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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의 나무 쌍향수가 깃들여진 산중암자, 순천 천자암

도봉산 고양이 2010. 2. 5. 01:31

' 신비의 나무 쌍향수가 깃들여진 산중암자 ~
조계산 천자암(曹溪山 天子庵) '


▲ 천자암의 자랑, 쌍향수(雙香樹)



낙안 인근 금전산(金錢山)에 포근히 안긴 금둔사(金芚寺, ☞ 후기 보기)를 둘러보고 다시 낙
안벌로 나왔다.점심을 일찍 먹고 부지런히 움직인 탓에 허기짐이 생겨나 낙안에서 잠깐 가던
길을 멈추고 과자와 아이스크림으로 허전한 뱃속을 달래본다. 이렇게 일다경(一茶頃)의 여유
를 즐기고 쌍향수로 유명한 천자암으로 발길을 옮긴다.

낙안(樂安)에서 조계산에 묻힌 천자암까지는 거의 20km 거리이다. 외서로 넘어가는 구불구불
고갯길을 넘어 외서를 지나 송광면의 중심지인 이읍에서 국도를 버리고 조계산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길로 방향을 튼다. 여기서 천자암까지는 수레 1대 다닐 정도로 좁은 길을 3km가량 비
집고 들어가야 된다. 마치 뱀 허리에 매달려 가는 듯,구불구불 오르막 길을 오르면 중간중간
그림처럼 펼쳐진 조그만 마을과 계단식 논밭이 우리를 반긴다.

천자암과 가까워지면서 속세의 마을과 경작지는 사라지고 가을에 잠긴 조계산의 숲길이 잔잔
히 길을 덮는다. 그런 길을 정신없이 파고들어가니 이윽고 천자암 주차장이 모습이 나타난다.
그곳에는 수레 여러 대가 절구경을 간 주인을 기다리며 가을 단잠을 즐기고 있었는데,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수레로 절 아래까지 올라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초행길인 우리는 군중심리에
빠져 그곳에 수레를 세우고 말았다. 하긴 절까지 1km정도 밖에 안되니 걸어가도 무방은 하다.
허나 속세의 인심만큼이나 가파른 경사길의 고난을 두 발로 겪어야 된다.


♠ 가을이 깃든 천자암 가는 길


▲ 늦가을에 잠긴 천자암 가는 산길

천자암으로 오르는 길은 각박한 속세살이처럼 다소 가파르다. 절까지 길게 늘어선 알록달록 연
등은 속세에 지치고 가파른 길에 지친 중생들의 마음을 북돋으며 그들의 길을 인도한다. 가을에
곱게 물들어진 산길은 중생의 마음과 눈을 단단히 부여잡는다.


▲ 오르는 도중에 만난 천자암 표석 ~
바위에 깃들여진 글씨에 단정함과 위품이 물씬 서려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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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암으로 오르는 산길

주차장에서 10분 정도 비탈진 길을 오르면 천
자암을 알리는 표석과 절로 통하는 산길이 나
온다. 수레길로 가던 산길로 가던 모두 천자
암으로 통하지만, 산길이 지름길이며, 수레길
은 약간 돌아간다. 기왕 절을 보러 산에 올랐
으니 시멘트바닥의 딱딱한 수레길보다는 흙과
바위로 된 자연스런 길이 더 좋지 않겠는가.

가을의 흔적이 강하게 배여난 산길에도 바람
에 휘날리는 연등의 알록달록 행렬은 엉뚱한
길로 빠질지 모르는 중생들을 안내하느라 여
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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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표석

완만한 경사의 산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나무아미타불이라 쓰인 표석이 나온다. 여기서 산길은
2갈래로 갈리는데 왼쪽은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송광사(松廣寺)로 통하며 오른쪽으로 가
면 바로 천자암이다. 송광사까지는 1시간 반 정도 산을 더듬어야 된다.


▲ 법왕루로 오르는 길 양쪽으로 이름 모를 주황색 꽃이
화사하게 주변을 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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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암 법왕루(法王樓)

나무아미타불 표석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산비탈에 지어진 2층 법왕루가 중생을 맞는다. 법왕루
는 절의 정문으로 그의 아랫도리로 경내로 들어서면 정면으로 법당이 나온다. 천자암의 자랑인
쌍향수는 바로 보이지가 않는데, 법당 좌측으로 돌아가면 나온다.
법왕루는 우리에게 꼭꼭 숨길 것이 있는지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내부를 굳게 봉
했다.


♠ 조그만 산중암자 천자암 둘러보기


▲ 천자암 법당(法堂)

천자암은 송광사(松廣寺)의 16암자 중 하나로 그들 중에서 가장 멀다. 이 절은 송광사 9대 국
사(國師)이자 보조국사(普照國師)의 제자인 담당국사(湛堂國師, 13세기)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담당은 원래 금(金)나라 6대 황제인 장종(章宗, 재위 1189~1208년)의 아들로 황제의 아들이 세
운 절이라 하여 천자암이라 불린다. 조선시대에는 5차례의 중수가 있었고, 1995년 중창을 벌여
지금에 이른다.

경내를 이루는 건물은 법당을 비롯하여 법왕루와 나한전, 산신각 등 6~7동이 전부로 그야말로
조그만 산중암자이다. 그런데 속세에서 이 조그만 암자를 주목하고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찾는 이유는 바로 쌍향수(雙向樹)라 불리는 거대한 곱향나무 때문이다. 쌍향수는 고색의 향기
가 시들해진 천자암의 유일한 오래된 보물로 그것을 든든한 후광으로 삼아 절을 꾸린다. 절을
찾는 사람의 대부분이 쌍향수를 보러 온 사람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 절은 같은 산에 안긴 송광사나 선암사(仙巖寺)에 비해 찾는 이는 적어 한적한 산사의 분위
기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게다가 속세와도 멀리 떨어져 있어 속세의 무거운 짐을 산 아래 내
던지고 무작정 안기고 싶은 곳이다.

법왕루를 들어서면 정면으로 길을 막듯 나타나는 법당은 천자암의 중심 건물이다. 1995년에 지
어진 것으로 법당의 역할 외에 선방(禪房)과 종무소(宗務所)의 기능도 덩달아 지니고 있으며,
법당 우측으로 승려의 생활공간인 요사(寮舍)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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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암 나한전(羅漢殿)
쌍향수 좌측에 자리한 나한전은 부처의 제자인 16명의 나한(羅漢)을 모신
건물로 1995년에 중건했다. 이곳의 나한상은 개성과 해학이 넘치는 모습으로
중생들의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해준다. 쌍향수만 눈이 빠지라 구경하지 말고
나한전 내부도 한번 둘러보기 바란다.


▲ 수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천자암 산신각(山神閣)
천자암 가장 뒤쪽에 자리한 산신각은 조계산 산신을 모신
건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조촐한 모습이다.

▲ 천자암 석조(石槽)
쌍향수 좌측에 누운 석조는 조계산이 베푼 옥계수로 가득하여
이곳까지 올라온 중생들의 목을 아낌없이 축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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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한전 아래에 자리한 동쪽 선방


♠ 천자암의 자랑이자 보물, 보조국사가 꽂은 지팡이가 꽃과 잎을 피우며
자라났다는 신비의 나무 ~ 쌍향수(雙向樹, 곱향나무)
- 천연기념물 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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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령 800년 쌍향수의 위엄


인간이 감히 추적하기 어려운 자연의 신비가 고스란히 배인 쌍향수는 천자암의 보물이자 소중한
밥줄이다. 조계산에 묻힌 조그만 산중 암자를 유명하게 만든 일등공신이 바로 쌍향수이며, 천자
암을 찾은 중생의 상당수도 그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나 역시 그의 명성
을 듣고 심산유곡을 마다하고 달려온 것이다. 만약 쌍향수가 없었다면 마땅한 보물도 없는 이곳
을 굳이 힘들여 찾아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쌍향수는 향나무의 일종인 곱향나무 2그루가 거의 1그루처럼 솟아난 신비로운 자태의 나무이다.
곱향나무는 매우 희귀한 나무로 우리나라에서는 이곳 천자암이 유일하다고 하며, 북한에서도 거
의 씨가 말라 천연기념물로 삼았을 정도이다. 쌍향수란 이름은 나무 2그루가 다정하게 같은 모
습으로 서 있어서 유래된 것으로 겉으로 볼 때는 1그루처럼 보이겠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2그루이다. 나무의 나이는 무려 800년이 넘었다고 하며, 연로한 나이에 걸맞지 않게 정정한 모
습을 간직하고 있다.

나무의 높이는 12.5m로 줄기의 지름은 1m가 넘는다. 직접 이렇게 살펴보니 정말로 웅장하고 기
이할 따름이다. 엿가락처럼 기이하게 꼬인 나무의 줄기는 800여 년의 세월을 꾸준히 먹고 자란
탓인지 엄청나게 두꺼워 돌기둥처럼 굳어버렸다. 도끼와 톱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말이다. 가지
는 한결같이 땅을 향해 뻗어 있어 나무의 신비로움을 더욱 끌어올린다.

이 나무는 고려 중기에 활약했던 고승(高僧)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과 관련
된 재미난 설화가 전해오는데 다음과 같다,

보조국사 지눌이 금나라로 건너가 불교를 공부할 때, 금나라 황제 장종(章宗)의 왕비가 불치병
이 걸렸다. 지눌은 불력(佛力)으로 왕비의 병을 고쳐주었는데, 장종 내외는 그 고마움으로 왕자
담당(湛堂)을 제자로 삼으라며 선물로 주었다. 담당은 지눌의 열성제자가 되어 그를 따라 고려
로 건너갔다.

그들은 송광사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천자암을 지었는데, 그 기념으로 그들이 가지고 다니던 지
팡이를 꽂았더니 거기서 가지가 생기고 꽃이 피어 자라났다고 한다. 생김새를 자세히 살펴보면
우측 나무가 좌측 나무에게 절을 하듯 기울어져 있는데, 마치 제자 담당이 스승인 지눌에게 인
사를 드리는 것 같다. 죽어서도 그들의 끈끈한 관계는 여전한 모양이다.

이 나무는 한 손으로 밀거나 여러 사람이 밀거나 그 움직임이 비슷하다고 하며, 나무에 손을 대
면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이야기가 서려있어, 너도 나도 줄기를 건드린다. 지금은 나무를 보호
하기 위해 주변에 얕게 철책을 둘렀으나, 철책 한 부분에 철문을 설치하여 그것을 열고 나무로
접근하면 된다. 보면 볼수록 경이롭게 다가오는 쌍향수도 위기의 시절은 있었다. 쌍향수가 아직
은 무명에 가까웠던 몇십년 전에 몹쓸 병이 들어 속이 텅 빌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었다. 그러다
가 전문가의 치료를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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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향수의 아래 줄기
용이나 길다란 뱀이 돌기둥을 단단히
휘감은 것 같다.

▲ 쌍향수의 윗부분

..

▲ 장대한 세월이 아낌없이 서린
쌍향수 줄기

▲ 지눌과 담당의 넋이 나무에 깃들여 있는지
두 나무의 모습이 너무 돈독해 보인다.

◀ 천자암을 찾은 가을이 쌍향수에 단단히 반
한 것일까? 이곳에 머물러좀처럼 떠날 줄을 모
른다. 그냥 머물기는 심심했는지 저렇게 아름다
운 작품을빚어놓아 쌍향수에 대한 존경의 뜻을
표한다. 한참 절정에 다다른 천자암 은행나무,
가을 햇빛에 한층 빛나 보인다.


▲ 천자암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


※ 천자암 찾아가기 (2010년 2월 기준)
① 순천 경유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순천행 고속버스가 30~40분 간격으로 떠난다.
* 동서울터미널에서 순천행 직행버스가 1일 6회 떠난다.
* 서울(용산역), 수원역, 서대전역, 익산역에서 순천행 열차가 1일 10여 회 있으며, 부산(부전)
, 마산, 광주(서광주, 효천)에서 순천행 열차가 드문드문 다닌다.
* 인천, 부산(노포동, 사상), 광주, 대구(서부), 수원, 진주에서 순천행 고속/직행버스 이용
* 순천역, 순천터미널에서 순천시내버스 63번(1일 10회)을 타고 이읍 하차

② 벌교 경유
* 서울 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벌교행 고속버스가 매일 15시 10분에 떠난다. <휴일에
는 1회(8시 10분) 증회>
* 용산역에서 호남선, 서광주 경유 벌교로 가는 열차가 9시 45분에 떠난다.
* 부산(사상), 광주에서 벌교행 직행버스 이용
* 벌교터미널에서 곡천, 송광사, 사평 방면 군내버스(1일 12회)를 타고 이읍 하차

* 이읍마을에서 절까지 도보 1시간 또는 송광면사무소(이읍)에서 택시 이용
* 승용차로 가는 경우 (주차장 있음)
① 남해고속도로 → 송광사나들목 → 벌교 방면 18번 국도 → 송광사입구 → 이읍 → 천자암
② 남해고속도로 → 승주나들목 → 857번 지방도 → 선암사입구 → 금둔사 → 낙안 → 외서 →
이읍 → 천자암

★ 천자암 관람정보
* 입장료와 주차비는 없음
* 천자암에서 송광사나 선암사로 등산이 가능하다.
① 천자암 → 운구재 → 송광사 (1시간) / 천자암 → 송광굴목재 → 송광사 (1시간 반)
② 천자암 → 송광굴목재 → 연산봉 → 작은굴목재 → 선암사 (3시간)
* 소재지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이읍리 산1 (☎ 061-754-3708)


의지할 곳 없는 마음 한쪽을 천자암 쌍향수에 몰래 걸어두고 내키진 않지만 다시 아비규환의 속
세로 나왔다. 쌍향수에 단단히 눈이 멀었는지, 쉽사리 발이 떨어지질 않는다. 하지만 어찌하리~
내가 있어야 될 곳으로 돌아가야 하거늘~ 다음에 다시 인연이 된다면 행장을 풀고 한동안 머물
고 싶은 마음 굴뚝 같다.

이렇게 하여 순천 고찰 나들이는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는다. ~~


* 까페(동호회)에 올린 글은 공개일 기준으로 10일까지만 수정,보완 등의 업데이트가
이루어집니다. <단 블로그는 한달까지이며, 원본
은 2달까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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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개일 - 2010년 2월 3일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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