닻을 내린 곳이 아마도유주암인
것 같다.


▲ 붉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싸인 유주각(維舟閣)


허황옥이 정말로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는지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하나 대체로 한나라를 무너뜨린
왕망(王莽) 세력이 후한 광무제(光武帝)에게 쫓겨 배를 타고 가야로 망명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마한(馬韓)이나 낙랑(樂浪)지역에서 왔다는 이야기, 요즘은 학계 일부에서 진짜로 인도에서 남방
불교를 가지고 왔다는 이야기까지 정말로 다양한 학설이 나와 있다.
하지만 현재로써는 허씨 세력의 정체에 대해서는 속시원한 해답은 없다. 하지만 본 글에서는 '삼
국유사(三國遺事)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나온 망산도에 얽힌 이야기에만 충실할까 한다.

망산도, 유주암에 얽힌 이야기는 수수께끼의 제국, 가야의 몇 안남은 이야기중에 하나이다. 하
지만 그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으면 정말로 곤란하며, 그 전설에 숨겨진 뜻을 찾거나, 해석을
시도해야 된다.

이 곳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허씨라 상징되는 세력은이 곳으로 들어왔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금관가야(金官伽倻)의 핵심으로 상징되는 김수로는그세력을 자신의 신하로 받아들이고 그 세력
을 이끄는 우두머리의 여인을 맞이하여서로 혈연관계를 맺었다고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 유주각 비석 - 경남 지방기념물 89호
비문(碑文)에는 '大駕洛國 太祖王妃 普州太后
許氏 維舟之地'라 쓰여 있다.
즉 '대가락국(가야국) 태조대왕(김수로왕)의왕
비 보주태후(혹은 진주태후)허씨의 배가 이른
곳, 배를 댄 곳'
글씨는 붉은 색이며 김해허씨 문중에서 시조(始
祖)의 한반도 상륙을 기리기 위해세웠다.

▲ 유주각과 담장 하나를 사이 둔, 최태원공
송덕비(崔太原公 頌德碑) -
비석의 모습이 참 특이하다, 비신(碑身) 머리
에 얹혀진돌에는 연꽃 무늬로 보이는 꽃무늬
가 새겨져 있다.
최태원이란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음..


유주암에는 유주암(維舟岩)이라 쓰인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용원 주택가 안쪽에는 허태후의 한반
도 상륙을 기리기 위해 세운 유주각이 있다.

망산도와 유주암, 유주각은 한 덩어리로 경남 지방기념물 89호로 지정되었으나, 녹산산업공단이
만들어지면서 망산도와 유주암을 비롯한 용원앞바다가 부산광역시 강서구에 편입되었다. 광역자
치단체가 지정한 지방문화재가 광역행정구역이 바뀔 경우는 기존의 등급과 번호를 버리고 새 광
역단체에서 새롭게 지정한다. 그런데 이들은 2008년 4월까지 따로 분류치 않고 경남지방기념물
로 두다가 2008년 4월 2일, 망산도와 유주암을 따로 떼어내 부산지방기념물 57호로 새롭게 지정
하였다. 단 유주각은 진해 땅이라 경남지방기념물 89호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 용원 유주각, 망산도, 유주암 찾아가기 (2008년 8월 기준)
- 지하철 1호선 하단역(5번 출구)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부산시내버스 58-1, 58-2번, 강서구마을
버스 9-1,17,17-1번을 타고
용원4거리 하차. 용원선착장 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왼쪽으로 보인
다.
- 진해시내에서 진해시내버스 105, 115번을 타고 용원 하차. 정류장 앞에 망상도가 있다.
- 부산서부터미널(2호선 사상역 3,5번 출구)에서 진해 방면 직행버스를 타고 용원 하차. 용원선
착장 쪽으로 10분 정도 걸으면 된다.
* 소재지 : ① 망산도와 유주암 -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188
② 유주각 - 경상남도 진해시 용원동 197



오랜 만에 찾은 용원 포구에서 이렇게 옛 가야국의 흔적을 더듬고 부산으로 넘어가기 위해 용원
4거리에서 부산시내버스 58-2번(용원 ↔ 사하구청)을 타고 부산신항만, 녹산공단, 낙동강하구둑
을지나 부산시내로 들어섰다.

용원을 출발하면서 부산에서 만날 형님에게 연락을 취하니 1시까지 자갈치역으로 오라고 그런다.
그래서 하단에서 지하철로 바꿔타고 자갈치역에 이르니 여인네 1명을 대동하고 나보다 늦게 당
도했지만 마중을 나와주었다.

그들은 부민동에 괜찮은 주막이 있다면서 나를 중부등기소 건너편에 있는 '원조18번완당'집으로
인도했다. 여기가 완당과 발국수로 유명한 집이라고 하는데 오후 2시임에도 먹는 사람과 기다리
는 이들로넝실넝실 파도를 이룬다.

간신히 자리가 나서 발국수(모밀국수) 3인분과 완당 하나를 시켰다. 완당은 부산 지역에주요 먹
꺼리로 말로만 들었을 뿐, 그 실체를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에 완당이란 것을 체험하고자 완
당 하나를 부탁했는데, 만두피와 조그만 만두 그리고 여러 가지 재료로 만든일종의국이었다.

발국수도 생소한 이름의 국수인지라 '혹시 발(足)과 관련된 국수인가' 싶은 정말 말도 안되는 생
각까지 했었는데 직접 보니 모밀국수를 소쿠리 같은 발에 얹혀서 주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발
국수이다.
보통 모밀국수를 먹을 때 국수 받침대로 네모난 그릇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동그란 발(소쿠리)이
그 역할을 대신 한다. 그 외에 찍어 먹는 간장이나 국수 맛은 비슷하다.

발국수 1인분에 발 2개가 나오고, 그 안에 먹음직스런 모밀국수가 수줍은 듯 담겨져 있다. 겉으
로 보기에는적어 보이지만 먹고 나니 배때기가 한가득 불러 졸음의 100만 대군이 밀려 온다.

점심으로 부산 지역 먹꺼리를 즐겁게 체험하고 어디로 갈까 궁리하다가 형님의 권유로송도해변
으로 갔다. 택시를 타고 내린 곳은 암남공원 주차장, 여기서 암남공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해안
절애(海岸絶崖) 쪽으로 난 해변산책로를 따라 송도해수욕장까지 걸어갔다.


▲ 암남공원 주차장


해변산책로의 구조는 해운대 동백섬과 비슷하다. 다만 이 곳은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벼랑에 가
까운 절애(絶崖)에 잔도(棧道)와 같은 산책로를 깔아 놓은 것이라서 거닐 때 약간의 주의가 요망
된다.

머리털이 날라갈 정도로 시원한 바닷바람에 내 몸을 끈적거리게 지배하던 더위의 부산물(땀)들은
나살리소 도망을 친다.
하늘의 표정을 보니 당장이라도 폭우가 엄습할 것처럼 인상을 잔뜩 쓰고 있다. 처음에는 구름만
잔뜩 끼고 바다안개만 살포시 드리운 정도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뭉게구름의 비중이 높아져 간다.
하지만 우리는 별 생각도 하지 않고 천천히 산책로를 거닐었다. 하긴 우리뿐이랴 산책로를 찾은
사람들, 바닷가에 내려가 바닷물과 찐한 스킨쉽을 즐기며 피서를 즐기는 수천의 사람들 모두마
찬가지였다.


▲ 송도 해변 산책로 (1)
중국 진령산맥(秦嶺山脈)에 서천(서촉)지방으로 통하는 험준한 잔도를 보는 것 같다.
벼랑 아래 바닷가에는 피서삼매에 빠진 피서객들로 가득하다.

▲ 송도 해변 산책로 (2)
도 중간에 흔들다리도 있어 산책의 즐거움과 스릴을 더해준다.

▲ 거침없이 펼쳐진 송도 앞바다 (남해바다)
이렇게 보니 말로만 듣던 지구의 둥그런 모습이 더욱 실감이 난다.
마음이 뻥 뚫릴 것처럼 시원스레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니 속세의 온갖 번뇌(煩惱)들로
가득했던나의 마음과 머리가 잠시나마 후련해 지는 것 같다.

▲ 바다 안개로 희미하게 보이는 영도와 봉래산

나에게 그들의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얇은 바다 안개로 몸을 가리려고 애를 쓴다.


▲ 월척을 꿈꾸는 어선들 ~~


바다 건너편으로는 부산의 그림자 같은 섬, 영도(影島)가 떠 있다. 영도의 서쪽 해안도로인 절영
로와 영도의 남쪽을 이루고 있는 동네, '동삼동'이 보이고, 영도를 품에 안은 봉래산이 구름에
둘러싸여 자못 신비로운 모습을 연출한다.

영도는 섬이긴 하나 한반도와 다리 2개(영도대교, 부산대교)로 끈끈하게 이어진 연륙도이다.하
지만 다리 2개로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혹 떠내려갈지도 모를 영도를 단단히 매어두고자 송도 앞
바다에 '남항대교(2008년 7월에 개통됨)'란 새로운 다리를 심고 있다.

암남동과 영도의 신선동을 잇는 약 2km에 다리로 광안대교만은 못하지만 자못 웅장해 보인다.
저 다리가 구름처럼 놓이면 부산대교와 영도대교의 짐이 상당수 덜어지고 부산 서부에서 영도와
의 접근성도 많이 좋아질 것이다.


▲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 보이는 남항대교(2008년 7월에 개통됨)



▲ 피서삼매의 현장들 (3장)


▲ 다이빙 현장에서


송도해변을 찾은 사람들은 대체로 그들끼리만 피서를 즐기며 요란법석을 떨지 않고 얌전히(?) 놀
고 가는데 반해 어떤 이들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일종의 법석을 떨기도 한다.
마침 피서객과 산책객들의 시선을 한없이 사로 잡는 무리들이 있었으니.. 10대 후반에서20대 초
반으로 보이는 애들이 벼랑 위에 높다랗게 자리를 잡고 다이빙을 즐기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다이빙에 시선을 곤두세우고, 뛰어내릴 때마다 환호성을 지른다.
그들은 어떻게든 멋지게 폼을 부리고자 온갖 기교(?)를 다부리고, 기교의 정도에 따라 환호성의
정도도 현저히 다르다.
하지만 높이가 높이인지라 아무리 혈기왕성한 나이라 하더라도 뛰어내리기에는 다소 겁이 날 것
이다. 몇몇 이들은 바로 투신을 못하고 머뭇거리는데, 구경꾼들은 '어서뛰어내려라, 남자가 그
게 뭐야' 하며 야유나 응원을 보낸다.


▲ 구경꾼들의 성화에 드디어 몸을 던진다. 그런데 다이빙 폼은 별로..

▲ 드디어 바닷 속으로 풍덩~~ 시원하겠다.

▲ 다음 타자가 다이빙을 준비하고 있다. 아래로는 어린 여인네들이
삼삼오오 앉아 그들의 용감한 다이빙을 구경하며 환호를 지른다.
상황이 저러니 남자들이 어찌 다이빙을 마다하겠는가.

송도해수욕장을 코 앞에 앞둔 시점에서 인상을 잔뜩 찌푸리던 하늘이 돌연 벼락을 내리친다.
벼락이 바다에 콰당 내리 꽂히는 모습을 3번인가 봤는데, 등골이 오싹한 것도 모잘라 간이 콩알
만해진다.

벼락이 치고 그 다음 비가 퍼붓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빗방울의 양이 적어서 해서는 안될 방심을
하고 있었는데, 빗방울의 정도가 심해지면서 그제서야 '이거 정말 장난아니네~' 서둘러 해수욕장
으로 대피를 한다.
우리 뿐만 아니라 물놀이를 하던 사람들도 무차별 투하되는 여름제국의 폭격으로 우왕좌왕 피난
민마냥 서둘러 보따리를 싸들고 도망치기에 바쁘다.

처음에는 잠시 거쳐가는 소나기라 여겼으나 이는 소나기가 아니었다. 내가 부산을 벗어날 때까지
비는 계속 되었으며, 그 시간 양산, 창원 지역에도 많은 비가 대지를 적셔되었다고 한다.

간신히 해수욕장 부근 횟집에 들어가 잠시 폭격을 피했다. 하지만 횟집의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
니다. 회라도 한 접시 먹으면 모를까?

빗방울이 잠시 가늘어진 틈을 타 밖으로 나왔다. 송도해수욕장 백사장은 이미 피서객들이 말끔
히 철수한 상태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몰려와 피난 준비에 부산하다.

송도해변은 1997년 이후 딱 10년 만에 방문이다. 그 시절에 송도해변은 모래도 딱딱하고 물도 더
덥고 거의 버려진 해변에 가까워 실망을 금치 못했으나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그 사이 많이
업그레이드가 되면서 제법 해수욕장다운 면모를 갖추었다. 아쉬운 건 여름의 폭격으로 백사장에
는들어가지도 못했다는 것.


▲ 여름 제국의 공습으로 잠시 어둠에 잠긴 송도해수욕장

* 송도해수욕장, 송도공원(송도해변), 암남공원 찾아가기 (2008년 8월 기준)
- 지하철 1호선 남포동역(1번출구)에서 부산시내버스 7, 9, 9-1, 26, 30, 71번 이용 송도해수욕
장 하차, 그 중 7, 9, 9-1, 71번은 송도를 지나 암남공원까지 들어간다.

잠시 주춤했던 빗방울은 그새 전력을 재정비했는지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맞으면 엄청 아플 것 같은 빗줄기에 잠시 안도의 한숨을 쉬던 피난민(?)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고
우리는 부근 편의점으로 비집고 들어가 우산 2개를 사들고 해수욕장 길을 따라 피난 길을 재촉
했다.

송도해변 주변 길은 한꺼번에 나가려는 피난민들의 수레로 거대한 주차장을 이루었고,시내로 나
가는 버스는 그야말로 콩나물시루를 방불케 했다.

거북섬 입구를 지나 고려냉장 앞에 이르니 빗방울의 투하량도 더욱 증가되고 거기에 바닷바람까
지 세차게 몰아쳐 우산으로 버티기에는 정말 한계에 이르렀다. 거기에 도로까지 침수되어 고려
냉장건물로 급히 피신했다.
하지만 상황은 좋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아 그냥 헤쳐가기로 모질게 마음을 먹고 비바람과 싸우
며 간신히 돌진해 가는데, 오르막길 부분에서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려와 자칫 아래로 휩
쓸려 갈 뻔 했다. 다행히 화는 면했지만 바지와 신발이 모두 젖어버렸다.

간신히 버스가 다니는 길로 나왔으나 침수된 것 마찬가지다. 수레들은 우리에게 무슨 감정이라
도 있는지 자꾸 흙탕물을 우리에게 날려 완전 처참한 몰꼴이 따로없다.

시간은 어느덧 6시가 다되가고 나는 서울로 가기 위해 길을 서둘렀다.
송도대림아파트에서 부산시내버스 96번을 간신히 잡아타고 자갈치역으로 나와 부산에서 나를맞
이해 준 그들과 아쉽지만 작별을 고하며, 부산의 북쪽 관문 노포동으로 올라갔다.

부산 밖으로 떠나는 버스는 피서객들로 넘쳐나고 서울로 가는 7시 고속버스도 이미 매진이다. 다
행히 그 1분 전인 6시59분에 임시차가 배치되어 그 차에 몸을 의지하며 서울로 올라왔다, 59분
차라고 하지만 7시차와 동시에 출발했으며 서울까지는 4시간 40분이 소요되었다.

-> 이리하여 창원, 진해, 부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 답사, 촬영 일시 - 2007년 7월 29일
* 상편 작성 시작일 - 2007년 9월 23일
* 상편 작성 완료일 - 2007년 9월 27일
* 숙성기간 ~ 2007년 9월 28일 ~ 2008년 9월 10일
* 공개일 - 2008년 9월 10일부터


Copyright (C) 2008 by 박융(Park Yu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