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가 자라는 곳, 천안 광덕사
'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호도나무가 숨쉬고 있는 곳 ~
천안 광덕사(廣德寺)'
계절의 여왕이라 일컬어지는 5월의 마지막 날, 아산에 사는 어여쁜 후배 여인네와 천안의 명
찰(名刹) 광덕사를 찾았다.이곳은 광덕산 북동쪽 자락에 안긴 오랜 절로 우리나라 호도의 주
산지(主産地)인 광덕면 서남쪽에 자리해 있다.천안의 명물인 호도의 고향답게 광덕면은 그야
말로 호도나무가 천지를 가득 메운다.
천안 제일의 고찰로 손꼽히는 광덕사는 조계종 소속으로 공주에 있는 마곡사(麻谷寺)의 말사
(末寺)이다. 신라 진덕여왕 5년(眞德女王,652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그 시절 천안 지역은 엄연한 백제의 영토였다.
600년 서동요(薯童謠)의 주인공 무왕(武王)이 백제 30대 제왕으로 등극하면서 백제와 신라는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무왕은 50년 가까이 신라에게 망신 당한 자존심과 영토를 회복하
여 백제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했다.자연히 처가댁(그의 부인이 신라 진평왕의 딸인 선화공주
이다)인 신라와 충돌할 수 밖에 없었고, 1년이 멀다하고 두 나라는 치열하게 맞짱을 떴다.오
죽하면 바다건너 당나라까지 혀를 내두르겠는가? 상황이 이러한데 신라 불교의 1인자 자장율
사가 어찌 적국의 땅에 절을 세우겠는가? 아무리 고승(高僧)이라 할지라도 적국의 승려가 자
기 땅에 절을 세우는 것에 대해 그냥 있지는 않았을 것이며 1680년 안명로(安命老)가 쓴 '사
적기(事蹟記)'에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7년(832년)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다.
신라 흥덕왕 때는 진산대사(珍山大師)가 석가의 치아 1매와 사리 10과, 승가리(僧伽梨) 1령(
嶺), 불좌(佛座) 1병을 봉안하면서 크게 중창했다고 하는데 안명로의 언급대로 실제 창건 시
기가 이때일 듯 싶다.
그후 600년에 세월이 흘러, 1464년 온양온천으로 놀러간 세조(世祖)는 광덕사에 부처의 치아
와 사리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환궁하는 길에 이곳을 잠시 들렸다.세조는 광덕사 승려의 부역
(負役)을 면해주고 절에 위전(位田)을 하사하는 교지(敎旨)를 내렸는데, 그것이 바로 광덕사
소장면역사패교지(廣德寺所藏免役賜牌敎旨, 보물 1246호)이다.
조선 왕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28방(房), 89개 암자, 9개의 금당(金堂),80칸의 만장각
(萬藏閣), 3층의 천불전(千佛殿)을 세워, 경기도와 충청도에서 가장 큰 절로 성장하게 된다.
허나 임진왜란으로 모조리 잿더미가 되어 간신히 대웅전과 천불전 등을 다시 지었으나, 19세
기 이후 문닫기 직전에 이른 것을 1981년 김동진(金同珍) 주지승이 크게 불사를 일으켜 비록
옛 명성만은 못하지만 천안 제일의 사찰로 발돋음하게 되었다.
경내에는 법당인 대웅전과 보화루, 적선당, 명부전, 산신각 등 7~8동의 건물이 있으며, 소장
문화유산으로는 광덕사소장면역사패교지(보물 1246호),노사나불괘불탱(蘆舍那佛掛佛幀, 보물
1261호) 등의 국가지정 보물 2점과 천연기념물인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400년 먹은 호도
나무가 있고, 대웅전과 부도, 석사자 등 지방문화재 6점을 보유하고 있다. 그 외에 보물 390
호인 고려사경(高麗寫經) 6권이 있었으나, 지금은 서울 조계사(曹溪寺) 불교중앙박물관에 가
있다.
산사(山寺)의 그윽한 향기와 정취, 정적(靜寂)이 가득 깃들여져 있으며, 호도의 향기까지 듬
뿍 가미된 광덕사 경내를 하나씩 둘러보도록 하자.
※ 천안 광덕사 찾아가기 (2009년 7월 기준 / 서울 기준)
* 서울(청량리, 서울역, 용산)에서 1호선 천안,신창행 전철이 거의 2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용산역에서 급행전철이 1~2시간 간격으로 떠난다. 서울역(지상역)에서도 출퇴근 시간에 한
해 급행전철이 운행된다
* 서울역(경부선 열차)과 용산(호남, 전라, 장항선 열차), 영등포역에서 무궁화호, 새마을호
열차가 1시간에 4~5회꼴로 떠난다.
* 부산, 동대구, 대전, 광주, 목포, 마산, 포항, 전주, 군산에서 천안행 열차가 있다.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 동서울터미널, 남부터미널에서 천안행 고속/직행버스가 자주 떠난다.
* 대전(유성,동대전), 광주, 대구(동대구), 성남, 수원, 청주, 전주, 마산, 구미에서 천안행
고속/직행버스가 운행된다.
* 천안터미널과 천안역에서 천안시내버스 600, 601번이 30~4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50분 정
도 걸린다. 1일 29회 운행(600번 25회, 601번 4회)
* 승용차로 가는 경우
① 경부고속도로 → 천안나들목 → 천안시내(천안대로 경유) → 남부대로 → 광덕방면 629번
지방도 → 풍세 → 광덕사
* 광덕사 종점에서 계곡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광덕사가 나온다.
★ 광덕사 관람 정보
* 입장료와 관람시간 제한은 없음
* 광덕사 버스 종점에 조그만 주차장이 있다.
* 광덕사에서 광덕산의 가마봉을 거쳐 강당골(외암리 부근)로 내려 갈 수 있다. (2시간 소요)
* 광덕사 천불전에서 10분 정도 산을 오르면 기생 부용(芙蓉)의 묘가 있다.
* 보물로 지정된 문화유산 3점은 관람이 불가능하며, 노사나불괘불탱은 석가탄신일이나 기타
불교 관련 행사일에 운이 좋으면 구경이 가능하다.
* 소재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640 (☎ 041-563-7050 / 567-0050)
♠ 오래된 호도나무 그늘에 아늑하게 터를 닦은 |
광덕사 종점에서 광덕사로 길은 광덕산이 베푼 계곡을 옆에 끼고 있다. 졸졸졸♪ 노래를 부
르며 오로지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에 속세의 근심걱정이 잠시나마 잊혀지는 듯
하다.나의 마음을 점유하고 있는 온갖 번뇌를 계곡에 띄워 흘러보내고 싶지만 찰가머리처럼
달라붙은 번뇌는 좀처럼 나를 놓아주려 하질 않는다.
길을 가다보면 '이뭣고'라 쓰인 표석이 나그네의 눈길을 모은다.그 뒤로 연꽃의 보금자리인
조그만 연못이 하나 있는데, 즐거운 향연을 펼칠 여름을 기다리며 연꽃은 오늘도 인내의 세
월을 견뎌낸다. 연꽃은 보통 6월에 아리따운 꽃망울을 선보이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이뭣고 연못을 지나면 절 입구에 으례 심어놓는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 우측에는 '호도전
래사적비'가 세워져 이곳이 우리나라 호도의 고향임을 말해준다.높다랗게 걸린 일주문 현판
에는 '太華山光德寺(태화산광덕사)'라 쓰여있는데 태화산은 광덕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일주문은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으로 문이라고는 하나 여닫는 문이 아닌 뻥
뚫린 형태이다. 절을 찾은 중생들, 산을 찾은 등산객, 부자와가난뱅이, 그 어느 누구도 가
리지않고 반가히 맞이해 주는 부처의 마음이 담긴 문이라 하겠다.문 우측에는 광덕사의 연
혁과 가람도 등이 있는 안내문이 있으니 가볍게 읽어보고 산문으로 들어서면 좋을 것이다.
문을 들어서면 근래에 세운 때깔이 좋은 비석들이 멀뚱히 서 있고 그 뒤로 무려 400살 먹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비석과 그 주변에 아낌없이 그늘을 드리워 준다. 높이는 20m에 이르며
천안시 지정 보호수이다.
느티나무를 지나면 광덕사를 알리는 거대한 표석(標石)이 나온다.표석에는 좌측길로 가라고
화살표가 되어 있으나 실상은 우측길로 가도 광덕사는 나온다. 우측길로 가면 법등(法燈)의
역사가 짧은 안양암(安養庵)이 나온다. 광덕사의 부속 암자로 안양은 서방정토(西方淨土)를
상징한다. 서방정토의 주인은 아미타불(阿彌陀佛)로 그가 봉안된 극락전(極樂殿)이 이 절의
법당이다. 티끌 하나 찾기 힘들 정도로 차분하고 정갈한 분위기가 깃들여져 있으며 하얀 비
단이 깔린 듯한 뜨락을 중심으로 전방좌우 건물들이 자리하여 빈틈이 없을 정도로 안정감이
배어나온다.
♠ 광덕사 내부 (호도나무, 대웅전) | |
며, 60cm 높이에서 줄기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데 가슴높이가 각각 2.62m, 2.5m이다. 나무의 유래에 따르면 고려가 잠시 몽고(원나라)의 그늘 아래 있던 1290년(고려 충렬왕 16년) 9 월, 영밀공 유청신(英密公 柳淸臣)이 몽고에 갔다가 충렬왕(忠烈王)을 따라 귀국할 때 호도나무 의 어린나무와 열매를 가져왔다고 한다. 그는 어린나무는 광덕사에 심고 열매는 고향집 뜨락에 심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정확하진 않다. 다만 나무의 나이가 400살 정도 되었다고 하니 그가 심은 나무의 후손일 수도 있겠다. 천안시 광덕면은 우리나라 호도의 고향으로 이 나무가 우리나 라 최초의 호도나무라고 하여 이곳을 호도나무 시배지(始栽地)로 여기고 있으며, 나무 그늘에는 '유청신 선생 호도나무 시식지(柳淸臣 先生 胡桃 試植地)'란 비석이 세워져 있다. 푸른내음이 가득 서린 호도나무의 위세 앞에 강렬한 햇빛도 고개를 숙였다. 나무가 드리운 그늘 과 바람에 머릿속이 싹 정화된 듯 시원함이 솟아오른다. 우리나라에 맛있는 호도과자를 전해준 유청신(나중에 역모에 가담하여 멀리 귀양갔다고 한다)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절 경내로 올라선 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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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사자의 가호를 받고 있는 대웅전(大雄殿)은 조선시대 건물로 1983년 해체복원할 때, 처음보다 크게 지어버려 본래의 모습을 다소 잃었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덩어리 가 촘촘히 박힌 다포(多包)양식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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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광덕사 3층석탑 -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1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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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덕사 외곽 부분 (산신각, 천불전, 부도) |
자료 247호로 화재로 옛 모습을 잃었음에도 지방문화재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천불전 옆에는 승려의 생활공간으로 쓰이는 건물인 인광당(忍光堂)이 있고, 그 앞에는 옛 천불 전을 떠받들던 커다란 주춧돌 2개가 옛날을 그리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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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상당은 17세기에 활약한 승려로 1671년 군산 은적사(隱寂寺)에서 입적하자 그 제자들이 사리 를 모셔와 1672년에 부도를 세웠다고 한다. 이들과 조금 떨어진 석종형 부도는 주인을 알 수 없어 무명부도(無名浮屠)라고 부른다. 이 탑은 가운데 받침돌 8면에 신장상(神將像)이 새겨져 있는데 그 수법이 우수하다. 이들 부도는 한 덩 어리로 묶어 충남 지방유형문화재 85호이며, 이들로부터 산 쪽으로 200m 안쪽에 신라 흥덕왕 때 절을 크게 중창한 진산대사(珍山大師)의 석종형 부도가 숨어 있는데, 우리는 그 탑의 존재를 알 지 못해 그냥 지나치는 우를 범했다. 진산대사 부도는 별도로 충남 지방문화재자료 253호이다. 부도군 주변으로는 밤나무가 가득하다. 호도와 밤이 절정을 이루는 가을에 오면 여물어 땅으로 곤두박질 친 밤송이의 거대한 나라로 변해버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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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 - 2009년 7월 7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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