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이 남쪽 끝에 빚어놓은 대작품, 천성산 홍룡폭포 (원효암)
' 백두대간의 힘찬 줄기가 남쪽 끝에 빚어놓은 대작품
~ 천성산 홍룡폭포 '
▲ 홍룡사 관음전과 홍룡폭포
가을이 슬슬 그 절정을 준비하던 10월의 첫 주말 절친한 선배를 보고자 동북아시아 제1의
항구도시인 부산을 찾았다. 부산의 번화가인 서면(西面)에서 그를 만나 부근 연지동의 더
덕삼겹살로 유명한 고깃집을 찾았다. 삼겹살과 더덕,고추장이 3위1체가 되어 노릇노릇 여
물어가는 더덕삼겹살에 소주를 겯드리며 오랜만에 회포를 푼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자
서면으로 나와 2차로 왜식(倭式) 주점에서 거하게 술을 들이키며 해롱해롱한 상태로 그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날을 마무리했다.
드디어 다음 날 아침, 아침햇살의 눈부신 재촉으로 슬금슬금 눈이 뜨인다. 이날은 홍룡폭
포와 홍룡사를 간직한 천성산으로 길을 떠나는 날이다.전날의 취기는 말끔히 사라진 개운
한 마음으로 길을 나서 명륜동전철역에서 금정산과 천성산, 신불산 등산객과 가을 나들이
객으로 뒤범벅을 이룬 양산시내버스 12번을 타고 홍룡폭포 입구인 대석리에 발을 내린다.
우선 늦었지만 아침을 먹기로 하고 주변을 기웃거리는데 오전 10시도 안된 시간이라 문을
연 식당은 보이질 않는다. 다행히 막 빗장을 연 만두집이 있어 그곳의 첫 번째 손님이 되
었다. 3가지의 만두로 시장한 배를 달래고 있으려니 만두집 주인이 캠코더를 가져온다.그
는 만두의 후식으로 천성산 화엄벌에서 찍은 동영상을 보여주었다.화엄벌은 천성산 남쪽
에 있는 고지대로 원효대사가 당나라에서 온 제자 1,000명에게 화엄경(華嚴經)을 설법(說
法)하던 곳이라 전한다. 그의 캠코더에는 은빛 억새의 즐거운 가을향연이 가득 담겨져 있
었다. 천성산에 이런 곳이??다들 처음 들어본 화엄벌 억새밭에 감동하며 군침을 꼴깍 삼
킨다. 원래는 홍룡폭포를 보러 온 것인데, 화엄벌의 유혹에 그만 화엄벌까지 욕심을 부리
기로 했다.
대석리에서 홍룡사까진 거의 50분 정도를 걸어가야 된다. 화엄벌 동영상으로 칭찬을 들은
식당 주인은 3,000원을 주면 홍룡사까지 모시겠다고 제안을 건넨다.우리야 반대할 이유는
없어 흔쾌히 승락하고 그의 수레로 편안하게 홍룡사 앞까지 들어갔다.
그는 오랫동안 대석리에 살면서 천성산에 자주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천성산에 대한
애정이 무척 남달라 보였다. 마치 천성산 가이드인양 열심히 산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 그
는 우리와 작별을 고하면서 화엄벌과 원효암은 꼭 가보라며 신신당부를 했다.홍룡사 계곡
에 무지개처럼 걸린 반야교(般若橋)를 건너니 바로 관음도량 홍룡사가 우리를 반긴다.
♠ 홍룡폭포를 껴안은 조그만 산사,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 |
홍룡사는 천성산 남쪽 계곡에 둥지를 튼 산사로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 소속이다. 홍룡폭포를 | |
▲ 중생구제를 향한 부처의 은은한 메세지가 | ▲ 홍룡사의 법당인 대웅전(大雄殿)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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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설전(無說殿) | ▲ 산신각(山神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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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음도량 홍룡사 둘러보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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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청이 칠해져 있지 않은 나무색 그대로의 대웅전 내부에는 1979년에 조성된 3존불이 모셔져 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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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설전 불단에는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복잡미묘한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모셔져 있다. 여기서 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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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룡사에서 폭포로 가려면 수정문이란 돌문 ◀ 홍룡폭포에서 내려온 계류(溪流)가 |
♠ 붉은 용이 승천했다고 전하는 천성산 제일의 절경 |
홍룡사를 품은 천성산의 두툼한 허리에 비단폭같은 하얀 띠가 하나 둘러져 있다. 바로 홍룡폭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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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성산 800m 고지에 터를 닦은 조그만 산중암자 ~ 원효암(元曉庵)
홍룡사를 둘러보고 화엄벌의 억새를 만나기 위해 천성산을 오른다. 절을 나오면 바로 왼쪽
으로 등산로가 있는데,처음에는 경사가 완만하나 각박한 세상살이를 상징하듯 경사가 서서
히 급해진다. 오랜만에 산을 올라서 그런지 여간 힘들지가 않다.예전에는 정말 다람쥐처럼
날라갔었는데, 나도 어느덧 30고개를 넘고 말았다. 금방 나오겠지 싶은 화엄벌과 원효암은
좀처럼 나오지를 않는다.한 발짝, 두 발짝 내딛으면서 하늘도 그만큼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홍룡폭포에 반하여 천성산에 깃들여진 가을은 산자락에 고운 단풍을 그려 천하에 선보인다.
아직 단풍이 절정에 이르진 못했지만 1달 정도 지나면 산 전체가 붉은 단풍잎으로 활활 타
오를 것이다.
30분 정도를 오르니 오르막길은 끝나고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여기서 화엄벌과 원효암으로
갈라지는데, 나의 제안으로 우선 원효암부터 가기로 했다.5분 정도를 더 낑낑대며 산을 타
니 그제서야 조그만 산중암자, 원효암의 속살이 우리를 반긴다.
천성산 800m고지에 둥지를 튼 원효암(元曉庵)은 부처의 세계를 상징한다는 수미산(須彌山)
꼭대기에 들어앉은 듯하여 아래서 보면 정말 하늘 높이 떠있는 신선의 별장같다. 하늘과도
무척이나 가까워 아래 세상과 공기부터가 확연히 틀리다. 확 트인 공간에 자리하여 조망도
가히 명품급으로 이곳에 올라서면 양산 땅이 바라보인다. 다만 아쉬운 건 운무(雲霧)가 천
성산 허리를 얇게 두르고 있어 보이는 시야가 그리 넓지는 못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인 원효암은 홍룡사와 더불어 7세기 중반에원효대사(元曉大師, 617~
686)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원효암에선 646년에 창건되었다고 우기나 그때는 그의 나이 불
과 29살이다. 그 이듬해 황룡사(皇龍寺)의 주지가 되긴 하지만 독자적으로 절을 세울 정도
는 아니었던 것 같다. 또한 그 당시는 신라의 서울인 경주를 중심으로 절이 지어지던 시절
이라 굳이 이곳까지 내려와 절을 지을 이유는 없다.
원효암의 창건설화도 홍룡사와 대체로 비슷하다.당나라에서 그의 현판을 들고 찾아온 태화
사 승려 1천 명을 거둔 원효는 천성산에 89개 암자를 지어 그들을 머물게 했는데,원효암이
그 암자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허나 이는 어디까지나 믿거나 말거나 설화에 불과하며, 구
체적인 창건 시기는 그 이후이다.
이렇다 할 내력을 남기지 못한 채, 천성산의 운무 속에 살아온 원효암이 다시 세상에 모습
을 드러낸 것은 1905년으로 효은(曉隱)화상이 중창을 했다.1906년에는 인법당 오른쪽 바위
에 아미타삼존불을 조성했으며, 1976년 경봉(鏡峰)은 종각과 범종을 조성했고, 1980년에는
승려 박지완이 인법당을 신축했다.특히 1991년에 일어난 신기한 이적(異蹟)은 원효암을 일
약 유명하게 만들었다.
1991년 여름 어느 날의 일이다.비가 오지 않는데도 천둥과 번개가 2시간 동안 요란하게 춤
을 추다가 원효암 동쪽 사자봉을 향해 벼락이 내리쳤다.다음날 사람들이 가보니 글쎄 벼락
을 맞은 암벽에 부처의 형상이 조각이 된 듯 드러나 있는 것이다.그 소식을 들은 통도사의
월하(月下)대종사가 바로 달려와 이를 친견하면서 하늘빛이 빚어서 만들었다 하여 천광(天
光)이라 하고, 바위가 향한 동쪽(동방)에는 약사불이 있으므로 천광약사여래(天光藥師如來)
라 하였다. 과연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천둥번개가 바위를 쪼아 불상 비슷한 모양으로 빚
었다는 것에 절로 머리가 숙여질 정도로 신비롭기 그지없다.아무리 인간이 대단하다 똥폼
을 잡아도 위대한 자연 앞에서는 역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하지만 아쉬운 건 그날 우리는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애당초 이곳까지 오를 생각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
다.
자연의 이적이 나타난 그 해, 후불탱화와 신중탱화 등을 조성했고 2004년에 인법당의 단청
을 새롭게 칠해 지금에 이른다. 건물로는 법당인 인법당(人法堂)을 비롯하여 삼성각, 요사
, 의상대 등 5~6동이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인법당에 봉안된 석조아미타여래좌상과
그 좌측에 있는 마애아미타삼존불이 있다.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은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보
물로 1648년에 조성되었다고 하며, 불상의 배에서 불상 조성시기가 적힌 복장기(腹藏記)와
유물이 나왔는데, 불상과 복장유물(腹藏遺物)은 경남 지방유형문화재 430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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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법당 좌측 바위에 자리한 마애아미타3존불은 1906년에 조성된 것으로 조선후기에 만들어
진 몇 안되는 마애불이다. 불상 왼쪽에 '世尊應化二千九百三十三年四月日(세존응화 2933년
4월일)'이라 새겨진 명문은 조성 시기를 알려주며, 불상 위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 구름처럼 떠있다.두광(頭光)을 갖춘 3존불은 선각(線刻)으로 얇고 은은하게 표현되었으
며, 가운데로 서방정토(西方淨土)의 주인인 아미타불이, 좌우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大
勢至菩薩)이 아미타불을 향해 합장인(合掌印)을 선보인다. 지방문화재긴 하나 이를 알리는
안내문도 없어 자칫 그냥 지나칠 뻔했다.바위에 뭔가 새겨져 있음을 직감하고 다가서니 선
으로 처리된 마애불이 나를 맞는다. 건강상태가 양호하여 근래에 만든 불상으로 여겼으나,
나중에 알아보니 몇개 없는 조선후기 마애불이라는 것이다.
원효암에 들어서니 어느덧 12시다. 마침 절에서는 점심공양이 한참이다. 우리도 배고픈 배
를 위로코자 공양에 동참했다.공양은 흰 쌀밥에 김치와 콩나물 등의 나물, 그리고 국이 전
부다. 나물과 밥에 고추장을 첨가하여 비빔밥으로 비벼먹는다. 마침 신도 아줌마가 불상에
공양한 것이라며 콩나물국을 나에게 준다. 국은 이미 식은 것이라 안받을려고 했으나,부처
에게 공양한 것이라 맛있다며 적극 들이미는 통에 밥그릇에 담아가지고 왔다. 이미 부처가
식사를 하며 입댄(?) 음식을 먹어보기는 처음인데, 그에게 바친 음식이라는 이미지 때문인
지 맛이 기존 콩나물국과는 확연히 틀린 것 같다.위대한 사람과 식사를 같이한 것 같은 영
광된 기분이 밀려온다. 하늘과 가까운 곳에서 먹는 음식은 그게 무엇이든 다 맛있는 것 같
다.천하가 훤히 펼쳐진 산사에서의 점심공양은 색다른 맛을 선사하며, 밥맛을 더욱 꿀맛으
로 인도한다.
이렇게 점심을 먹고 화엄벌로 갈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의논을 하였다. 다들 오랜만의
산행이라 지쳐있는 상태, 나도 그렇고,그래서 화엄벌은 다음으로 미루고 수레길을 따라 속
세로 내려갔다.미륵전 부근 약수에서 디저트로 물 한바가지를 떠 마시니 얼마나 시원하던
지 마음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절을 찾은 중생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고마운 약수이나 가
뭄이라 나오는 양이 너무 적어 보기에도 무척 답답하다.
원효암에서 담아온 사진은 아쉽게도 마애불 밖에는 없다. 부산 선배도 거기서 많은 사진을
찍었으나 모두 분실했다고 한다.서울에서 가기가 정말 쉽지 않은 곳인데 정말 통탄할 따름
이다.
※ 원효암 관람정보 (2009년 6월 기준)
* 교통편은 홍룡사 부분 참조
* 원효암 매점에서 셔틀버스가 1일 3~4회 가량 운행된다. 첫차는 대략 오전 9시, 막차는
오후 1시 경이다.절과 군부대 관련 차량을 제외한 일반 차량은 출입이 통제되므로 매
점 부근에 주차하여 버스를 타야 된다. 버스로 절까진 15분 정도 걸리며 길이 매우 험
난하다. 거의 죽령이나 한계령 수준,
* 등산으로 가는 경우 홍룡사에서 40분 정도 걸리며,원효암 매점에서 찻길을 따라 올라
가는 경우 거의 2시간 정도 걸린다. 허나 이 길은 군작전도로로 오후 이후로는 통행에
제한이 따른다.
* 인법당 안에 조선 중기 불상인 석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으며 그 좌측 바위에 마애아미
타삼존불이 있으니 놓치지 말고 꼭 둘러보자.
* 원효암 동쪽 산정에 천광약사여래불이 있다. 지나치기 쉬우니 꼭 살펴보자.
* 소재지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산 1-1 (☎ 055-385-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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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세로 내려갈 때는 원효암 셔틀버스를 이용하려고 했다. 하지만 절 어디에서도 버스시간
표는 붙여져 있지 않았으며 버스로 보이는 차량도 눈에 띄질 않았다. 절 종무소에 시간을
물어보면 되겠지만 이미 절을 벗어난 상태라 다시 되돌아가기도 귀찮다. 아무래도 버스는
틀린 듯 싶어 다시 두 다리의 의존해 속세로 내려간다.
원효암으로 가는 수레길은 천성산에 자리한 군부대가 뚫어놓은 군작전도로이다. 원효암도
어부지리로 저 길을 통해 수레 접근이 가능하다.포장길과 비포장길이 섞여있으며 길 좌우
로 억새들이 마음껏 향연을 펼쳐 보인다. 비록 화엄벌 억새는 만나지 못했지만 이곳의 억
새도 화엄벌의 그것처럼 적당하게 밭을 형성하고 있다. 억새밭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화
엄벌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대신한다. 그 사진으로 화엄벌까지 갔다고 우겨볼 심정으로
말이다. (그 사진은 모두 분실됨..)
내려가는 도중에 덕계리(서창)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으며, 홍룡사에서 오르는 등산로와
달리 인적이 뜸해 우리가 거의 전세를 내버리다 싶이 했다.뱀꼬리처럼 구불구불하게 이어
진 그 기나긴 길은 거의 6km로 수레의 통행도 거의 없는 강원도 두메산골 길을 걷는 기분
이다. 다리가 조금 아프긴 했지만, 언제고 거닐고 싶은 길이다.다만 군도로로 중간중간에
군사시설이 옥의 티처럼 버티고 있으며,지뢰가 묻힌 곳도 여럿 있으니 주의 표시가 된 곳
은 감히 들어가지 않도록 한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 길을 1시간 30분 정도를 걸으니, 그제서야 아랫 세상에 이
른다. 거의 종점에 다다른 시점에 이르자 굳게 닫힌 철문이 우리의 발목을 붙잡으려고 든
다.허나 다행히 문 곁에 사람이 통행할 수 있는 커다란 개구멍이 뚫려져 그 구멍을 통해
거뜬히 밖으로 나온다. 문이 철석같이 닫힌 걸 보니 그날 수레의 통행시간도 끝난 모양이
다. 아까 한참 내려가는 도중에 먼지를 자욱히 일으키며 힘겹게 산을 오르던 원효암 셔틀
버스를 보았는데, 홍룡사 밑에 있는 원효암 매점에서 버스 시간을 보니 그게 절로 오르는
마지막 차였던 것이다. 그 차는 낼 아침 9시에 다시 속세로 내려온다. 하염없이 기다리다
가는 정말 낼 아침까지 거기에 있을 뻔 했다.
내려올 때 파전에 동동주 한잔 하려고 했는데 파는 집은 보이지 않는다. 원효암입구 철문
에서 20분을 걸어 35번 국도가 달리는 대석에 이른다. 여기서 음료수 하나 사먹고 양산시
내버스 12번을 타고 부산으로 들어갔다. 이리하여 홍룡폭포 나들이는 약간의 여운을 남기
며 대단원의 막을 고한다.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0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
집니다. <단 블로그는 한달까지이며, 원본(☞보기)은 2달까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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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 촬영 일시 - 2008년 10월 5일
*작성 시작일 - 2009년 1월 12일
*작성 완료일 - 2009년 1월 16일
*숙성기간 ~ 2009년 1월 16일 ~ 2009년 6월 25일
*공개일 - 2009년 6월 25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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